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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순 김덕성 영세불망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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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고은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20년 5월 4일 (월) 03:20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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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순.김덕순 영세불망비
Stele of Kim Yun-sun and Kim Deok-sun
김윤순.김덕순 영세불망비,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김윤순.김덕순 영세불망비
영문명칭 Stele of Kim Yun-sun and Kim Deok-sun
한자 金潤洵․金德成 永世不忘碑
주소 경상남도 함안군 가야읍 묘사리 산87-5
지정번호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661호
지정일 2019년 11월 7일
분류 기록유산/서각류/금석각류/비
시대 조선시대
수량/면적 1/16㎡
웹사이트 김윤순.김덕순 영세불망비,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조선 정조 10년 병오년(1786년), 고을에 큰 기근(饑饉)이 들어 나라에 바칠 세곡(稅穀)이 누적되어 고을민들이 고충을 겪자 윤순(潤洵) 공(公)과 종질(從姪) 덕성(德成) 공(公)은 수차례 입궐하여 고을의 참상을 상세히 고(告)하여 세곡 1만 8000석 전량을 탕감 받았다. 이에 군민들은 두 공(公)의 공덕을 기리고자 군의 북쪽에 불망비(不忘碑)를 세웠다.

그 후 헌종 12년 병오년(1846년), 군민들이 합심하여 현 위치인 덕성(德成) 공(公)의 묘(墓) 아래에 낡은 비석과 비각을 다시 세웠다.

비각은 경신년(1920년)에 또 다시 중수(重修)하였으며, 그 후 몇 차례에 걸쳐 부분 보수하였다.

영문

Stele of Kim Yun-sun and Kim Deok-sun


영문 해설 내용

이 비는 조선 시대 이 지역에서 명망 있던 김윤순과 그의 사촌 형제의 아들 김덕순을 기리기 위해 세운 것이다.

1786년, 고을에 큰 기근이 들어 세곡이 누적되어 마을 사람들이 고충을 겪자 김윤순과 김덕순은 이들을 위해 수차례 정부에 탄원하여 세곡을 전량 탕감받았다. 이에 주민들은 두 사람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 불망비를 세웠다.

이 비석과 비각은 원래 마을 북쪽에 세워졌으나, 1846년에 현재 위치인 김덕순의 묘 입구로 이전했다. 1920년에 비각을 중수했으며, 그 후로도 몇 차례 부분 보수하였다. 이러한 종류의 공덕을 칭송하는 비석은 보통 관아에서 세우는 경우가 많은데, 이 비석은 마을 사람들이 스스로 세웠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 김윤순은 역대인물 종합정보시스템이나 민백에서 검색해도 나오지 않고, 김덕순은 여러 명인데 영조 시기에 과거를 치른 인물인 듯 하나 생몰년이 없습니다.
  • 마지막 문장은 “창녕 진만석 영세불망비”에서 참고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