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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umsansa Temple and Surroundings, Gimj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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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umsansa Temple was first established in 599 during the Baekje period (18 BCE-660 CE). In 766, during the Unified Silla period (668-935), it was expanded by Monk Jinpyo. After Jinpyo became a Buddhist monk at Geumsansa Temple at the age of 12, it is said that he wandered the country travelling to sacred mountains while practicing meditation, and eventually was ordained by Ksitigarbha (Bodhisattva of Great Vows) and Maitreya (Future Buddha). Geumsansa became the head temple of the cult of Maitreya, which believes Maitreya will bring salvation to the world. Furthermore, it became known as a sacred site of the Consciousness-Only School (Yogachara), which is founded on Maitreya’s teaching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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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1079, during the Goryeo period (918-1392), the temple's head monk Sohyeon (1038-1096, i.e. Royal Preceptor Hyedeok) once again expanded the temple to include three large areas: the main section where the relics or remains of the Buddha were enshrined, a section where Buddhist scriptures were taught and published, and a section where monks practiced meditation. It was at this time the temple reached its greatest size, and it is presumed that the majority of the temple's remaining stone monuments date to this peri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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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the Joseon period (1392-1910), amidst the Japanese invasions of 1592, one of the temple's monks, Cheoyeong, organized an army of 1,000 monks, trained them here, and even participated in battle. Due to the retaliation of the Japanese army, the entire temple and its affiliated Buddhist hermitages were destroyed by fire. In 1601, some monks and disciples started rebuilding the temple, and by 1635, the main area for enshrining the Buddha were enshrined. The other two areas for lectures and meditation were not rebuil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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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fterward, the temple underwent various reconstructions and repairs. In 1961, when Monk Songwolju became the temple's head monk, the majority of the buildings of the temple were renovated. However, in 1986, Daejeokgwangjeon Hall, which had been designated Treasure No. 476, was destroyed by fire and reconstructed in 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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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ain worship hall of Geumsansa Temple is Mireukjeon Hall, which enshrines a 12 m-tall statue of Maitreya and is designated as National Treasure No. 62. In addition, the temple is home to ten Treasures, one Jeollabuk-do Tangible Cultural Heritage, and one National Registered Cultural Heritage. In 2008, in recognition of the temple’s history, culture, and religious value, the entire temple complex was designated as Historic Site No. 496.
  
 
===영문 해설 내용===
 
===영문 해설 내용===
금산사는 599년에 창건되었으며, 766년 통일신라시대의 승려인 진표에 의해 중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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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산사는 백제시대인 599년에 창건되었으며, 766년 통일신라시대의 승려인 진표에 의해 중창되었다. 진표는 12세에 금산사에서 출가한 뒤 명산을 찾아다니며 수행에 전념하였고, 마침내 지장보살과 미륵으로부터 계를 받았다고 한다. 이후 금산사는 미래의 부처인 미륵이 세상을 구원한다는 미륵신앙의 본산이 되었고, 미륵의 가르침을 근간으로 하는 유가종의 성지로 명성을 얻게 되었다.  
 
 
진표는 12세에 금산사에서 출가한 뒤 명산을 찾아다니며 수행에 전념하였고, 마침내 지장보살과 미륵으로부터 계를 받았다고 한다. 이후 금산사는 미래의 부처인 미륵이 세상을 구원한다는 미륵신앙의 본산이 되었고, 미륵의 가르침을 근간으로 하는 유가종(Yogachara, Consciousness-Only School)의 성지로 명성을 얻게 되었다.  
 
  
고려시대에는 1079년 소현(1038-1096, 시호: 혜덕왕사)이 주지로 취임하면서 중창이 한 차례 더 이루어졌고, 금산사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가람을 이루었다.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신 사찰 구역, 경전 간행과 교학을 위한 광교원, 스님들의 수행을 위한 봉천원을 갖추었으며, 현존하는 석조 문화재 대부분이 모두 이때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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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에는 1079년 소현(1038-1096, 시호: 혜덕왕사)이 주지로 취임하면서 중창이 한 차례 더 이루어졌고,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신 사찰 구역, 경전 간행과 교학을 위한 광교원, 스님들의 수행을 위한 봉천원을 갖추었다. 이때가 금산사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가람을 이루었던 시기였고, 현존하는 석조 문화재 대부분이 모두 이때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시대인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난 후, 금산사의 스님인 처영은 1,000여 명의 승군을 조직하여 이곳에서 훈련시키고 직접 여러 전투에 참가하기도 하였다. 이 때문에 왜군의 보복을 당해 사찰 전체와 부속 암자들이 모두 소실되었다. 1601년 여러 스님들과 문도들이 사찰을 재건하기 시작했고, 1635년 사찰 구역이 재건되었다. (광교원 구역과 봉천원 구역은 재건하지 못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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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인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난 후, 금산사의 스님인 처영은 1,000여 명의 승군을 조직하여 이곳에서 훈련시키고 직접 여러 전투에 참가하기도 하였다. 이 때문에 왜군의 보복을 당해 사찰 전체와 부속 암자들이 모두 소실되었다. 1601년 여러 스님들과 문도들이 사찰을 재건하기 시작했고, 1635년 사찰 구역이 재건되었다. 광교원 구역과 봉천원 구역은 복원되지 않았다.
  
 
이후 금산사는 여러 차례 보수, 중창되었고, 특히 1961년에 송월주 스님이 주지로 부임한 이후 사찰 내의 대부분의 건물들이 보수되었다. 그러나 보물 제476호로 지정되어 있던 대적광전은 1986년 화재로 전소되었으며, 1990년에 다시 지어졌다.
 
이후 금산사는 여러 차례 보수, 중창되었고, 특히 1961년에 송월주 스님이 주지로 부임한 이후 사찰 내의 대부분의 건물들이 보수되었다. 그러나 보물 제476호로 지정되어 있던 대적광전은 1986년 화재로 전소되었으며, 1990년에 다시 지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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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산사의 중심 건물인 미륵전은 높이가 약 12m에 달하는 미륵불을 모시고 있으며, 국보 제62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 밖에도 보물 10점,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1점, 국가등록문화재 1점을 보유하고 있으며, 사찰의 역사, 문화, 사상적 가치를 인정받아 사찰 일원이 2008년 사적 제496호로 지정되었다.
 
금산사의 중심 건물인 미륵전은 높이가 약 12m에 달하는 미륵불을 모시고 있으며, 국보 제62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 밖에도 보물 10점,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1점, 국가등록문화재 1점을 보유하고 있으며, 사찰의 역사, 문화, 사상적 가치를 인정받아 사찰 일원이 2008년 사적 제496호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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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3월 25일 (수) 11:03 기준 최신판

김제 금산사 일원
Geumsansa Temple and Surroundings, Gimje
한국학중앙연구원 디지털인문학연구소.
대표명칭 김제 금산사 일원
영문명칭 Geumsansa Temple and Surroundings, Gimje
한자 金堤 金山寺 一圓
주소 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 모악15길 1, 일원 (금산리)
지정번호 사적 제496호
지정일 2008년 12월 18일
분류 유적건조물
관리자 금산사
수량/면적 202,304㎡
웹사이트 김제 금산사 일원,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모악산 금산사는 백제 법왕 원년(599)에 창건되었다. 통일신라 때 진표율사가 크게 중창하였다. 그 후 유가종찰(법상종찰)과 미륵성지로 명성을 구축하였고, 후백제 견훤이 아들 신검에 의해 유폐되기도 하였다. 고려 문종 33년(1079) 혜덕왕사 소현에 의해 대규모로 중창되었고, 전성기를 맞이하였다. 부처님의 진신사리와 불상을 모신 대사구, 경전의 판각과 편찬, 강의를 담당하는 광교원, 대중스님이 거주하는 봉천원의 3원 체제를 갖춘 대가람으로 일신되었다. 한국불교 역사상 불보, 법보, 승보의 3보 사찰의 원형이 되었다.

조선시대 임진왜란이 발생하자 뇌묵 처영대사는 1,000여 명의 승군을 훈련시키고, 직접 전투에 참가하여 행주산성, 독왕산성, 금산배 고개 전투에서 승리하였고, 남원 교룡산성을 수축하였다. 정유재란 당시 왜군의 보복으로 산내 전각이 모두 전소되었고, 인조 13년(1635) 수문대사와 문도들에 의해 대사구역이 재건되었다. 그 후 1961년 송월주 스님이 주지로 부임하여 중건과 중수를 계속하였다. 1986년 12월 6일 문화재청의 실측과정 중에 보물 제476호 대적광전이 화재로 전소되었으나, 송월주 대종사와 문도들에 의해 1990년 복원되었으며, 대대적인 도량 정비를 거쳐 호남제일의 가람으로 웅장한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문화재는 국보 1점, 보물 10점, 지방문화재 1점을 소유하고 있으며, 역사·문화·사상적으로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영문

Geumsansa Temple and Surroundings, Gimje

Geumsansa Temple was first established in 599 during the Baekje period (18 BCE-660 CE). In 766, during the Unified Silla period (668-935), it was expanded by Monk Jinpyo. After Jinpyo became a Buddhist monk at Geumsansa Temple at the age of 12, it is said that he wandered the country travelling to sacred mountains while practicing meditation, and eventually was ordained by Ksitigarbha (Bodhisattva of Great Vows) and Maitreya (Future Buddha). Geumsansa became the head temple of the cult of Maitreya, which believes Maitreya will bring salvation to the world. Furthermore, it became known as a sacred site of the Consciousness-Only School (Yogachara), which is founded on Maitreya’s teachings.

In 1079, during the Goryeo period (918-1392), the temple's head monk Sohyeon (1038-1096, i.e. Royal Preceptor Hyedeok) once again expanded the temple to include three large areas: the main section where the relics or remains of the Buddha were enshrined, a section where Buddhist scriptures were taught and published, and a section where monks practiced meditation. It was at this time the temple reached its greatest size, and it is presumed that the majority of the temple's remaining stone monuments date to this period.

In the Joseon period (1392-1910), amidst the Japanese invasions of 1592, one of the temple's monks, Cheoyeong, organized an army of 1,000 monks, trained them here, and even participated in battle. Due to the retaliation of the Japanese army, the entire temple and its affiliated Buddhist hermitages were destroyed by fire. In 1601, some monks and disciples started rebuilding the temple, and by 1635, the main area for enshrining the Buddha were enshrined. The other two areas for lectures and meditation were not rebuilt.

Afterward, the temple underwent various reconstructions and repairs. In 1961, when Monk Songwolju became the temple's head monk, the majority of the buildings of the temple were renovated. However, in 1986, Daejeokgwangjeon Hall, which had been designated Treasure No. 476, was destroyed by fire and reconstructed in 1990.

The main worship hall of Geumsansa Temple is Mireukjeon Hall, which enshrines a 12 m-tall statue of Maitreya and is designated as National Treasure No. 62. In addition, the temple is home to ten Treasures, one Jeollabuk-do Tangible Cultural Heritage, and one National Registered Cultural Heritage. In 2008, in recognition of the temple’s history, culture, and religious value, the entire temple complex was designated as Historic Site No. 496.

영문 해설 내용

금산사는 백제시대인 599년에 창건되었으며, 766년 통일신라시대의 승려인 진표에 의해 중창되었다. 진표는 12세에 금산사에서 출가한 뒤 명산을 찾아다니며 수행에 전념하였고, 마침내 지장보살과 미륵으로부터 계를 받았다고 한다. 이후 금산사는 미래의 부처인 미륵이 세상을 구원한다는 미륵신앙의 본산이 되었고, 미륵의 가르침을 근간으로 하는 유가종의 성지로 명성을 얻게 되었다.

고려시대에는 1079년 소현(1038-1096, 시호: 혜덕왕사)이 주지로 취임하면서 중창이 한 차례 더 이루어졌고,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신 사찰 구역, 경전 간행과 교학을 위한 광교원, 스님들의 수행을 위한 봉천원을 갖추었다. 이때가 금산사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가람을 이루었던 시기였고, 현존하는 석조 문화재 대부분이 모두 이때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시대인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난 후, 금산사의 스님인 처영은 1,000여 명의 승군을 조직하여 이곳에서 훈련시키고 직접 여러 전투에 참가하기도 하였다. 이 때문에 왜군의 보복을 당해 사찰 전체와 부속 암자들이 모두 소실되었다. 1601년 여러 스님들과 문도들이 사찰을 재건하기 시작했고, 1635년 사찰 구역이 재건되었다. 광교원 구역과 봉천원 구역은 복원되지 않았다.

이후 금산사는 여러 차례 보수, 중창되었고, 특히 1961년에 송월주 스님이 주지로 부임한 이후 사찰 내의 대부분의 건물들이 보수되었다. 그러나 보물 제476호로 지정되어 있던 대적광전은 1986년 화재로 전소되었으며, 1990년에 다시 지어졌다.

금산사의 중심 건물인 미륵전은 높이가 약 12m에 달하는 미륵불을 모시고 있으며, 국보 제62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 밖에도 보물 10점,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1점, 국가등록문화재 1점을 보유하고 있으며, 사찰의 역사, 문화, 사상적 가치를 인정받아 사찰 일원이 2008년 사적 제496호로 지정되었다.

시각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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