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인조씨 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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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인 조씨의 묘
귀인조씨묘, 두산백과.
대표명칭 귀인 조씨의 묘
한자 貴人 趙氏의 墓
주소 경기도 부천시 오정구 여월동 산 32
지정번호 부천시 향토유적 제6호



해설문

기존 국문

귀인조씨(貴人趙氏, 1707~1780)는 조선시대 영조의 후궁으로 본관은 풍양이며 1707년(숙종 33년) 아버지 조태징(趙台徵)과 어머니 밀양박씨(密陽朴氏) 사이에서 태어나, 10세 때인 1716년(숙종 42년) 입궁하였고, 1735년(영조 11년) 9월 9일 영조의 여덟째 딸인 옹주를 낳아, 한 달 후인 10월 16일 내명부 종4품 숙원(淑媛)에 봉작되었다. 이때 낳은 옹주는 다음 해에 사망하였으나, 1740년(영조 16년) 영조의 열째 딸인 화유옹주(和裕翁主)를 출산하여 이후 종2품 숙의(淑儀)로 진봉되었으며, 1778년(정조 2년) 정조에 의해 특별히 종1품 귀인(貴人)에 진봉되었고 1780년(정조 4년) 10월 5일, 74세를 일기로 사망하였다. 『영세보장(永世寶藏)》(1797)』

분묘는 본래 부천시 작동 산112-19번지 위치하였으나, 2005년 4월 부천시 여월동 산32번지로 이장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출처 : 부천시 향토문화재 지정 자료(2021.7.28.)


수정 국문

조선의 21대 임금 영조(英祖, 재위 1724~1776)의 후궁이었던 조씨(趙氏, 1707~1780)의 무덤이다.

조씨는 숙종 42년(1716) 10살의 나이로 입궁하였으며, 영조 11년(1735) 영조의 여덟째 딸을 낳은 후 종4품 숙원(淑媛)에 봉작되었다. 그녀의 첫 아이는 이듬해에 죽었지만, 영조 16년(1740) 다시 화유옹주(和裕翁主, 1740~1777)를 낳고 이후 종2품 숙의(淑儀)가 되었으며, 왕위를 이은 정조(正祖, 재위 1776~1800)에 의해 정조 2년(1778) 종1품 귀인(貴人)의 봉작을 받았다.

봉분 주위에는 낮은 담이 둘러져 있으며, 봉분 앞에는 묘비, 혼유석, 상석, 향로석 등의 석물들이 갖추어져 있다. 이 중 묘비는 정조 21년(1797)에 세워진 것으로, 비문은 화유옹주의 남편 황인점(黃仁點, 1732~1802)이 지었다. 또 묘역을 표시하는 망주석 1쌍은 무덤 왼쪽에 나란히 있는 딸 화유옹주 부부의 합장묘(향토유적 제7호)와 영역을 공유하고 있다.

본래 조씨의 묘는 작동에 있었는데, 2005년 4월 지금의 위치로 이장했다. 기존의 묘역은 봉분 주변을 거대한 돌이 에워싼 명당에 남향으로 위치해 당시 왕실 묘의 위용과 풍수 관념을 엿볼 수 있었다고 한다.

  • 인물의 생년(1707년생 vs 1697년생)과 처음 후궁이 된 시점에 차이가 있음(향문 1726년, 지자체 문안 1735년) -> 『조선왕조실록』 1726년에는 이씨의 숙의 봉작(훗날의 영빈 이씨로 보임)만 기록되어 있으므로 년도 비정은 지자체 문안에 근거해 작성.
  • 원래 조성되었던 묘 인근에 그녀의 첫째 딸(봉작을 받기 전에 사망해 ‘신생옹주’로 칭해짐)의 묘가 있었다고 한다.
  • 조씨의 제사는 사위인 황인점의 집안에서 모신다.


1차 수정

영문

참고자료

  • 부천 황인점, 화유옹주 묘 / 화유옹주의 어머니 귀인 조씨의 묘 / 신생옹주 묘와 함께 주목해 볼 역사의 현장, 김희태의 ‘이야기가 있는 역사여행’, 네이버 블로그 https://blog.naver.com/bogirang/221810964918 → 묘역 사진
  • 귀인 조씨 (영조), 위키백과 https://ko.wikipedia.org/wiki/귀인_조씨_(영조)
  • 귀인 조씨 묘, 디지털부천문화대전 http://bucheon.grandculture.net/bucheon/toc/GC01601122 → 귀인조씨(貴人趙氏)[1697~1780]에 대한 사항은 사위인 창원황씨 가에 전해 오는 『영세보장(永世寶藏)』에 수록된 귀인 조씨의 묘표(墓表)를 통해 알 수 있다. 귀인 조씨는 1697년(숙종 33) 10월 16일 아버지 풍양조씨와 어머니 밀양박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1716년 10세의 나이로 입궁하여 29세인 1726년(영조 2)에 숙원(淑媛)이 되었다. 1740년(영조 16) 영조의 열 번째 딸인 화유옹주(和柔翁主)를 낳았다. 화유옹주 위로 낳은 신생옹주(新生翁主)도 있었으나 일찍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이후 숙의(淑儀)가 되었다가 1778년(정조 2) 귀인(貴人)이 되었다. 1780년 84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정조는 화성행차를 위해 부평을 지나며 귀인 조씨 묘와 화유옹주 묘에 관원을 보내 제를 올리기도 하였다. / 이장하기 전 작동에 있던 묘는 남향의 배치에 묘 주변을 거대한 돌이 에워싸는 명당에 위치했기 때문에 이 묘를 통해 당시 왕실 묘의 위용과 풍수관념을 볼 수 있었으며, 인근에는 신생옹주 묘가 있었다고 한다. / 봉분은 2단의 석축 위에 놓여 있다. 특히, 두 번째 석축은 장방형의 화강암 판석으로 축조되었다. 묘 앞에는 혼유석 1기, 비석 1기, 향로석 1기, 망주석 2기 등의 석물들이 갖춰져 있다. 이 가운데 비석과 망주석은 새로 세워진 것으로 보인다. 묘비는 옥개형으로 높이는 149㎝이며, 상석의 크기는 가로 131㎝, 세로 88㎝, 두께 42㎝이다. 묘표는 귀인 조씨가 세상을 떠난 지 17년만인 1797년(정조 21)에 세워졌으며, 글은 사위인 황인점이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