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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환벽당 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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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혜원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23년 2월 8일 (수) 11:58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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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환벽당 일원
Hwanbyeokdang Pavilion and Surroundings, Gwangju
광주 환벽당 일원,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광주 환벽당 일원
영문명칭 Hwanbyeokdang Pavilion and Surroundings, Gwangju
한자 光州 環碧堂 一圓
주소 광주광역시 북구 충효동 387-0
지정번호 명승 제107호
지정일 2013년 11월 6일
분류 자연유산/명승/자연경관
수량/면적 26,832㎡
웹사이트 광주 환벽당 일원,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광주 환벽당 일원은 나주목사를 지낸 사촌 김윤제(沙村 金允悌, 1501~1572)가 고향으로 돌아와 정자를 짓고 후학을 양성한 곳이다. ‘환벽’이란 푸르름을 사방에 둘렀다는 뜻으로, 가까이에 있는 소쇄원, 식영정과 더불어 ‘한 마을 안에 세 명승(一洞之三勝)’이라 불렸다.

환벽당은 증암천 옆 언덕에 건립한 남도 지방의 전형적인 유실형(有室形, 방이 있는) 정자이다. 정자 아래에는 증암천(창계천)이 흐르는데 예전에 배롱나무꽃이 장관을 이뤘다고 해서 ‘자미탄’이라고도 부른다. 이 증암천 옆에는 김윤제와 송강 정철이 처음 만난 곳이라 전해오는 조대(釣臺)와 용소(龍沼), 쌍송(雙松)이 있다.

조선시대 환벽당 일원은 풍류와 학문의 장이었다. 환벽당을 중심으로 당대 최고의 석학들이 찾아와 자연을 감상하고 시를 지으며 풍류를 즐겼다. 특히 가사문학의 대가였던 송강 정철은 소년 시절부터 10여 년을 이곳에 머무르며 당대의 명망 높은 학자들로부터 가르침을 받았다.

정철이 25세 때 지은 가사 「성산별곡」에는 조대나 용소 등 당시 환벽당의 경관이 잘 묘사되어 있다,

영문

영문 해설 내용

증암천 옆 언덕에 자리한 환벽당은 조선시대의 문신 김윤제(1501-1572)가 후학을 양성하던 곳이다. 김윤제는 1531년 과거에 급제한 후 여러 관직을 지냈으나. 1545년 사화가 일어나자 관직에서 물러난 뒤 고향으로 돌아와 이 정자를 지었다. 환벽당이라는 이름은 “푸르름으로 둘러싸인 정자”라는 뜻이다.

환벽당은 16세기 사림이 모여 교유하던 곳이기도 하다. 당대 최고의 석학들이 이곳에서 자연을 감상하고 시를 지으며 풍류를 즐겼다. 이곳에서 수학한 김윤제의 제자 중 가장 유명한 인물은 문신이자 뛰어난 시인인 정철(1536-1593)이다. 정철은 소년 시절부터 10여 년을 이곳에 머무르며 김윤제를 비롯한 명망 높은 학자들로부터 가르침을 받았다.

환벽당은 왼쪽에 온돌방이 있고 오른쪽에 마루가 있다. 방을 갖춘 것은 전라도 지방 정자의 전형적인 구조이다. 증암천은 “자줏빛 배롱나무 개천”이라는 뜻의 자미탄이라고도 부르는데, 예전에 정자 주변에 배롱나무꽃이 장관을 이뤘다는 데서 비롯되었다. 정철이 지은 「성산별곡」에는 환벽당 주변의 경관이 잘 묘사되어 있다,

참고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