수원 화성 해설문

남군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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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yndsey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19년 3월 19일 (화) 21:26 판 (영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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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문

국문

행궁 앞에 군영을 설치한 것은 화성에 장용외영이 설치되면서이다. 장용영은 국왕 호위를 전담하던 국왕친위부대이며 1785년(정조9)에 장용위로 출범하여 1793년(정조17)에는 장용영으로 확대, 개편되었으며 이 때 화성에 외영이 설치되었다. 친군위라고도 불렀다. 화성의 친군위는 좌열과 우열로 나누어 좌열을 남영, 우열을 북영이라고 하고 행궁 입구 남쪽에 남군영, 북쪽에 북군영을 두었다. 좌우 군영의 군사에게는 봄·가을로 시험을 치러서 수석을 차지한 자는 곧바로 관직을 높여주고 아직 벼슬에 오르지 못한 사람은 과거시험의 최종단계인 전시에 곧바로 응시할 수 있도록 하는 파격적인 우대를 하였다. 행궁을 증축하면서 신풍루에서 남군영 사이에 행각을 둘러서 외관을 정비했다.

  • 연혁 - 1793년(정조17) 건립 / 2002년 복원
  • 구조 - 겹처마 익공식 맞배지붕

영문

Southern Garrison

This is one of the two military garrisons in this secondary palace, where the royal guard of King Jeongjo was stationed. In 1785, the king reorganized the military system and established the royal guard. A unit of this royal guard was deployed in Hwaseong Fortress in 1793, and a garrison building was built on each side of Sinpungnu, the main gate of the secondary palace. During the expansion of the palace in 1794, each garrison building was enclosed with roofed walls. King Jeongjo established the royal guard to symbolize his powerful royal authority, but the royal guard was disbanded in 1802, two years after the king’s death.

  • '행각'에 대한 다른 설명이 필요하며, 남군영 한쪽은 그냥 담으로 둘렀다.

영문 해설 내용

남군영은 국왕의 친위부대가 주둔하던 화성의 두 군영 중 하나이다. 정조는 1785년 군사조직을 개편해서 국왕의 친위부대인 장용영을 조직하였다. 1793년에는 그 중 일부를 화성에 배치하며 정문인 신풍루의 남쪽과 북쪽에 군영을 지었고, 1794년에는 행궁을 증축하면서 정문과 군영 사이에 행각을 둘렀다. 장용영은 강력한 왕권을 상징하기 위해 설치되었으나, 정조가 승하한지 2년만인 1802년에 해체되었다.


정조 임금은 화성 축성을 시작하기 1년 전에 중앙 군사조직을 개편해서 국왕 친위부대를 조직하고 그 중 일부를 화성에 배치하였다. 화성의 친위부대는 왕이 화성에 내려올 때는 물론, 평상시에도 화성을 지키도록 해서 화성의 방어를 최고 수준으로 높였다. 1795년 행궁을 증축하면서 행궁 정문 좌우에 군영을 지었으며 그 북쪽 남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