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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 장방리 갈대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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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 장방리 갈대집
김해 장방리 갈대집,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김해 장방리 갈대집
한자 金海 長方里 갈대집
주소 경상남도 김해시 한림로343번길 47-158 (한림면, 영강사)
지정번호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421호
지정일 2007년 3월 15일
분류 유적건조물/주거생활/주거건축/가옥
시대 일제강점기
수량/면적 3동/1,418㎡
웹사이트 김해 장방리 갈대집,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김해 장방리 갈대집은 지붕을 갈대로 만든 집으로 지붕을 볏짚으로 만든 초가집과 다르다. 김해 지역에서는 갈대집을 새풀집, 새집이라고도 한다. 처음 지어진 연대는 알 수 없으나 임진왜란 이후 화포천 주변으로 피난 온 사람들이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었던 갈대로 지붕을 만들어 집을 지었다고 한다.

1970년대에 시작되었던 새마을 운동 이전까지는 화포천 주변에 갈대집이 많았다. 그러나 현재는 안채와 사랑채, 아래채로 이루어진 집 하나만 남아 있으며, 아래채와 사랑채는 1920년대, 안채는 1945년에 지은 것으로 추정된다.

이 갈대집은 낙동강의 범람을 피할 수 있는 언덕에 자리한다는 점과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를 건축 자재로 활용하여 세웠다는 점에서 건축학과 민속학 연구의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영문

영문 해설 내용

장방리의 이 집은 물억새와 갈대의 줄기를 섞어 50cm에 가까운 두께로 쌓아 이은 지붕을 올려 만들어졌으며, 지역적 특색을 잘 보여준다.

이 지역에서는 이러한 형태의 지붕을 올린 집을 새풀집, 새집이라고도 한다. 임진왜란 이후 화포천 주변으로 피난을 왔던 사람들이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었던 재료를 이용하면서 이러한 지붕을 만들어 올리게 되었다고 전한다.

1970년대의 새마을 운동 이후 마을의 다른 갈대집들은 모두 사라졌고, 화포천의 범람을 피할 수 있는 언덕에 자리하고 있는 이 집만 남았다. 총 3동의 건물이 남아 있으며, 집의 초입에 자리한 아래채와 그 안쪽 서향으로 지어진 사랑채는 1920년대에, 안채는 1945년에 지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갈대집은 한 번 지붕을 올리면 최소 30년에서 길게는 50년까지 쓸 수 있다고 한다. 현재 남아 있는 지붕들 역시 겉면은 짙은 회색이 되었지만, 지붕 안쪽은 원래의 색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 집의 안채는 집 위쪽에 위치한 ‘영강사’의 법당(혹은 요사채)로 이용되고 있다.
  • 지붕은 비가 스며드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경사가 급한 편이지만, 전체적으로는 둥근 모양이다.


참고자료

  • 김해 장방리 갈대집_190206, 겨울섬, 개인블로그 https://gotn.tistory.com/723 -> 3동의 갈대집 가운데 현재 요사채 또는 스님의 거처로 사용되는 안채는... / 사랑채의 북편에는 창고와 아궁이를 겸한 공간이 있어, 안을 들여다 보니 지붕의 골격을 이루는 서까래가 그리 굵고 고르지 않아, 나무가 흔하지 않은 서민가옥임을 알려 주는듯 하고, 갈대집의 처마를 들여다 보니 갈대와 억새로 층층이 올려진 모습으로, 길에서 올려다보면 외부는 비와 햇볕에 노출되어 검은색에 가까운 회색으로 변했지만, 안쪽은 원래의 색을 그대로 가지고 있어,지붕은 50㎝에 가까운 두께로 화포천의 억새와 갈대의 대를 쌓아 이었는데, 억새가 훨씬 더 많이 들어 갔다고 하며 한번 지붕을 올리면 적게는 30년에서 길게는 50년까지 쓸수 있다고 합니다. 초막집으로 불리는 갈대집은 초가에 비하여 경사가 심한편 인데, 아마도 재료의 특성을 고려하여 비가 안으로 스며드는것을 막고자 했던 것으로 보이며, 이제는 찾아보기 힘든 지역의 특성을 살린 민가로, 경남 김해의 장방리 갈대집 (金海 長方里 갈대집) 방문기 입니다.
  • 장방리 갈대집 사실은 억새로 만든 집이랍니다, 김해뉴스, 2011.10.25. http://www.gimhae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334 -> 갈대집의 건축 연대는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다. 이 지역에는 임진왜란 이후 낙동강 지류로 피난 온 사람들이 갈대로 지붕을 이은 집에서 살기 시작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온다. 1970년대의 새마을운동 이전까지 장방리에는 갈대집들이 마을을 이룰 정도로 흔했다. 그러나 현재는 이 집 외에는 흔적을 찾기 어렵다. 안채, 사랑채, 아래채로 구성된 장방리 갈대집 3동은 산언덕에 위치했다. 화포천에 홍수가 질 때의 안전을 고려한 입지이다. 길에서 올려다보면 지붕이 짙은 회색빛으로 변해간 걸 볼 수 있다. 외지인들은 갈대집이라고 철썩같이 믿을지 모르지만, 억새와 갈대의 대가 함께 사용되었을거라는 걸 아는 사람도 있다. 취재 중 우연히 만난 김해의 환경모임 '자연과 사람들'의 생태체험지도사 남귀연 씨도 ‘갈대와 억새를 함께 사용했을 것’이라고 말해주었다. 청호스님이 그것을 확인해주었다. “갈대, 억새의 대를 엮는데 억새가 훨씬 더 많아요. 한번 지붕을 올리면 최하 30년에서 길게는 50년까지 버팁니다. 사는 동안 지붕을 한 번 올리는 셈이지요. 비를 맞으면 저렇게 색이 검게 변하지만, 안에는 원래 색을 그대로 가지고 있어요.” 청호스님은 6대째 이 집에 살고 있다. 8남매가 이 집에서 자랐고, 청호스님은 출가 후 집 위에 영강사라는 법당을 짓고 현재까지 집을 돌보고 있다. 한 세대에 평균 30년을 잡고 보면 이 곳에서 조상대대로 180년이 넘도록 산 셈이다. / 지붕은 50㎝에 가까운 두께로 억새와 갈대의 대를 쌓아 이었고, 용마루는 비를 막기 위해 함석으로 마감했다. 문화재로 지정된 후 지붕을 한번 복원했다. 5년 전의 일이다. 그런데 지붕 한 채를 다 이을 정도로 억새와 갈대의 대를 베어낼 예산이 모자랐다. 사람이 일일이 베어 내야 했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이 절반은 새로, 그 위에는 옛 지붕을 덮었다. 그래서 지붕 아래에서 올려다보면 새로 이은 부분은 갈색이고, 옛 지붕은 짙은 회색이다. / 장방리 갈대집은 한림 지역의 전통적인 건축재료로 지어진 집이라서 건축학과 민속학 연구의 중요한 자료이다.
  • [김해 가볼 만한 곳] 화포천 옆 김해 장방리 갈대집, 유니의 여행&사진, 네이버 블로그 https://blog.naver.com/prunus2816/222161615938
  • 김해 장방리 갈대집과 화포천 독수리, 김해시 공식 블로그, 네이버 블로그 https://blog.naver.com/gimhae4you/222211285426 -> 안채, 사랑채, 아래채 등 3동으로 구성된 장방리 갈대집은 남향의 안채와 서향의 사랑채는 기역 자 배치로 마당을 공유하고 있으며, 아래채는 사랑채와 니은 자 배치를 함으로써 남향으로 독립된 마당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방에는 벽장 시설을 하였습니다. 지붕을 두께가 50cm에 가까운 갈대를 7~8겹으로 쌓아 이었으며, 용마루에는 함석으로 비를 막는 시설을 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