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위 법주사 왕맷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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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위 법주사 왕맷돌
Millstone of Beopjusa Temple, Gunwi
군위 법주사 왕맷돌,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군위 법주사 왕맷돌
영문명칭 Millstone of Beopjusa Temple, Gunwi
한자 軍威 法住寺 왕맷돌
주소 경상북도 군위군 소보면 달산리 773
지정번호 경상북도 민속문화재 제112호
지정일 1995년 3월 31일
분류 유물/과학기술/생업기술용구/농경
수량/면적 1쌍
웹사이트 군위 법주사 왕맷돌,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맷돌은 둥글고 넓적한 윗돌과 아랫돌을 서로 포개어 팥, 콩, 메밀, 녹두 등의 곡식 낱알을 윗돌 구멍에 넣고 손잡이로 돌려 곡식을 곱게 갈아서 가루를 만드는 도구이다. 50여 년 전 절 남쪽 200m 가량 떨어진 밭두렁에 묻혀 있던 것을 지금의 법주사 자리로 옮겼다. 그때 20여 명이 겨우 옮겼다고 할 만큼 법주사 왕맷돌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맷돌이다.

왕맷돌의 크기는 윗돌, 아랫돌 모두 지름 115㎝, 두께 15.5㎝이다. 윗돌에는 8개의 구멍이 뚫려 있다. 윗면 중앙에 수직으로 뚫은 구멍 4개는 곡식 낱알을 집어넣는 구멍이다. 윗면과 옆면을 통하게 뚫은 구멍 4개는 여러 사람이 윗돌을 돌릴 때 손잡이를 설치하려고 만들었다.

맷돌을 만든 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다만 맷돌로 사찰의 규모와 사찰의 식생활 문화를 짐작할 수 있다.

영문

Millstone of Beopjusa Temple, Gunwi

A millstone is a tool used to turn grain into flour. It is made out of two round, wide, and flat stones stacked on top of each other. The base, called a bedstone, is stationary, while the stone above it, called a runner stone, is spun using handles to grind the grains into a powder. The grains are placed through the holes of the runner stone to achieve this.

The millstone of Beopjusa Temple is currently the largest traditional millstone in Korea, measuring 115 cm in diameter and 15.5 cm in thickness. The runner stone has eight holes. The four holes in the center are used for inserting grains and the other four holes on the margin are used to insert handles so a few people can spin the stone at the same time.

It is unknown when the millstone made. It was found buried in a bank at the edge of field located to the south of the temple. It was moved to its current location in the 1960s. When it was moved, 20 adult men were barely able to carry and move it.

영문 해설 내용

맷돌은 둥글고 넓적한 두 개의 돌을 서로 포갠 후, 윗돌 구멍에 곡식 낱알을 넣고 손잡이로 돌려 가루를 만드는 도구이다.

법주사의 이 맷돌은 윗돌, 아랫돌 모두 지름 115㎝, 두께 15.5㎝로, 현재 한국에 남아있는 것 중 가장 크다. 정확한 제작 시기는 알 수 없다. 윗돌에는 8개의 구멍이 뚫려 있다. 중앙에 있는 구멍 4개는 곡식을 넣는 곳이고, 바깥쪽으로 난 4개는 큰 맷돌을 여러 사람이 함께 돌릴 수 있도록 손잡이를 끼우는 구멍이다.

이 맷돌이 언제 만들어졌는지는 알 수 없다. 절 남쪽 밭두렁에 묻혀 있던 것을 1960년대에 지금의 위치로 옮겨놓았다. 당시 성인 20여 명이 겨우 들어 옮겼다고 한다.

참고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