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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문'''==
 
=='''해설문'''==
===기존 국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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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문===
성리학을 본격적으로 연구하고 체계를 세운 고려시대의 유학자 이재 백이정(1247~1323)과 제자인 이제현, 박충좌, 이희급의 위패를 봉안하고 있는 사당이다.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성리학을 들여온 사람은 안향이지만 성리학을 본격적으로 연구하고 체계를 세운 사람은 백이정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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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 난곡사는 고려 말기의 학자인 백이정(白頤正)위패를 모신 사당이다. 백이정은 우리나라에 성리학을 처음 들여온 안향(安珦)에게 성리학을 배웠고 나라에서 여러 관직을 맡았으며 많은 제자를 가르쳤다. 그는 고려 충렬왕 24년(1298) 왕위에서 쫓겨난 충선왕을 따라 원나라에 가서 10년 간 성리학을 연구했고, 고려로 돌아와 성리학을 보급하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
  
사당은 이재 백이정선생이 어릴 때 글을 읽던 군자정 옛터가 빈터로 남아 있는 것을 안타깝게 여긴 남해군 유림들이 경상남도 유림회와 협동으로 1925년에 준공한 건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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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곡사는 나무로 만든 기와집으로 앞면 3칸, 옆면 1칸 규모이며, 지붕은 네모꼴의 처마에 세모꼴의 지붕을 올린 팔작지붕(八作지붕) 형식이다. 건물의 내부 정면에 백이정의 위패를 모시고 있으며 그 외에도 그의 제자인 이제현, 박충좌, 정유재란 당시 의병으로 참가했던 이희급의 위패도 모시고 있다. 지금의 사당은 1925년에 고친 것이며, 이곳에서 남해의 유학자들이 해마다 음력 3월 10일에 제사를 지낸다.
  
난곡사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규모이며 팔작지중의 목조기와집이다. 사당 안에는 정면에 백이정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 해마다 남해 유림들이 음력 3월 10일에 제례를 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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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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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ngoksa Shrine'''
  
===수정 국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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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 해설 내용===
====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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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곡사는 고려 말의 학자인 백이정(1247~1323)모신 사당이다.
이 건물은 고려 말의 대학자인 백이정(白頤正, 1247~1323)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다. 그의 위패뿐 아니라 그의 제자인 이제현(李齊賢, 1287~1367), 박충좌(朴忠佐, 1287~1349), 그리고 남해 유림으로 정유재란 당시 의병으로 참전했던 이희급(李希伋, 1583~?)의 위패도 봉안하고 있다.
 
  
이 사당은 기존에 이희급의 위패를 봉안하던 난계사(蘭溪祠)를 1925년에 난곡사라 칭하고 중건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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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이정은 한국에 성리학을 처음 들여온 학자인 안향(1243~1306)의 문하에서 수학하였고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으며 많은 제자를 가르쳤다. 1298년 원나라에 가서 10년 간 성리학을 연구하였고, 고려로 돌아와 성리학을 보급하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
  
백이정은 안향(安珦, 1243~1306)의 문하에서 수학하였고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으며 많은 문인들을 배출하였다. 1298년 충선왕이 세자 시절일 때 부터 원나라에 가서 시종하며 성리학을 연구하였고, 10년 후에 고려로 돌아와 성리학이 전파되는데 크게 공헌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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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사당은 1925년에 고쳐지었다. 내부에는 백이정의 위패뿐 아니라 그의 제자인 이제현(1287~1367), 박충좌(1287~1349), 그리고 남해 유림으로 정유재란 당시 의병으로 참전했던 이희급(1583~?)의 위패도 모시고 있다. 해마다 남해의 유학자들이 음력 3월 10일에 제사를 지낸다.
 
 
사당 내부의 정면에는 백이정의 위패가 있고, 우측 상단에는 이제현, 하단에는 박충좌, 왼쪽에는 이희급의 위패가 각각 봉안되어 있다. 해마다 남해 유림들이 음력 3월 10일에 제례를 지낸다.
 
 
 
====1차 수정====
 
이 건물은 고려 말의 대학자인 백이정(白頤正, 1247~1323)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다.
 
 
 
백이정은 우리나라에 성리학을 처음 들여온 학자인 안향(安珦, 1243~1306)의 문하에서 수학하였고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으며 많은 문인들을 배출하였다. 1298년 충선왕이 세자 시절일 때부터 원나라에 가서 시종하며 성리학을 연구하였고, 10년 후에 고려로 돌아와 성리학이 전파되는 데 크게 공헌하였다.
 
 
 
현재의 사당은 1925년에 지었다. 사당이 자리한 곳은 백이정이 군자정(君子亭)이라는 정자를 짓고 시를 지으며 지내던 곳이라고 한다. 사당 내부에는 백이정의 위패뿐 아니라 그의 제자인 이제현(李齊賢, 1287~1367), 박충좌(朴忠佐, 1287~1349), 그리고 남해 유림으로 정유재란 당시 의병으로 참전했던 이희급(李希伋, 1583~?)의 위패도 봉안하고 있다. 해마다 남해 유림들이 음력 3월 10일에 제례를 지낸다.
 
 
 
====자문의견====
 
#사적, 매장 위원1
 
#*이 건물은 → 난곡사는
 
#*10년 후에 고려로 돌아와 성리학이 전파되는 데 크게 공헌하였다. →10년 후에 고려로 돌아와 성리학을 체계적으로 연구하고 확산시키는데 크게 공헌하였다.(내용을 좀더 구체적으로 서술)
 
#사적, 매장 위원2
 
#*대학자인”→“학자”/ “3월 10일에 제례를 지낸다.” → “3월 10일에 제향(祭享)을 거행한다.”
 
 
 
====2차 수정====
 
난곡사는 고려 말의 학자인 백이정(白頤正, 1247~1323)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다.
 
 
 
백이정은 우리나라에 성리학을 처음 들여온 학자인 안향(安珦, 1243~1306)의 문하에서 수학하였고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으며 많은 문인들을 배출하였다. 1298년 충선왕이 세자 시절일 때부터 원나라에 가서 시종하며 성리학을 연구하였고, 10년 후에 고려로 돌아와 성리학을 체계적으로 연구하고 확산시키는 데 크게 공헌하였다.
 
 
 
현재의 사당은 1925년에 지었다. 사당이 자리한 곳은 백이정이 군자정(君子亭)이라는 정자를 짓고 시를 지으며 지내던 곳이라고 한다. 사당 내부에는 백이정의 위패뿐 아니라 그의 제자인 이제현(李齊賢, 1287~1367), 박충좌(朴忠佐, 1287~1349), 그리고 남해 유림으로 정유재란 당시 의병으로 참전했던 이희급(李希伋, 1583~?)의 위패도 모시고 있다. 해마다 남해 유림들이 음력 3월 10일에 제사를 지낸다.  
 
  
 
=='''문맥요소'''==
 
=='''문맥요소'''==

2020년 5월 23일 (토) 09:41 판


난곡사
Nangoksa Shrine
난곡사,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난곡사
영문명칭 Nangoksa Shrine
한자 蘭谷祠
주소 경상남도 남해군 이동면 난음로219번길 7-14 (난음리)
지정번호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237호
지정일 1997년 1월 30일
분류 유적건조물/인물사건/인물기념/사우
수량/면적 3동
웹사이트 난곡사,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남해 난곡사는 고려 말기의 학자인 백이정(白頤正)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다. 백이정은 우리나라에 성리학을 처음 들여온 안향(安珦)에게 성리학을 배웠고 나라에서 여러 관직을 맡았으며 많은 제자를 가르쳤다. 그는 고려 충렬왕 24년(1298) 왕위에서 쫓겨난 충선왕을 따라 원나라에 가서 10년 간 성리학을 연구했고, 고려로 돌아와 성리학을 보급하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

난곡사는 나무로 만든 기와집으로 앞면 3칸, 옆면 1칸 규모이며, 지붕은 네모꼴의 처마에 세모꼴의 지붕을 올린 팔작지붕(八作지붕) 형식이다. 건물의 내부 정면에 백이정의 위패를 모시고 있으며 그 외에도 그의 제자인 이제현, 박충좌, 정유재란 당시 의병으로 참가했던 이희급의 위패도 모시고 있다. 지금의 사당은 1925년에 고친 것이며, 이곳에서 남해의 유학자들이 해마다 음력 3월 10일에 제사를 지낸다.

영문

Nangoksa Shrine

영문 해설 내용

난곡사는 고려 말의 학자인 백이정(1247~1323)을 모신 사당이다.

백이정은 한국에 성리학을 처음 들여온 학자인 안향(1243~1306)의 문하에서 수학하였고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으며 많은 제자를 가르쳤다. 1298년 원나라에 가서 10년 간 성리학을 연구하였고, 고려로 돌아와 성리학을 보급하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

현재의 사당은 1925년에 고쳐지었다. 내부에는 백이정의 위패뿐 아니라 그의 제자인 이제현(1287~1367), 박충좌(1287~1349), 그리고 남해 유림으로 정유재란 당시 의병으로 참전했던 이희급(1583~?)의 위패도 모시고 있다. 해마다 남해의 유학자들이 음력 3월 10일에 제사를 지낸다.

문맥요소

Nodes

ID Class Label Description
난곡사(蘭谷祠) 문화유산 난곡사(蘭谷祠)
백이정(白頤正) 인물 백이정(白頤正) 1247-1323
이제현(李齊賢) 인물 이제현(李齊賢) 1287-1367
박충좌(朴忠佐) 인물 박충좌(朴忠佐) 1287-1349
이희급(李希伋) 인물 이희급(李希伋) 1583~?
군자정(君子亭) 문화유산
안향(安珦) 인물 안향(安珦) 1243-1306
성리학 개념 성리학

Links

Source Target Relation
난곡사(蘭谷祠) 백이정 ~의 사당이다.
난곡사(蘭谷祠) 이제현 ~의 사당이다.
난곡사(蘭谷祠) 박충좌 ~의 사당이다.
난곡사(蘭谷祠) 이희급 ~의 사당이다.
이제현 백이정 ~의 제자이다.
박충좌 백이정 ~의 제자이다.
안향 백이정 ~의 스승이다.
성리학 백이정 ~와 관계가 있다.
군자정(君子亭) 백이정 ~의 정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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