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암사의 은행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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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암사의 은행나무
Ginkgo Tree of Guamsa Temple
구암사의은행나무,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구암사의 은행나무
영문명칭 Ginkgo Tree of Guamsa Temple
한자 龜巖寺의 은행나무
주소 전라북도 순창군 복흥면 봉덕리
지정(등록) 종목 전라북도 기념물 제121호
지정(등록)일 2004년 9월 10일
분류 자연유산/천연보호구역/문화및자연결합성/경관및과학성
시대 조선시대
수량/면적 1주
웹사이트 구암사의은행나무,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은행나무는 약 2억 7천만 년 전부터 지구에 살기 시작했으며, ‘살아있는 화석’이라 불린다. 넓은 그늘을 만들어서 마을 입구의 정자나무나 가로수로 많이 심는다.

구암사(龜巖寺) 은행나무는 조선 태조 원년(1392) 무학대사 자초(無學大師 自超, 1327∼1405)의 방문을 기념하여 심은 나무로 추정되며, 조선 왕조의 번창과 태조의 안녕을 염원하는 뜻이 담겨 있다고 한다. 곧고 건장하게 자라 나무의 크기가 높이 36m, 가슴높이 둘레 5m에 이른다. 6.25 한국전쟁 당시 구암사 일대와 주변의 숲이 막심한 피해를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나무는 현재까지 잘 보존되어 있다.

은행나무가 자리한 구암사는 전통사찰 제64호로서 백제 무왕 35년(634) 숭제법사(崇濟法師)에 의해 창건된 것으로 전해지며, 조선 태조 원년(1392) 각운선사(覺雲禪師)에 의해서 중창되었다. 무학대사가 구암사를 방문했을 때 마치 붓처럼 우뚝 솟은 문필봉을 가리키며 후세에 선승과 문인이 많이 배출될 것을 예언했다고 한다. 이 예언과 같이 후대에 석전 박한영(石顚 朴漢永, 1870∼1948)을 비롯한 불교계의 많은 지도자들이 구암사에서 배출되었다.

영문

Ginkgo Tree of Guamsa Temple

The ginkgo tree (Ginkgo biloba L.) is considered to be a living fossil because it has existed for 270 million years. As its foliage creates a wide shaded area, the ginkgo is typically planted along the road and at village entrances. In autumn, its fan-shaped leaves turn a bright yellow.

The ginkgo tree of Guamsa Temple is presumed to have been planted to commemorate the expansion of Guamsa Temple in 1392 and the visit of the Buddhist monk Jacho (1327-1405). It is also said to have been planted to express a desire for the prosperity of the Joseon dynasty (1392-1910) and the wellbeing of King Taejo (r. 1392-1398). The tree measures 36 m in height and 5 m in circumference at chest level. The tree remains in good condition despite the fact that Guamsa Temple and the surrounding forest were seriously damaged during the Korean War (1950-1953).

Guamsa Temple is said to have been founded in 634 and expanded in 1392. When the monk Jacho visited Guamsa Temple, he pointed to Munpilbong Peak, shaped like an ink brush, and predicted that the temple would produce many masters of Buddhism and literature. Indeed, Guamsa Temple produced many eminent leaders of Korean Buddhism, such as the monk Bak Han-yeong (1870-1948), who lectured from a young age at renowned temples and worked to protect Korean Buddhism in the face of Japanese colonial rule (1910-1945).

영문 해설 내용

은행나무는 약 2억 7천만 년 전부터 지구에 살기 시작했으며, ‘살아있는 화석’이라 불린다. 넓은 그늘을 만들어서 마을 입구의 정자나무나 가로수로 많이 심는다. 가을에는 부채꼴 모양의 나뭇잎이 노랗게 물든다.

구암사 은행나무는 1392년 구암사의 중건과 무학대사 자초(1327-1405)의 방문을 기념하여 심은 나무로 추정된다. 조선 왕조의 번창과 태조(재위 1392-1398)의 안녕을 염원하는 뜻이 담겨 있다고도 한다. 나무의 크기는 높이 36m, 가슴높이 둘레 5m에 이른다. 한국전쟁 당시 구암사 일대와 주변의 숲이 막심한 피해를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나무는 현재까지 잘 보존되어 있다.

구암사는 634년에 창건된 것으로 전해지며, 1392년에 중창되었다. 무학대사가 구암사를 방문했을 때 마치 붓처럼 우뚝 솟은 문필봉을 가리키며 후세에 선승과 문인이 많이 배출될 것을 예언했다고 한다. 실제로 불교계의 여러 지도자들이 구암사에서 배출되었으며, 특히 일제강점기의 고승 박한영(1870-1948)은 젊어서부터 유명한 사찰에서 강의를 하고 일제 하에서 한국 불교를 보호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참고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