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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례 천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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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은사
Cheoneunsa Temple
대표명칭 천은사
영문명칭 Cheoneunsa Temple
한자 泉隱寺
주소 전라남도 구례군 광의면 방광리 70
지정번호 문화재자료 제35호
지정일 1984년 2월 29일
분류 유적건조물/종교신앙/불교/사찰
수량/면적 일원
웹사이트 구례 천은사,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천년 고찰 천은사는 신라 흥덕왕 3년(828년)에 서역에서 온 인도승려 덕운(德雲)조사가 창건하여 병든 사람을 샘물(甘泉)로 치료하는 모습을 보여 감로사로 불리었다. 그 뒤 신라 말 도선국사와 고려중엽 보조국사에 의해 중건했다는 기록이 있으며 사세가 번창한 고려 충열왕(1274-1308년)때는 왕이 사격을 높여서 “남방제일선찰(南方第一禪刹)”이라 하여 선승들이 큰 숲을 이루어 살았다고 한다. 조선시대에는 임진왜란의 병화로 사찰이 전소되어 폐허가 되기도 하였으나 광해군2년(1610년)에 혜정(惠淨)선사가 중건하고 숙종5년 (1679년) 조유(祖裕)선사가 중수하면서 절 이름을 감로사(甘露寺)에서 “샘이 숨었다”는 뜻을 가진 천은사(泉隱寺)로 이름을 바꾸었다. 영조49년(1773년)에 원인모를 큰불로 여러 건물이 소실되었으나 그 다음해 수도암에 주거하던 혜암(慧菴)선사가 화마로 잿더미가 된 천은사 도량 중건의 목표을 세웠다. 당시 남원부사 이경윤(李敬倫)과 산내 암자, 신심 단월 등과 힘을 모아 2여년에 걸쳐 극락보전 등 중창불사를 원만이 이루었으니 현재 사찰의 모습은 대부분 이 시기에 이루어졌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후 황폐해진 조선의 산하와 전란으로 희생된 영혼과 살아남은 자들의 상처를 부처님의 자비심으로 위로하고 치료하기 위해 수륙재*와 불교 의식 등을 천은사에서 활발하게 실행하였다.

그 자료로 야외에서 설법할 때 사용되는 1673년에 제작한 천은사괘불탱(보물1340호)과 목조대세지보살좌상(1646년) 및 수륙재와 천도재 관련 의식집 수육무차평등재의촬요(水陸無遮平等齋儀撮要)등 총15권이 전해져 당시 백성들의 불교의식 연구의 중요한 자료가 된다. 근래에 천왕문, 삼성각, 팔상전, 관음전 등을 복원하고 사찰일원이 전라남도문화재자료 제35호로 지정되었으며 산내 암자로는 삼일암, 도계암, 수도암, 상선암, 우번암 등이 있다.


  • 수륙재(水陸齋) : 물과 육지를 헤매는 영혼과 아귀를 달래고 위로하기 위해 불법을 강설하고 음식을 베푸는 종교의례

영문

Cheoneunsa Temple

Cheoneunsa Temple is presumed to have been founded in 828 during the Unified Silla period (668-935). Originally, it was named Gamnosa (甘露寺), meaning “temple of sweet dew”, because of the spring inside the temple complex which was attributed with healing power.

The temple underwent a reconstruction overseen by State Preceptor Doseon (827-898), and another one overseen by State Preceptor Bojo (1158-1210). In the late period of the Goryeo dynasty (918-1392), the temple grows even more and attracts many monks of Seon Buddhism. During the Joseon period (1392-1910), the temple was destroyed in the Japanese invasions of 1592-1598, rebuilt in 1610 and again in 1679. In 1773, a few building were lost in the fire and rebuilt over the period of two years starting in 1774.

The name of the temple was changed during the reconstruction in 1679. A legend tells that a snake started appearing near the spring disturbing people, so one of the monks eventually caught and killed the snake. But as soon as the snake was killed the water disappeared from the spring and name of temple was changed to Cheoneunsa (川隱寺), meaning “temple of hidden spring”.

Together with Hwaeomsa Temple and Ssanggyesa Temple, Cheoneunsa Temple is consider one of the three big temples of Jirisan Mountain, and the whole area of the temple was designated as Jollanam-do Cultural Heritage Material No. 35 in 1984. The list of cultural heritages preserved at the temple includes three Buddhist paitings (Treasure No. 924, 1340, 1888), Portable Shrine of Gilt-bronze Buddhas (Treasure No. 1546), Avalokitesvara Bodhisattva and Seated Mahasthamaprapta Bodhisattva statues (Treasure No. 1889), and Geungnakbojeon Hall (Treasure No. 2024).

영문 해설 내용

천은사는 828년에 창건된 것으로 전해진다. 처음에는 경내에 있는 샘물이 병을 고치는 데 효과가 있다고 해서 감로사라고 불렸다.

이후 신라시대에 도선국사(827-898)와 고려시대에 보조국사(1158-1210)가 중창하였으며, 고려시대 후기에는 절이 더욱 번성하여 수많은 선승이 찾아와 수행하였다. 조선시대에 들어와 임진왜란으로 폐허가 되기도 하였으나, 1610년에 중건하였고 1679년에 중창하였다. 1773년 화재로 여러 건물이 다시 소실되었고, 현재의 건물들은 1774년부터 약 2년에 걸쳐 중건한 것이다.

사찰의 이름이 천은사로 바뀐 것은 1679년 중창 당시의 일로,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진다. 절의 샘가에 큰 구렁이가 자주 나타나 사람들이 무서워하자, 한 스님이 용기를 내어 잡아 죽였다. 그러자 이후로는 샘에서 물이 솟지 않았다고 하며, 이에 ‘샘이 숨은 절’이라는 뜻의 이름을 갖게 되었다.

천은사는 화엄사, 쌍계사와 함께 지리산 3대 사찰 중 하나로 꼽히고 있으며, 사찰 일대가 1984년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35호로 지정되었다. 사찰에서 보유하고 있는 문화재로는 아미타후불탱화(보물 제924호), 괘불탱(보물 제1340호), 금동불감(보물 제1546호), 삼장보살도(보물 제1888호), 목조관세음보살좌상 및 대세지보살좌상(보물 제1889호), 극락보전(보물 제2024호)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