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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upa and Stele of State Preceptor Bogak at Ingaksa Temple, Gunw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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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9월 12일 (토) 04:04 판


군위 인각사 보각국사탑 및 비
Stupa and Stele of State Preceptor Bogak at Ingaksa Temple, Gunwi
군위 인각사 보각국사탑 및 비,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군위 인각사 보각국사탑 및 비
영문명칭 Stupa and Stele of State Preceptor Bogak at Ingaksa Temple, Gunwi
한자 軍威 麟角寺 普覺國師塔 및 碑
주소 경상북도 군위군 고로면 삼국유사로 250
지정번호 보물 제428호
지정일 1965년 9월 1일
분류 기록유산/서각류/금석각류/비
시대 고려시대
수량/면적 2기
웹사이트 군위 인각사 보각국사탑 및 비,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인각사에서 삼국유사를 저술하고 활동한 보각국사 일연이 입적*한 후 고려 충렬왕 15년(1289)에 세운 사리탑과 그의 평생 발자취를 상세하게 기록해 놓은 비이다. 일연은 늙은 어머니를 모시기 위해 인각사로 온 뒤 삼국유사를 쓰고 구산문 도회*를 여는 등의 활동을 하였다.

사리탑(舍利塔)*은 받침돌, 기단(基壇)*돌, 몸돌, 지붕돌로 구성되어 있고, 모양은 모두 8각형이다. 받침돌은 사리탑의 맨 밑바닥에 놓은 네모진 자연석이다. 기단돌은 받침돌 위에 8각형이지만 형태와 크기를 달리해 3단으로 놓았다. 맨 밑 기단돌은 팔각 지붕모양에 연꽃을 엎어 놓은 모양의 무늬가 새겨져 있다. 가운데 받침돌은 8각 면마다 동물이 조각되어 있다. 윗받침돌은 각 면마다 연꽃이 위로 향한 모양의 무늬가 새겨져 있다. 몸돌은 앞쪽에 ‘보각국사정조지탑’이란 탑 이름, 뒤쪽에는 불상 등을 모셔두는 공간을 상징하는 문틀이 조각되어 있다. 그 외 6면에는 서 있는 사천왕상과 연꽃 위에 서 있는 보살상을 새겼다. 지붕돌은 두꺼운 추녀* 밑을 위로 살짝 올리고, 경사는 급한 지붕에 추녀 끝에는 꽃장식이 있다. 지붕돌 위에는 연꽃이 위로 향한 모양의 무늬가 새겨진 보개*와 둥근 구슬 모양으로 조각된 보주*가 탑의 맨 꼭대기에 얹혀 있다. 사리탑의 건립은 일연스님이 입적한 1289년에서 비를 건립한 1295년 사이로 추정되며, 화북 3리 뒷산기슭에 세웠으나 1962년에 인각사 마당으로 옮겼다.

비는 충렬왕 21년(1295)에 세웠다. 비문(碑文)의 앞면은 당시의 문장가(文章家)인 민지가 왕명(王命)을 받들어 스승인 일연의 발자취와 추모의 정을 담았고, 뒷면은 비를 세우게 된 과정과 제자의 이름을 적었다. 그리고 비문의 글씨는 왕희지의 글씨를 집자集字*하여 만들었다고 한다. 비는 정유재란 당시 크게 훼손되어 비문 판독(判讀)*이 어려우나 일연스님 탄신 800주년을 기하여 재현한 비석(碑石)이 사찰 동쪽에 위치하고 있다.


  • 입적: (불교) 승려가 죽음
  • 구산문(九山門) 도회(都會) : (불교) ‘선종 9산문의 총결집법회’를 말하며, 각 산문山門에서 총림叢林을 열어 대표 고승(高僧) 대덕(大德) 수십명씩을 선발 파견하여 결집한 대규모 법회로서, 당시 불교국가 최대행사이자, 오늘날로 보자면 전국 종교지도자 총회에 해당된다.
  • 사리탑(舍利塔) : (불교) 부처님이나 승려의 사리를 모셔둔 탑
  • 기단(基壇) : 건축물의 터를 반듯하게 다듬은 다음에 터보다 한 층 높게 쌓은 단을 두르는 돌
  • 추녀 : 처마의 네 모서리에 있는 부재
  • 보개 : (불교) 탑에서 보륜寶輪 위에 덮개 모양을 하고 있는 부분
  • 보주 : (불교) 탑이나 석등 따위의 맨 꼭대기에 얹은 구슬 모양의 장식
  • 집자(集字) : 문헌에서 필요한 글자를 찾아 모음
  • 판독(判讀) : 어려운 문장이나 암호, 고문서 따위를 뜻을 헤아리며 읽음

영문

Stupa and Stele of State Preceptor Bogak at Ingaksa Temple, Gunwi

영문 해설 내용

고려시대의 승려 일연(1206-1289)의 승탑과 그의 생애와 업적을 기리는 탑비이다. 승탑은 스님의 사리나 유골을 모셔 놓은 일종의 무덤이다. 스님의 사후에 승탑과 탑비가 함께 조성된다.

일연은 1219년 설악산 진전사에서 출가하였으며, 1227년 승과에서 장원급제하였다. 이후 여러 사찰을 다니면서 수행에 정진하였고, 개경의 광명사에 머물고 있던 1283년 국사로 책봉되었으며, 이듬해 인각사의 주지가 되었다. 그는 인각사에 머무는 동안 『삼국유사』를 완성하였다. 삼국유사는 고구려, 백제, 신라 삼국의 역사, 신화, 전설 등을 편년체로 기록한 역사서로, 한국 고대사 연구에 매우 중요한 자료이다. 입적 후 '보각(Universal Enlightenment)'이라는 시호가 내려졌다.

승탑은 그가 입적한 1289년에서 탑비를 세운 1295년 사이에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 원래 인각사 동쪽에 있었던 것을 1962년 인각사 경내로 옮겼다. 사각형의 바닥돌, 3단의 받침돌, 팔각형의 몸돌, 지붕돌, 머리장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몸돌 중 한 면에 ‘보각국사의 승탑’이라는 뜻의 이름이 새겨져 있고, 반대편 면에는 사리가 모셔져 있음을 상징하는 문 모양을 새겼다. 나머지 여섯 면에는 사천왕상과 연꽃 위에 서 있는 보살상을 새겼다. 지붕돌의 살짝 들린 추녀 끝에는 꽃 모양의 장식을 달았고, 머리장식 부분은 불꽃으로 감싼 구슬 모양의 장식 등이 비교적 온전한 형태로 남아 있다.

1295년에 세워진 원래의 탑비는 현재 국사전 뒤편의 비각 안에 모셔져 있다. 임진왜란 때 크게 훼손되었으나, 오대산 월정사 등 여러 곳에 남아 있는 사본을 토대로 비문의 내용을 파악할 수 있다. 앞면의 비문은 고려시대의 문신이자 문장가인 민지(1248-1326)가 왕명을 받들어 지었고, 일연의 생애를 기술하고 그가 남긴 저술을 나열하였다. 뒷면의 비문은 탑비를 세운 과정과 제자들의 이름을 기록하였다. 비문의 글씨는 중국의 명필 왕희지의 글씨를 집자하여 만들었다고 한다. 2006년 사찰 동쪽에 새로 재현한 탑비를 세웠다.

가상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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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