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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천 청암사 아미타불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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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천 청암사 아미타불회도
김천 청암사 아미타불회도,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김천 청암사 아미타불회도
한자 金泉 靑巖寺 阿彌陀佛會圖
주소 경상북도 김천시 증산면 평촌리 685
지정번호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415호
지정일 2009년 8월 31일
분류 유물/불교회화/탱화/불도
시대 조선시대
수량/면적 1탱
웹사이트 김천 청암사 아미타불회도,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기존 국문

기존 문안 없음.

수정 국문

초고

청암사 육화료(六和寮)에 후불탱으로 걸려있는 이 불화는 극락정토의 부처인 아미타불과 주변 권속들을 묘사한 것이다. 아미타불의 공덕을 기리고 그의 이름을 염(念)하는 모든 중생들은 극락세계에 왕생할 수 있다고 여겨진다.

조선 정조 14년(1790)에 제한(濟閑)을 비롯한 7명의 화승(畵僧)이 직지사 내원암에서 제작한 사실이 화기(畵記)에 기록되어 있다. 삼베 바탕에 검은색 안료를 칠한 후 각 존상의 몸을 금색으로 채색하였으며, 불상이 입은 옷에 사용된 다양한 문양 장식과 옷 주름은 금을 덧입힌 선으로 섬세하게 처리하였다.

화면 중앙에는 아미타불이 연꽃 대좌 위에 앉아있다. 왼손은 배꼽 근처에 두고, 오른손은 어깨까지 들어올렸으며, 양손 모두 엄지와 중지를 맞대고 있는 모습이다.

아미타불의 좌우에는 관음보살과 지장보살이 서 있다. 보관을 쓴 관음보살은 손에 정병(淨甁)을 들었고, 승려의 모습을 한 지장보살은 보주(寶珠)와 지팡이를 들었다.

아미타불의 두광(頭光) 좌우에 부처의 여러 제자 중 으뜸이라고 하는 아난과 가섭이 합장을 한 모습으로 배치되어 있고, 화면 상단 양쪽 끝에는 시방불 10위가 대칭을 이루며 그려져 있다.

그림의 크기는 세로 184㎝, 가로 211.4㎝이다.


  • 수화승 제한(濟閑)은 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 초반 사이에 김천 일대에서 주로 활동하였으며, 김천 직지사 괘불도(보물 제2026호) 제작을 주도하기도 하였다. 직지사 괘불도의 제작시기는 1803년이므로, 아미타불회도는 이보다 앞선 시기에 제작된 것이다.
  • 청암사는 신라의 고승 도선국사가 헌앙왕 3년(859)에 창건했다고 하며, 여러 차례의 소실과 재건이 반복되었다. 청암사 극락전은 조선 숙종의 왕비 인현왕후가 폐위된 후 외가가 있는 김천으로 내려왔을 때 3년간 머무른 곳이라고 한다. 1987년부터 비구니 승가대학을 운영하고 있으며, 2005년까지 14년에 걸쳐 전 도량을 보수했다고 한다.
  • 불화가 봉안되어 있는 곳은 민백에‘육화료 큰 방’으로 되어 있는데, 육화료는 비구 스님들의 수행 공간으로 쓰여 일반인은 출입할 수 없어 실제 사진으로 확인할 수 없음 / 육화료는 청암사 내에서 가장 규모가 큰 건물로, 청암사 승가대학의 중심건물인 대방채로 쓰인다. 육화(六和)는 불교의 진리를 깨우치고자 하는 수행자들이 깨우쳐야 하는 여섯 가지 법으로, 신(身), 구(口), 의(義), 계(戒), 견(見), 이(利)의 화합을 통한 승가의 실천내용을 말한다. 지금의 건물은 2004년에 보수된 것이다.


1차 수정

참고자료

  • 지자체 제공 자료 → 청암사 아미타불회도는 금니(金泥)를 풍부하게 사용하여 제작한 금선묘(金線描) 불화로, 1790년 제한(濟閑) 등 7명의 화승(畵僧)이 참여하여 직지사 내원암에서 조성했다. 중앙에는 결가부좌한 아미타불좌상을 중심으로 좌우에 관음보살, 지장보살이 정면으로 배열되어 있다. 또한 아미타불의 두광 좌우에는 합장을 한 가섭과 아난존자가, 상단 좌우로 시방불이 그려져 있다. 불화는 삼베 바탕에 검은 안료로 바탕칠을 한 후 각 존상의 신체에 금채(金彩)하고 옷주름과 문양, 장식 등에 금니(金泥)로 마무리하였다. 옷 문양에 원문, 사각문, 당초문, 초문 등 다양한 문양을 사용하여 매우 섬세하며 화려하다. 아미타불회도는 간략한 인물 구성, 힘있는 필력, 정교한 문양이 묘사된 화려한 금선묘 묵탱으로, 현존하는 조선 후기 묵탱 가운데 조성시기가 가장 빠르다.
  • 김천 청암사 아미타불회도,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73291 → 1790년 양공(良工) 제한(濟閑) 등 7명의 화승에 의해 제작된 아미타불회도는 각 존상의 신체를 황색으로 칠하고 옷 주름과 문양, 장식 등은 황선(黃線, 금선)으로 하였다. 결가부좌(結跏趺坐)한 아미타불을 가운데 두고, 좌우에 관음보살과 지장보살이 협시하였다. 관음보살은 정병을, 지장보살은 보주와 육환장을 들었다. 관음보살 보관에 아미타불이 서있는 정확한 도상을 그렸다. 아미타불의 두광 좌우에는 석가모니불의 십대제자 가운데 대표 둘인 가섭과 아난존자가 합장하였다.미타불과 양 보살 머리 위에는 모두 보개가 있다. 조선시대 불화에서 보살의 머리 위에까지 보개가 있는 경우는 드물다. 양 보살 보개 옆에 오불(五佛)씩 시방불이 표현되었다. 불보살의 가사와 천의에 들어간 원문, 사각문, 당초문, 초문 등 다양한 문양이 섬세하며 화려하다. 불보살의 신체 비례는 정확하고 상호(相好)도 밝고 맑다.
  • 김천 청암사 4, story77616, 네이버 블로그 https://blog.naver.com/story77616/221853253319 → 육화료 설명 ; 2004년에 보수된 건물로 ⋯ 청암사 승가대학의 중심인 대방채로 쓰인다. 육화료 안에 모셔진 높이 57cm의 석가여래좌상은 조성연대가 조선 정조 때로 추측되며 몇 차례의 화재에도 이 부처님만이 타지 않고 그대로 계셨다고 한다. 후불탱화는 흑탱화로 건륭 56년 정조 15년(1791)에 그려진 흑견은니의 미타탱화라고 하는데 내부에 들어가보지 못했다.
  • 김천 청암사 아미타불회도, 디지털김천문화대전 http://gimcheon.grandculture.net/gimcheon/toc/GC03201914 → ‘개항기의 아미타불회도’로 되어 있음 (오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