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행중

괴산 홍범식 고가

HeritageWiki
이고은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19년 10월 14일 (월) 00:19 판

이동: 둘러보기, 검색


괴산 홍범식 고가
Hong Beom-sik’s House, Goesan
괴산 홍범식 고가,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괴산 홍범식 고가
영문명칭 Hong Beom-sik’s House, Goesan
한자 槐山 洪範植 古家
주소 충청북도 괴산군 괴산읍 임꺽정로 16 (동부리)
지정번호 시도민속문화재 제14호
지정일 2002년 12월 20일
분류 유적건조물/주거생활/주거건축/가옥
시대 조선시대
수량/면적 1곽(13동)
웹사이트 괴산 홍범식 고가,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이 집은 금산군수로 재직하다 1910년 경술국치(庚戌國恥)에 항거하여 순국한 일완(一阮) 홍범식(洪範植)의 고택이다.

또한 근대 역사소설의 이정표가 된 『임꺽정(林巨正)』의 작가 벽초(碧初) 홍명희(洪命熹, 1888∼1968)의 생가로도 널리 알려진 문학사적 유산이다. 홍명희는 1919년 3·1운동 당시 이 집 사랑방에서 1919. 3. 19. 괴산 만세 시위를 준비하였다고 한다.

이 고택은 1730년경에 건축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뒷산의 자연 경관을 집 안으로 끌어들여 내부 공간을 연출한 형태로 보인다. 건물은 좌우 대칭의 평면 구조를 갖는 중부지방 살림집의 특징적인 건축 양식을 보이고 있다.

2002년 괴산군에서 매입하여 2008년까지 안채, 사랑채, 광채 등 낡은 건물을 수리하고, 없어진 건물(4동)과 화장실 등을 다시 세웠다.

영문

Hong Beom-sik’s House, Goesan

This is a house of literary elites of the late Joseon period (1392-1910). It is presumed to have been built in 1730.

One of the elites who lived in this house is Hong Beom-sik (1871-1910), a civil official who killed himself in grief when the country became a colony of Japan in 1910. His son, Hong Myeong-hui (1888-1968) was a novelist as well as a journalist well known for his work, “The Story of Imkkeokjeong,” that is regarded as a classic Korean modern novel. He was also involved in the independence movement of 1919. He planned the movement in the Goesan area with people gathered at the men’s quarters. After the liberation of Korea in 1945, Hong tried to establish a unified government but defected to North Korea in 1947.

This house had been unattended for a long time and thus was in a bad condition. In 2002, the local government of Goesan-gun purchased it and renovated the women’s quarters, men’s quarters and the storage and reconstructed other buildings for six years.

영문 해설 내용

이 집은 1730년경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조선 후기 양반집이다.

이 집에서 살던 홍범식(1871-1910)은 1910년 경술국치에 항거하여 자결하였다. 이 집에서 태어난 그의 아들 홍명희(1888-1968)는 소설가이자 언론인이었으며, 한국 근대소설의 고전인 『임꺽정』의 저자이다. 홍명희는 1919년 3·1운동 당시 이 집 사랑방에서 괴산지역의 만세 시위를 준비하기도 했다. 광복 이후 홍명희는 남북 통일정부 수립 운동을 전개하다가 1947년 월북하였다.

이 집은 돌보는 사람이 없이 오랫동안 방치되면서 많이 허물어져 있었다. 2002년 괴산군에서 매입하여 2008년까지 안채, 사랑채, 광채 등 낡은 건물을 수리하고, 없어졌던 건물들을 다시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