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주 영천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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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천사 대웅전에 모셔진 삼불좌상 중 가운데에 놓인 불상은 아미타불을 나타낸 것이다. 아미타불은 극락정토의 부처로, 아미타불의 공덕을 기리고 그의 이름을 염(念)하는 모든 중생들은 극락세계에 왕생할 수 있다고 여겨진다. | 영천사 대웅전에 모셔진 삼불좌상 중 가운데에 놓인 불상은 아미타불을 나타낸 것이다. 아미타불은 극락정토의 부처로, 아미타불의 공덕을 기리고 그의 이름을 염(念)하는 모든 중생들은 극락세계에 왕생할 수 있다고 여겨진다. | ||
− | 이 불상의 정확한 제작 시기는 알 수 없다. 다만, 좌상의 신체 비례, | + | 이 불상의 정확한 제작 시기는 알 수 없다. 다만, 좌상의 신체 비례, 이목구비의 표현, 자연스러운 대의 처리 등이 17세기 중반에 제작한 불상과 유사하여, 1650~1660년대 전후에 제작했을 가능성이 높다. 원래 보덕사라는 사찰에 모셔져 있었는데 보덕사는 1945년 경 폐사되었고, 이후 1954년 영천사가 창건될 때 이곳으로 옮겨와 봉안하였다. |
하나의 나무를 조각하여 형태를 만들고 금칠을 했으며, 조선 후기 불상의 전형적인 양식을 보여 준다. 신체에 비해 얼굴은 크고, 어깨는 좁은 편이며, 얼굴을 앞으로 살짝 내민 채 숙여 자세가 구부정하다. 소라 모양의 머리카락으로 덮여 있는 머리에는 부처의 지혜를 상징하는 육계가 솟아 있다. 얼굴에는 가늘게 뜬 긴 눈, 콧대가 높고 짧은 코, 미소를 머금은 작은 입을 표현하였고, 목에는 번뇌, 업, 고통을 상징하는 삼도가 깊게 새겨져 있다. | 하나의 나무를 조각하여 형태를 만들고 금칠을 했으며, 조선 후기 불상의 전형적인 양식을 보여 준다. 신체에 비해 얼굴은 크고, 어깨는 좁은 편이며, 얼굴을 앞으로 살짝 내민 채 숙여 자세가 구부정하다. 소라 모양의 머리카락으로 덮여 있는 머리에는 부처의 지혜를 상징하는 육계가 솟아 있다. 얼굴에는 가늘게 뜬 긴 눈, 콧대가 높고 짧은 코, 미소를 머금은 작은 입을 표현하였고, 목에는 번뇌, 업, 고통을 상징하는 삼도가 깊게 새겨져 있다. |
2024년 1월 19일 (금) 14:49 판
나주 영천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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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나주 영천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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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羅州 靈泉寺 木造如來坐像 |
지정번호 |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
지정일 | 2021년 5월 13일 |
분류 | 유물 / 불교조각 / 목조 / 불상 |
시대 | 조선시대(17세기 중반) |
수량/면적 | 1구 |
웹사이트 | 나주 영천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
해설문
국문
영천사 대웅전에 봉안된 삼불 좌상 중 가운데에 놓인 불상이다. 목조 아미타여래 좌상은 하나의 나무로 만든 불상으로, 신체에 비해 얼굴은 크고, 어깨는 좁은 편이며, 얼굴을 앞으로 살짝 내민 채 숙여 자세가 구부정하다. 머리에는 소라 모양의 나발이 촘촘하고, 정수리에는 육계가 솟아 있으며, 이마 위에는 반원형의 중앙 계주가, 머리 정수리에는 원통형의 낮은 정상 계주가 있다. 얼굴에는 가늘게 뜬 긴 눈, 콧대가 높고 짧은 코, 미소를 머금은 작은 입을 표현하고, 목에는 삼도를 표현하여 전형적인 조선 후기 불상 양식을 보여 준다.
조성 때 넣은 조성 발원문을 비롯한 복장물이 남아 있지 않아 불상의 구체적인 제작 시기 등을 밝힐 수 없다. 다만, 여래 좌상의 신체 비례, 이목구비에서 풍기는 인상, 자연스러운 대의 처리 등이 17세기 중반에 제작한 불상과 유사하여, 1650~1660년대 전후에 제작했을 가능성이 높다.
불상은 1954년 영천사 창건 당시, 폐사된 보덕사에서 옮겨 와 봉안하였다.
영문
영문 해설 내용
영천사 대웅전에 모셔진 삼불좌상 중 가운데에 놓인 불상은 아미타불을 나타낸 것이다. 아미타불은 극락정토의 부처로, 아미타불의 공덕을 기리고 그의 이름을 염(念)하는 모든 중생들은 극락세계에 왕생할 수 있다고 여겨진다.
이 불상의 정확한 제작 시기는 알 수 없다. 다만, 좌상의 신체 비례, 이목구비의 표현, 자연스러운 대의 처리 등이 17세기 중반에 제작한 불상과 유사하여, 1650~1660년대 전후에 제작했을 가능성이 높다. 원래 보덕사라는 사찰에 모셔져 있었는데 보덕사는 1945년 경 폐사되었고, 이후 1954년 영천사가 창건될 때 이곳으로 옮겨와 봉안하였다.
하나의 나무를 조각하여 형태를 만들고 금칠을 했으며, 조선 후기 불상의 전형적인 양식을 보여 준다. 신체에 비해 얼굴은 크고, 어깨는 좁은 편이며, 얼굴을 앞으로 살짝 내민 채 숙여 자세가 구부정하다. 소라 모양의 머리카락으로 덮여 있는 머리에는 부처의 지혜를 상징하는 육계가 솟아 있다. 얼굴에는 가늘게 뜬 긴 눈, 콧대가 높고 짧은 코, 미소를 머금은 작은 입을 표현하였고, 목에는 번뇌, 업, 고통을 상징하는 삼도가 깊게 새겨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