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행중

김제 청룡사 목조관음보살좌상

HeritageWiki
강혜원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20년 3월 30일 (월) 03:22 판 (수정 국문)

이동: 둘러보기, 검색


김제 청룡사 목조관음보살좌상
Wooden Seated Avalokitesvara Bodhisattva of Cheongnyongsa Temple, Gimje
김제 청룡사 목조관음보살좌상,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김제 청룡사 목조관음보살좌상
영문명칭 Wooden Seated Avalokitesvara Bodhisattva of Cheongnyongsa Temple, Gimje
한자 金堤 靑龍寺 木造觀音菩薩坐像
주소 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 금산리 47-3
지정번호 보물 제1833호
지정일 2014년 9월 19일
분류 유물/불교조각/목조/불상
시대 조선시대
수량/면적 1구(발원문 1점, 후령통 1점)
웹사이트 김제 청룡사 목조관음보살좌상,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기존 국문

김제 청룡사 관음보살 좌상은 완주군 봉서사 향로전에 봉안했던 관음보살상이다.

특히 1655년에 봉안한 제작시기와 당시 대표적 조각승인 조능이 제작한 점, 그리고 모든 중생의 성불을 염원하는 발원문을 남기고 있어 17세기 중엽경 불상연구에 기준이 된다.

불상의 양식도 조선후기의 대중적인 미의식을 담아 비록 상은 소형이지만 이 시기의 특징을 잘 반영하고 있으며, 현재까지 조능이 수조각승으로 참여한 작품 가운데 시기적으로 가장 빠른 작품이라는 점이 인정되어 2014년 9월 19일 전라북도 유형문화재에서 국가지정문화재 보물로 승격·지정되었다.


수정 국문

초고

청룡사는 고려시대 승려 혜덕왕사가 1079년 금산사를 중창할 당시 세운 40여개의 암자 중 하나로, 용장사로 불렸다. 정유재란으로 소실되었던 절터에 1954년 용봉스님이 토굴을 만들어 다시 수도처로 삼았다. 1963년 월정스님이 가람을 정비하면서 용천암이라 이름 붙였다가 1983년에 청룡사로 개명하였다.

관음보살은 현실에서 고통 받는 중생을 구하는 자비로운 보살이다. 본래 완주 봉서사 향로전에 모셔져 있었던 관음보살상은 1655년 왕실의 안녕과 모든 중생의 성불을 염원하며 조성되었으며, 당시 활발히 활동했던 조각승 조능 외에 6명의 조각승이 제작에 참여하였다.

나무로 만든 후 금을 덧입힌 불상은 머리에 화려한 보관을 쓰고, 고개를 약간 앞으로 숙인 채 앉아 있는 모습이다. 보관은 후대에 새로 제작한 것이며, 귀걸이나 목걸이 등 다른 장엄은 하지 않았다. 양 손 모두 엄지와 중지를 맞대고 있으며, 오른손은 들어 올리고 왼손은 무릎 위에 두는 수인을 취하고 있다.

45㎝ 높이의 작은 규모이지만 본존불로 조성된 이 불상에서는 1997년 묘법연화경과 다라니경 등의 복장물이 확인되었으며, 이 때 만든 시기, 만든 사람, 시주자 등을 자세히 밝힌 조성발원문도 발견되었다.

얼굴 형태나 착의법 또한 17세기 중엽의 불상 양식을 잘 보여주며, 불상의 조성과 관련한 구체적인 정보가 남아있다는 점에서 17세기에 조성된 불상들을 연구하는 데 중요한 기준이 된다. 조각승인 조능이 수조각승으로 참여한 작품 중 시기적으로 가장 빠른 작품이라는 점도 중요하다.

1950년대에 봉서사가 화재로 소실되면서 함께 사라질 위기에 처했던 것을 청룡사로 모셔왔다고 전한다.

  • 다른 자료에서 설명되는 특징 중 '조능의 불상은 귀나 손가락 표현이 혜희의 방식과 유사하여 당시 전라도 지역에서 활동했던 법령의 조각유파가 혜희를 거쳐 점차 발전되어가는 과정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 넣을 것인지..?
  • 언제 어떤 경로로 청룡사에서 소장하게 되었는지 구체적으로 알 수 없음.

1)한국전쟁 때 인민군 주둔 때문에 / 1958년에 화재로 봉서사가 소실되면서 사라질 위기에 처했던 것을

2)불자가(혹은 어떤 거사가) (탱화와 함께) 불상을 챙겨 10여년간 개인적으로 모셨고,

3)(1950년대에 당시 주지스님이 / 1963년 월정스님이 / 1970년대에 관음전을 중건하면서 주지 스님이) 청룡사로 모셔왔다고 전한다.

  • 청룡사의 재건 연혁에 대한 설명에 차이가 있음. -> 1954년 용봉스님이 토굴을 만들어 다시 수도처로 삼았다. 1963년 월정스님이 가람을 정비하면서 용천암이라 이름 붙였다가 1983년에 청룡사로 개명하였다. / 혜덕왕사가 금산사 중창과 더불어 모악산 내에 40여개의 암자를 세웠는데 이 곳이 청룡사의 전신인 용장사이고 1954년 용봉 스님이 복원하면서 청룡사로 개칭하였다.

1차 수정

이 불상은 자비를 상징하는 관음보살을 나타낸 것이다.

1655년 왕실의 안녕과 모든 중생의 성불을 염원하며 조성되었으며, 당시 활발히 활동했던 조각승 조능 외에 6명의 조각승이 제작에 참여하였다. 본래 완주 봉서사 향로전에 모셔져 있었으나, 1950년대에 봉서사가 화재로 소실된 이후 청룡사로 옮겨왔다. 1997년에는 불상 내부에서 묘법연화경과 다라니경 등의 복장물이 확인되었으며, 이때 만든 시기, 만든 사람, 시주자 등을 자세히 밝힌 조성발원문도 발견되었다.

나무로 만든 후 금을 덧입힌 불상은 머리에 화려한 보관을 쓰고, 고개를 약간 앞으로 숙인 채 앉아 있는 모습이다. 보관은 최근에 새로 제작하였다.

영문

영문 해설 내용

참고 자료

→청룡사 연혁 ; 혜덕 왕사가 금산사를 크게 중창할 때 모악산 내에 세운 40여 암자 중 하나였다. 정유재란 때 소실된 것을 임씨대법화 보살이 1956년 토굴을 만들어 용천대라 불렀다. 1963년 월정스님이 토굴과 요사채를 건립하여 용천암으로 개명하고 계속해서 진입로를 내고 관음전을 복원하였으며 1983년 청룡사로 개명하고 선방 요사채를 지었다. 전통사찰 제103호이며, 목조관음보살좌상은 보물 1883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