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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http://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ccbaCpno=2113702220000 군위 위성리 석조약사여래입상],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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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군위 위성리 석조약사여래입상
 
|대표명칭=군위 위성리 석조약사여래입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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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명칭=Stone Standing Bhaisajyaguru Buddha in Wiseong-ri, Gunwi
 
|한자=軍威 渭城里 石造藥師如來立像
 
|한자=軍威 渭城里 石造藥師如來立像
|주소=경북 군위군 소보면 위성리 899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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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경상북도 군위군 소보면 위성리 899번지
 
|소장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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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정번호=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22호
 
|지정번호=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2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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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문'''==
 
=='''해설문'''==
 
===국문===
 
===국문===
석조약사여래입상이란 약사여래를 돌로 만들어 세운 것을 말하며, 약사여래란 중생의 질병을 치료하고 재앙에서 구원해 준다는 부처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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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사여래란 열두 가지 서원(誓願)을 세워 중생의 질병을 구제하고, 수명을 연장하며, 재화를 소멸하고, 의식을 만족시켜 주며, 중생을 바른길로 인도하여 깨달음을 얻게 하는 부처이다. 큰 연꽃 위에 앉아서, 왼손으로는 약병을 들고 있고, 오른손으로는 시무외인*을 맺고 있다. 석조 약사여래 입상이란 약사여래를 돌로 만들어 세운 것이다.
  
1987년에 매몰되어 있던 것을 지금의 위치에 옮겨 모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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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하부가 매몰되어 불상의 윗부분만 있었는데, 1987년 도난 직전 발견되어 지금의 위치에 모셔 두었다.
  
거대한 장방형(長方形)* 판석(板石)* 1매에 석불 전체를 감싸며 부처의 몸에서 나오는 성스러운 빛을 형상화한 광배(光背)*를 등지고 돋을새김*한 석불입상이다. 머리에는 작은 소라 모양의 머리카락이 조각되어 있고, 정수리에는 상투처럼 낮은 육계(肉髻)*를 표현하였다. 풍만한 사각형의 큰 얼굴에 큼직한 코, 꽉 다문 입, 목을 매우 짧게 표현했다. 오른손은 엄지와 검지를 맞댄 채 가슴 위로 들어 올렸고, 왼손은 배 앞에서 약그릇을 들고 있다. 옷은 듬직한 신체의 양어깨를 감싸고 발끝까지 흘러내리고 있다. 가슴에서 시작한 U자형의 주름은 배 부분에서 갈라지며 주름 간격이 넓고, 주름선도 얕게 새겨져 있으며, 광배 안에는 넝쿨무늬, 가장자리에는 불꽃무늬가 새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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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사여래 입상은 1장의 화강석을 잘 다듬어, 서 있는 모습의 석불을 도드라지게 조각하였다. 부처의 몸에서 나온 빛을 형상화한 배 모양의 광배에는 화려한 덩굴무늬와 불꽃무늬가 새겨졌다. 머리에는 작은 소라 모양의 머리카락이 조각되어 있고, 정수리에는 상투처럼 낮은 육계(肉髻)**를 표현하였다. 풍만한 사각형의 큰 얼굴에 큼직한 코, 꽉 다문 입, 목은 매우 짧아서 3개의 주름은 가슴 윗부분에 희미하게 새겼다. 오른손은 엄지와 검지를 맞댄 채 가슴 위로 들어 올렸고, 왼손은 배 앞에서 약그릇을 들고 있다. 신체는 듬직하고 묵중한 반면, 양어깨에 걸친 U자형의 옷 주름은 듬성듬성한 선으로 처리되어 대조적인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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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상의 크기나 신체의 비례, 손동작에서 통일 신라 시대 대형 석불 입상의 전통을 계승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신체의 묘사가 사실적이지 못하고 옷 주름 선도 일정한 모양을 보이고 있어 고려 시대 불상으로 추정한다.
  
불상의 크기나 신체의 비례, 손동작에서 통일신라시대에 대형 석불 입상의 전통을 계승한 것으로 보이나, 신체의 묘사가 사실적이지 못하고 옷주름 선도 간략화해 고려시대 불상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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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방형(長方形) : 길게 네모난 형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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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무외인(施無畏印): 부처가 중생의 두려움을 없애 주기 위하여 나타내는 형상. 팔을 들고 다섯 손가락을 펴 손바닥을 밖으로 향하여 물건을 주는 시늉을 하고 있다.
*판석(板石) : 판자 모양으로 가공되어 바닥이나 벽면에 붙이는 석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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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육계(肉髻): 부처의 정수리에 있는 뼈가 솟아 저절로 상투 모양이 된 것. 인간이나 천상에서 볼 수 없는 일이므로 이렇게 이른다.
*광배(光背) : 조각에서 인물의 성스러움을 드러내기 위하여 머리나 등의 뒤에 광명을 표현
 
*돋을새김: 조각에서, 평평한 면에 글자나 그림 따위를 도드라지게 새기는 일
 
*육계(肉髻) : (불교) 부처의 정수리에 있는 뼈가 솟아 저절로 상투 모양이 된 것
 
 
 
  
 
===영문===
 
===영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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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ne Standing Bhaisajyaguru Buddha in Wiseong-ri, Gunw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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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불상은 모든 중생의 질병을 고치고 수명을 연장해주는 부처인 약사여래를 나타낸 것이다.  
 
이 불상은 모든 중생의 질병을 고치고 수명을 연장해주는 부처인 약사여래를 나타낸 것이다.  
  
고려 전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며, 통일신라시대의 양식을 본 따 만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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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전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며, 1987년 도난 직전에 발견되어 지금의 위치에 모셔두었다.  
 
 
소라모양의 머리카락으로 덮여 있는 머리에는 부처의 지혜를 상징하는 육계가 있다.
 
 
 
오른손은 엄지와 검지를 맞댄 채 가슴 위로 들어 올렸고, 왼손은 배 앞에 약그릇을 들고 있는데, 이는 약사불을 상징하는 가장 큰 특징이다.
 
  
사각형의 납작한 돌에 불상과 함께 부처의 몸에서 나오는 성스러운 빛을 나타내는 광배를 표현했으며, 광배는 덩쿨무늬와 불꽃무늬로 장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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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상과 광배는 하나의 화강암으로 조각하였다. 소라 모양의 머리카락으로 덮여 있는 머리에는 부처의 지혜를 상징하는 육계가 있다. 사각형의 큰 얼굴에 큼직한 코, 꽉 다문 입을 표현하였고, 목이 매우 짧다. 오른손은 엄지와 검지를 맞댄 채 가슴 위로 들어 올렸는데, 이는 부처가 중생의 두려움을 없애준다는 것을 나타낸다. 왼손은 배 앞에서 약그릇을 들고 있는데, 이는 약사불을 상징하는 가장 큰 특징이다. 광배에는 덩쿨무늬와 불꽃무늬가 화려하게 새겨져 있다.  
  
  

2020년 9월 12일 (토) 06:23 판


군위 위성리 석조약사여래입상
Stone Standing Bhaisajyaguru Buddha in Wiseong-ri, Gunwi
군위 위성리 석조약사여래입상,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군위 위성리 석조약사여래입상
영문명칭 Stone Standing Bhaisajyaguru Buddha in Wiseong-ri, Gunwi
한자 軍威 渭城里 石造藥師如來立像
주소 경상북도 군위군 소보면 위성리 899번지
지정번호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22호
지정일 1986년 12월 11일
분류 유물/불교조각/석조/불상
시대 고려시대
수량/면적 1구
웹사이트 군위 위성리 석조약사여래입상,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약사여래란 열두 가지 서원(誓願)을 세워 중생의 질병을 구제하고, 수명을 연장하며, 재화를 소멸하고, 의식을 만족시켜 주며, 중생을 바른길로 인도하여 깨달음을 얻게 하는 부처이다. 큰 연꽃 위에 앉아서, 왼손으로는 약병을 들고 있고, 오른손으로는 시무외인*을 맺고 있다. 석조 약사여래 입상이란 약사여래를 돌로 만들어 세운 것이다.

처음에는 하부가 매몰되어 불상의 윗부분만 있었는데, 1987년 도난 직전 발견되어 지금의 위치에 모셔 두었다.

약사여래 입상은 1장의 화강석을 잘 다듬어, 서 있는 모습의 석불을 도드라지게 조각하였다. 부처의 몸에서 나온 빛을 형상화한 배 모양의 광배에는 화려한 덩굴무늬와 불꽃무늬가 새겨졌다. 머리에는 작은 소라 모양의 머리카락이 조각되어 있고, 정수리에는 상투처럼 낮은 육계(肉髻)**를 표현하였다. 풍만한 사각형의 큰 얼굴에 큼직한 코, 꽉 다문 입, 목은 매우 짧아서 3개의 주름은 가슴 윗부분에 희미하게 새겼다. 오른손은 엄지와 검지를 맞댄 채 가슴 위로 들어 올렸고, 왼손은 배 앞에서 약그릇을 들고 있다. 신체는 듬직하고 묵중한 반면, 양어깨에 걸친 U자형의 옷 주름은 듬성듬성한 선으로 처리되어 대조적인 모습이다

불상의 크기나 신체의 비례, 손동작에서 통일 신라 시대 대형 석불 입상의 전통을 계승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신체의 묘사가 사실적이지 못하고 옷 주름 선도 일정한 모양을 보이고 있어 고려 시대 불상으로 추정한다.


  • 시무외인(施無畏印): 부처가 중생의 두려움을 없애 주기 위하여 나타내는 형상. 팔을 들고 다섯 손가락을 펴 손바닥을 밖으로 향하여 물건을 주는 시늉을 하고 있다.
  • 육계(肉髻): 부처의 정수리에 있는 뼈가 솟아 저절로 상투 모양이 된 것. 인간이나 천상에서 볼 수 없는 일이므로 이렇게 이른다.

영문

Stone Standing Bhaisajyaguru Buddha in Wiseong-ri, Gunwi


영문 해설 내용

이 불상은 모든 중생의 질병을 고치고 수명을 연장해주는 부처인 약사여래를 나타낸 것이다.

고려시대 전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며, 1987년 도난 직전에 발견되어 지금의 위치에 모셔두었다.

불상과 광배는 하나의 화강암으로 조각하였다. 소라 모양의 머리카락으로 덮여 있는 머리에는 부처의 지혜를 상징하는 육계가 있다. 사각형의 큰 얼굴에 큼직한 코, 꽉 다문 입을 표현하였고, 목이 매우 짧다. 오른손은 엄지와 검지를 맞댄 채 가슴 위로 들어 올렸는데, 이는 부처가 중생의 두려움을 없애준다는 것을 나타낸다. 왼손은 배 앞에서 약그릇을 들고 있는데, 이는 약사불을 상징하는 가장 큰 특징이다. 광배에는 덩쿨무늬와 불꽃무늬가 화려하게 새겨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