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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 죽산리 구 일본인 농장 사무소"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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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자료)
(영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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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문'''==
 
=='''해설문'''==
===기존 국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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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문===
이 건물은 일제 강점기에 김제 죽산면에서 농장을 운영하던 일본인의 농장 사무소로 건립되었다. 광복 후 약 10년간 병원으로 사용되다가 1968년 이후 농업기반공사 동진지부 죽산지소로 35년간 사용되었다. 크림색 외벽과 붉은색 띠를 두른 듯한 오목한 모양의 지붕 등 서양식 건물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조정래의 대하소설 ‘아리랑’의 무대로도 유명하며, 일본인이 자행한 토지 수탈의 역사를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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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 죽산리 구 일본인 농장 사무소는 1926년에 일본인 하시모토 나카바가 자신이 운영하는 농장의 사무소로 세웠다. 하시모토 나카바는 1905년 군산에 정착한 이후 전라북도 일대의 넓은 땅을 사들여 농장을 이루었으며, 1915년부터 김제지역에서 본격적인 농장 경영을 시작했다.  
  
===기존 국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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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의 외벽은 시멘트 벽돌을 쌓은 후 크림색 페인트로 마감했고, 오목한 슬레이트 지붕은 붉은 띠를 둘러 장식했다. 이러한 모습은 당시 서양식 건축물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초고====
 
이곳은 일본인 소유였던 하시모토 농장의 사무실 건물로, 1926년에 세워졌다.  
 
  
농장주였던 하시모토 나카바는 러일전쟁의 통역관 출신으로 1906년 군산으로 들어왔다. 이후 전라북도 일대의 넓은 땅을 사들여 농장을 이루었으며, 1916년부터 김제 지역에서 농장 경영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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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후에는 병원으로 사용되었으며, 1968년부터 2003년까지는 한국농어촌공사의 전신인 농업기반공사의 출장소로 이용하였다. 이 사무소는 서양의 근대적 건축양식이 반영되어 세워진 초창기 건물이라는 건축사적 의의와, 김제와 만경 일대의 토지가 일본인들에 의해 수난을 받던 시대의 증거물로써 역사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 건물은 한국전쟁 이후 10여 년 간 병원으로 사용되었으며, 1968년부터 2003년까지 35년 동안 현 한국농어촌공사의 전신인 동진농지개량조합(2000년 이후 농업기반공사로 명칭 변경)의 출장소로 이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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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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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mer Japanese Plantation Office in Juksan-myeon, Gimje'''
  
건물 외벽은 시멘트 벽돌을 쌓은 후 크림색 페인트로 마감하고 하부에 인조석을 붙였다. 오목한 형태의 슬레이트 지붕은 함석으로 띠를 둘러 장식 효과를 냈으며, 정면 중앙부에 돌출된 현관을 중심으로 좌우 대칭을 이루고 있다. 이러한 외관상의 특징은 근대 건축 양식이 적용된 결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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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s building was built in 1926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1910-1945) as the office of a plantation operated by Hashimoto Nakaba.
  
''용도가 여러 차례 바뀐 만큼 내부 구조는 건립 당시와 차이가 있어 소장실의 위치가 바뀌었고 동쪽에 있었던 화장실이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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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uring the colonial period, Japanese landowners set up large-scale farms in the bountiful plains of the Gimje area to exploit the land and export excessive amounts of rice to Japan. Among those were Hashimoto Nakaba, who settled in Gunsan in 1905 and purchased a significant amount of farmland in the Jeollabuk-do area. He began operating a plantation in Gimje in 1915.
  
서쪽에 있는 건물은 쌀을 저장하는 창고로, 관리인들이 잠을 잘 수 있는 숙직실과 작은 부엌이 함께 있다. 툇마루에 유리를 설치한 외관이 돋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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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fter liberation from colonial rule, this building was turned into a hospital. Then, from 1968 to 2003, it was used as the local office of the Korea Agricultural and Rural Infrastructure Corporation (today's Korea Rural Community Corporation).
  
''하시모토는 조정래의 대하소설 ‘아리랑’에서도 중요한 인물로 등장한다.'' 이곳은 일본인이 자행한 토지 수탈의 역사를 보여준다는 역사적 의미를 인정받아 2003년 등록문화재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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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exterior walls were built by stacking cement bricks, which were then painted in a cream color. The slate roof is decorated with a red trim. The symmetrical design with the protruded porch at the center is typical  of Western-style architecture in Korea at that time.
  
*기울임꼴 내용 넣을 것인지 검토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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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 해설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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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건물은 일제강점기인 1926년에 일본인 하시모토 나카바가 운영하는 농장의 사무소로 세워졌다.  
====수정====
 
이곳은 일제강점기 하시모토 농장의 사무소로 1926년에 세워졌다. 농장주였던 하시모토 나카바는 1905년 군산에 정착한 이후 전라북도 일대의 넓은 땅을 사들여 농장을 이루었으며, 1915년부터 김제 지역에서 본격적인 농장 경영을 시작했다. 조정래의 대하소설 『아리랑』에 등장하는 일본인 농장주의 실제 모델이기도 하다.
 
 
 
이 건물은 광복 후에는 병원으로 사용되었으며, 1968년부터 2003년까지 한국농어촌공사의 전신인 농업기반공사의 출장소로 이용되었다.
 
 
 
건물 외벽은 시멘트 벽돌을 쌓은 후 크림색 페인트로 마감했고, 슬레이트 지붕은 붉은 띠를 둘러 장식했다. 중앙에 돌출된 현관을 중심으로 좌우 대칭을 이룬 것은 당시 서양식 건축물의 특징이다.
 
 
 
===영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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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 지역은 넓은 평야가 펼쳐져 있어 예로부터 전국 최대의 쌀 생산 지역이었다. 일제강점기에는 일본인들이 들어와 대규모의 농장을 경영하며 쌀을 수탈하여 일본으로 반출하였다. 하시모토 나카바는 1905년 군산에 정착한 이후 전라북도 일대의 넓은 땅을 사들여 농장을 이루었으며, 1915년부터 김제 지역에서 본격적인 농장 경영을 시작했다.
  
===영문 해설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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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후 이 건물은 병원으로 사용되었으며, 1968년부터 2003년까지 한국농어촌공사의 전신인 농업기반공사의 출장소로 이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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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 외벽은 시멘트 벽돌을 쌓은 후 크림색 페인트로 마감했고, 오목한 슬레이트 지붕은 붉은 띠를 둘러 장식했다. 중앙에 돌출된 현관을 중심으로 좌우 대칭을 이룬 것은 당시 서양식 건축물의 특징이다.
  
 
=='''참고 자료'''==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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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문화유산해설문]]
 
[[분류:문화유산해설문]]
 
[[분류:김제군 문화유산]]
 
[[분류:김제군 문화유산]]
[[분류:국가등록화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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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국가등록문화재]]

2020년 5월 26일 (화) 13:34 기준 최신판


김제 죽산리 구 일본인 농장 사무소
Former Japanese Plantation Office in Juksan-myeon, Gimje
김제 죽산리 구 일본인 농장 사무소,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김제 죽산리 구 일본인 농장 사무소
영문명칭 Former Japanese Plantation Office in Juksan-myeon, Gimje
한자 金提 竹山里 舊 日本人 農場 事務所
주소 전북 김제시 죽산면 죽산리 570-20
지정번호 국가등록문화재 제61호
지정일 2003년 6월 30일
분류 등록문화재/기타/업무시설
시대 일제강점기
수량/면적 2동(사무소 1동, 부속건물 1동) 1층, 사무소 건축면적 97.6㎡, 부속건물 건축면적 140㎡
웹사이트 김제 죽산리 구 일본인 농장 사무소,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김제 죽산리 구 일본인 농장 사무소는 1926년에 일본인 하시모토 나카바가 자신이 운영하는 농장의 사무소로 세웠다. 하시모토 나카바는 1905년 군산에 정착한 이후 전라북도 일대의 넓은 땅을 사들여 농장을 이루었으며, 1915년부터 김제지역에서 본격적인 농장 경영을 시작했다.

이곳의 외벽은 시멘트 벽돌을 쌓은 후 크림색 페인트로 마감했고, 오목한 슬레이트 지붕은 붉은 띠를 둘러 장식했다. 이러한 모습은 당시 서양식 건축물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광복 후에는 병원으로 사용되었으며, 1968년부터 2003년까지는 한국농어촌공사의 전신인 농업기반공사의 출장소로 이용하였다. 이 사무소는 서양의 근대적 건축양식이 반영되어 세워진 초창기 건물이라는 건축사적 의의와, 김제와 만경 일대의 토지가 일본인들에 의해 수난을 받던 시대의 증거물로써 역사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영문

Former Japanese Plantation Office in Juksan-myeon, Gimje

This building was built in 1926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1910-1945) as the office of a plantation operated by Hashimoto Nakaba.

During the colonial period, Japanese landowners set up large-scale farms in the bountiful plains of the Gimje area to exploit the land and export excessive amounts of rice to Japan. Among those were Hashimoto Nakaba, who settled in Gunsan in 1905 and purchased a significant amount of farmland in the Jeollabuk-do area. He began operating a plantation in Gimje in 1915.

After liberation from colonial rule, this building was turned into a hospital. Then, from 1968 to 2003, it was used as the local office of the Korea Agricultural and Rural Infrastructure Corporation (today's Korea Rural Community Corporation).

The exterior walls were built by stacking cement bricks, which were then painted in a cream color. The slate roof is decorated with a red trim. The symmetrical design with the protruded porch at the center is typical of Western-style architecture in Korea at that time.

영문 해설 내용

이 건물은 일제강점기인 1926년에 일본인 하시모토 나카바가 운영하는 농장의 사무소로 세워졌다.

김제 지역은 넓은 평야가 펼쳐져 있어 예로부터 전국 최대의 쌀 생산 지역이었다. 일제강점기에는 일본인들이 들어와 대규모의 농장을 경영하며 쌀을 수탈하여 일본으로 반출하였다. 하시모토 나카바는 1905년 군산에 정착한 이후 전라북도 일대의 넓은 땅을 사들여 농장을 이루었으며, 1915년부터 김제 지역에서 본격적인 농장 경영을 시작했다.

광복 후 이 건물은 병원으로 사용되었으며, 1968년부터 2003년까지 한국농어촌공사의 전신인 농업기반공사의 출장소로 이용되었다.

건물 외벽은 시멘트 벽돌을 쌓은 후 크림색 페인트로 마감했고, 오목한 슬레이트 지붕은 붉은 띠를 둘러 장식했다. 중앙에 돌출된 현관을 중심으로 좌우 대칭을 이룬 것은 당시 서양식 건축물의 특징이다.

참고 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