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위 법주사 괘불도"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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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살(菩薩): 부처가 전생에서 수행하던 시절, 수기(부처로부터 내생에 부처가 되리라고 하는 예언을 받음)를 받은 이후의 몸. | * 보살(菩薩): 부처가 전생에서 수행하던 시절, 수기(부처로부터 내생에 부처가 되리라고 하는 예언을 받음)를 받은 이후의 몸. | ||
− | + | * 여래(如來): ‘여실히 오는 자’, ‘진여(眞如: 사물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에서 오는 자’라는 의미로, 부처와 같은 뜻을 가진 낱말이다. | |
− | + | * 광배(光背): 회화나 조각에서 인물의 성스러움을 드러내기 위하여 머리나 등의 뒤로부터 내비치는 빛.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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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9월 12일 (토) 05:43 판
군위 법주사 괘불도 Hanging Painting of Beopjusa Temple, Gunwi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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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군위 법주사 괘불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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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명칭 | Hanging Painting of Beopjusa Temple, Gunwi |
한자 | 軍威 法住寺 掛佛圖 |
주소 | 경상북도 군위군 소보면 달산리 773 |
지정번호 | 보물 제2005호 |
지정일 | 2018년 11월 27일 |
분류 | 유물/불교회화/괘불화 |
시대 | 조선시대 |
수량/면적 | 괘불 1폭, 괘불함 1점 |
웹사이트 | 군위 법주사 괘불도,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
해설문
국문
괘불은 그림으로 그려서 걸어 놓은 부처의 모습이다. 괘불도는 야외에서 열리는 각종 불교 의식에 사용되며 크기가 큰 대형 불화이다.
법주사 괘불도에는 숙종 40년(1714) 5월 15일에 불화를 완성해 경상북도 군위군 청화산 법주사에 받들어 모신다는 정확한 기록이 있다. 또 제작의 책임을 맡은 두초를 비롯한 변철, 치겸, 심안 등 불교 그림을 전문으로 그리는 9명의 승려들이 완성하였다고 하였다.
괘불도는 총 16폭의 비단을 이어 만든 10m의 크기로, 머리에 보석으로 꾸민 관을 쓰고, 두 손을 양쪽으로 벌려 연꽃을 들고 서 있는 보살*형 여래**가 화면에 큼직하게 그려졌다. 보살상의 몸에서 나오는 성스러운 빛을 표현한 광배(光背)*** 양쪽에는 불상과 보살상을 마주 보게 그렸다. 또 발아래 양쪽에도 보좌 보살인 용왕과 용녀를 마주 보게 그렸다. 이런 구도와 구성은 다른 괘불에서는 볼 수 없다.
보석으로 꾸민 관을 쓰고 연꽃을 들고 서 있는 보살형 여래, 세밀하고 화려한 문양 및 색감은 조선 후기 불화를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이다.
- 보살(菩薩): 부처가 전생에서 수행하던 시절, 수기(부처로부터 내생에 부처가 되리라고 하는 예언을 받음)를 받은 이후의 몸.
- 여래(如來): ‘여실히 오는 자’, ‘진여(眞如: 사물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에서 오는 자’라는 의미로, 부처와 같은 뜻을 가진 낱말이다.
- 광배(光背): 회화나 조각에서 인물의 성스러움을 드러내기 위하여 머리나 등의 뒤로부터 내비치는 빛.
영문
Hanging Painting of Beopjusa Temple, Gunwi
영문 해설 내용
괘불은 사찰에서 큰 법회나 의식을 행할 때 야외에 걸어놓고 예배를 드리는 데 쓰였다.
법주사의 괘불은 1714년 수화승 두초를 비롯한 9명의 화승에 의해 제작되었다. 총 16폭의 비단을 이어 만들었으며, 크기는 가로 약 6m 세로 약 10m이다.
그림 가운데에는 머리에 보석으로 꾸민 관을 쓰고 두 손을 양쪽으로 벌린 채 연꽃을 들고 있는 서 있는 여래상을 크게 그렸다. 여래의 양손 위쪽에는 관음보살, 대세지보살, 여래상 2위를 대칭으로 그렸다. 머리 광배 주변에도 6구의 불상들을 그려 넣었으며, 화면 아래쪽에는 용왕과 용녀를 양 옆에 1위씩 배치하였다.
주존불을 보관을 쓰고 연꽃을 들고 있는 보살의 모습으로 구현한 것과 용왕과 용녀를 협시처럼 배치한 구도 등은 다른 괘불에서 볼 수 없는 독특한 것이다.
참고자료
- 2018년도 동산문화재분과위원회 제9차 회의록, 문화재청 -> 지정 이유 및 연혁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