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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고택은 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학자인 송시열의 8대손 송병일의 집이다.  
 
이 고택은 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학자인 송시열의 8대손 송병일의 집이다.  
  
19세기 후반 송병일이 아버지를 위해 지은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증축을 거쳐 종택으로 사용되었고, 1944년부터 1996년까지는 양로원으로 사용되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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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후반 송병일이 아버지를 위해 지은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증축을 거쳐 종택으로 사용되었고, 1944년부터 1996년까지는 양로원으로 사용되었다.
  
 
현재 남아 있는 건물은 대문채, 안채, 사랑채, 사당, 곳간이다. 안채와 사랑채는 담장을 사이에 두고 서로 나란히 배치되어 있고, 사당은 안채와 사랑채 뒤쪽에 있다.
 
현재 남아 있는 건물은 대문채, 안채, 사랑채, 사당, 곳간이다. 안채와 사랑채는 담장을 사이에 두고 서로 나란히 배치되어 있고, 사당은 안채와 사랑채 뒤쪽에 있다.

2019년 10월 18일 (금) 16:05 기준 최신판

괴산 송병일 고택
Song Byeong-il's House, Goesan
괴산 송병일 고택,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괴산 송병일 고택
영문명칭 Song Byeong-il's House, Goesan
한자 槐山 宋秉一 古宅
주소 충청북도 괴산군 청천면 청천4길 17 (청천리)
지정번호 국가민속문화재 제147호
지정일 1984년 1월 14일
분류 유적건조물/주거생활/주거건축/가옥
시대 조선시대
수량/면적 6필지/지정구역 3,898㎡ , 보호구역 2,050㎡
웹사이트 괴산 송병일 고택,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이 고택은 19세기 후반 우암 송시열의 8대손인 송병일(宋秉一)이 대한제국 시기 충청감사로 있을 때에 아버지를 위해 별당으로 지어준 것이다. 이후 증축을 거쳐 종택으로 사용되다가 1944년부터는 사회복지법인 충북양로원에서 사용하였다. 1996년에는 이웃에 새로운 수용시설을 신축하고 수용인원을 이주시킨 후, 현재는 사용하지 않고 있다.

원래는 여러 채였으나 지금은 안채, 사랑채, 사당, 곳간만 남아 있다. 전체적으로 동남향이며, 안채는 ㄷ자형이지만 앞쪽에 ㅡ자형의 곳간이 있어 트인 ㅁ자형을 이루고 있다. 대문과 마주하고 있는 사랑채는 안채와 동서로 나란히 배치되어 있으나, 그 사이에 담장이 둘러 있어 협문을 통해야만 안채로 들어갈 수 있다. 안채가 사랑채보다 지어진 연대가 조금 앞서며, 사랑채는 건축 기법이 뛰어나다. 사당은 4칸이며, 성리학적 질서에 충실하게 남성과 여성의 거주 공간을 구분하여 배치한 구조로, 조선시대 사대부 민가 공간 구성 수법의 좋은 예이다.

영문

Song Byeong-il's House, Goesan

This is a house of Song Byeong-il, who was the 8th-generation descendant of Song Si-yeol (1607-1689), a civil official and great scholar of the Joseon period.

Song Byeong-il built this house for his father presumably in the late 19th century. It was later expanded and thereafter used as the head house of the family. From 1944 to 1996, it was used as a nursing home.

Currently, the house consists of a gate quarters, women’s quarters, men’s quarters, shrine, and storehouse. The women’s quarters and men’s quarters stand side by side with a wall between them, and the shrine is located behind them.

The women’s quarters, built a little earlier than the men’s quarters, consists of a wooden-floored hall, a narrow wooden veranda at the front, a kitchen, and several rooms. The size of the kitchen and storage areas attests to the number of people who stayed at this house. The men’s quarters consists of a wooden-floored hall, two rooms, and an elevated wooden-floored porch on the right. There is an attic above the smaller room which was used for storage.

영문 해설 내용

이 고택은 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학자인 송시열의 8대손 송병일의 집이다.

19세기 후반 송병일이 아버지를 위해 지은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증축을 거쳐 종택으로 사용되었고, 1944년부터 1996년까지는 양로원으로 사용되었다.

현재 남아 있는 건물은 대문채, 안채, 사랑채, 사당, 곳간이다. 안채와 사랑채는 담장을 사이에 두고 서로 나란히 배치되어 있고, 사당은 안채와 사랑채 뒤쪽에 있다.

안채가 사랑채보다 지어진 연대가 조금 앞선다. 대청, 부엌, 여러 방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건물 앞쪽에 툇마루를 두었다. 넓은 부엌과 수장공간은 이 집의 살림 규모가 컸음을 보여준다. 사랑채는 가운데 대청을 중심으로 양쪽에 방을 두었고, 오른쪽 전면에는 누마루를 두었다. 작은방에는 다락을 설치해서 수장공간으로 사용하였다.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