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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s pavilion was built by Song Heum (1459-1547), a civil official and scholar of the Joseon period (1392-1910). The name of the pavilion can be interpreted to mean “a pavilion to purify a wicked heart by looking at clear water.”
 
This pavilion was built by Song Heum (1459-1547), a civil official and scholar of the Joseon period (1392-1910). The name of the pavilion can be interpreted to mean “a pavilion to purify a wicked heart by looking at clear water.”
  
Song Heum was born in Jangseong. He passed the state examination in 1492 and served various official posts. After he served a number of administrative posts in various regions of Jeolla-do Province, he was promoted to governor of the whole province. Song was widely known as a strong man of great integrity. He was also a filial son and diligently took care of his elderly mother until she died at the age of 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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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ng Heum was born in Jangseong. He passed the state examination in 1492 and served various official posts. After he served a number of administrative posts in various regions, he was promoted to governor of Jeolla-do Province. Song was widely known as a strong man of great integrity. He was also a filial son and diligently took care of his elderly mother until she died at the age of 101.
  
 
Following his retirement, he returned to his hometown, where he built this pavilion next to Yongamcheon Stream and spent his time enjoying the beauty of local nature while writing poems with his friends and students. Some of those poems are inscribed on the plaques hanging inside the pavilion.  
 
Following his retirement, he returned to his hometown, where he built this pavilion next to Yongamcheon Stream and spent his time enjoying the beauty of local nature while writing poems with his friends and students. Some of those poems are inscribed on the plaques hanging inside the pavil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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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년에 관직에서 물러난 뒤에는 고향으로 돌아와 이곳 용암천 옆에 관수정을 짓고, 주변의 경치를 즐기며 제자, 친구들과 함께 시를 짓곤 하였다. 지금도 정자 안에는 당시에 지은 시들을 적은 현판이 여럿 걸려있다.  
 
말년에 관직에서 물러난 뒤에는 고향으로 돌아와 이곳 용암천 옆에 관수정을 짓고, 주변의 경치를 즐기며 제자, 친구들과 함께 시를 짓곤 하였다. 지금도 정자 안에는 당시에 지은 시들을 적은 현판이 여럿 걸려있다.  
  
관수정은 1786년 송흠의 후손이 고쳐 지었으나, 한국전쟁으로 불에 타 1955년에 다시 지었다. 용암천 건너 남쪽에는 1543년 왕명으로 송흠을 위해 지어진 기영정이라는 정자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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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수정은 1786년 송흠의 후손이 고쳐 지었으나, 한국전쟁으로 불에 타 1955년에 다시 지었다. 용암천 건너편에는 1543년 왕명으로 송흠을 위해 지어진 기영정이라는 정자가 있다.
  
  

2020년 4월 1일 (수) 12:54 기준 최신판

관수정
Gwansujeong Pavilion
관수정,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관수정
영문명칭 Gwansujeong Pavilion
한자 觀水亭
주소 전라남도 장성군 삼계면 천방길 5
지정번호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100호
지정일 1984년 2월 29일
분류 유적건조물/주거생활/조경건축/누정
수량/면적 1동
웹사이트 관수정,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관수정은 지지당 송흠(知止堂 宋欽, 1459~1547) 선생이 세운 정자이며, “물결을 보면 물의 근본을 알고, 물의 맑음을 보고 나쁜 마음을 씻는다.”라는 의미로 관수(觀水)라 이름 지었다.

송흠 선생은 1459년 장성군 삼계면 주산리 정각마을에서 태어났으며, 1492년 과거에 합격하여 중앙에서는 홍문관을 시작으로, 병조ㆍ이조 판서, 의정부 좌참찬, 판중추부사 등의 벼슬을 하였고, 지방에서는 전라 도사, 보성ㆍ옥천ㆍ여산 군수, 순천ㆍ담양ㆍ장흥 부사, 나주 목사, 전주 부윤, 한성부 좌윤 등의 청렴결백한 목민관**생활로 7번이나 청백리***에 선정되었으며, 삼마태수****라고도 불린다.

송흠 선생은 51년 동안의 관직생활을 그만두고 82세 되는 1540년에 고향으로 내려와 선방산(船舫山) 아래 용암천(龍巖川) 옆 이곳에 관수정을 세웠다. 그 후 폐허로 있던 것을 1786년 선생의 후손인 송익좌(宋益佐)가 다시 고쳐지었고, 1800년 중ㆍ후반에 두 번째로 다시 고쳐지었다. 6ㆍ25전쟁으로 불타 없어지자 1955년에 다시 지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정자에는 송흠 선생의 한시(漢詩), 관수정기(觀水亭記), 친필 취중건상인(醉贈健上人) 글을 비롯해 김안국(金安國), 소세양(蘇世讓), 양팽손(梁彭孫), 송순(宋純), 임억령(林億齡), 김인후(金麟厚) 등 23분의 시(詩)를 포함한 다수의 현판*이 걸려있다.


  • 현판(懸板) : 글자나 그림을 새겨 문 위나 벽에 다는 널조각
  • 목민관(牧民官) : 백성을 다스려 기르는 벼슬아치라는 뜻으로, 고을의 원(員)이나 수령 등의 외직 문관을 통틀어 이르는 말
  • 청백리(淸白吏) : 재물에 대한 욕심이 없이 곧고 깨끗한 관리
  • 삼마태수(三馬太守) : 재물에 욕심이 없는 깨끗한 관리

영문

Gwansujeong Pavilion

This pavilion was built by Song Heum (1459-1547), a civil official and scholar of the Joseon period (1392-1910). The name of the pavilion can be interpreted to mean “a pavilion to purify a wicked heart by looking at clear water.”

Song Heum was born in Jangseong. He passed the state examination in 1492 and served various official posts. After he served a number of administrative posts in various regions, he was promoted to governor of Jeolla-do Province. Song was widely known as a strong man of great integrity. He was also a filial son and diligently took care of his elderly mother until she died at the age of 101.

Following his retirement, he returned to his hometown, where he built this pavilion next to Yongamcheon Stream and spent his time enjoying the beauty of local nature while writing poems with his friends and students. Some of those poems are inscribed on the plaques hanging inside the pavilion.

In 1786, the pavilion was renovated by one of Song’s descendants. It was burned down during the Korean War (1950-1953) and was rebuilt in 1955. Across the stream is a pavilion named Giyeongjeong which was built in 1543 on royal order to honor Song Heum.

영문 해설 내용

관수정은 조선시대의 문신이자 학자인 송흠(1459-1547)이 지은 정자이다. ‘관수정’은 ‘맑은 물을 보고 나쁜 마음을 씻는 정자’라는 뜻이다.

송흠은 장성 출신으로, 1492년 과거에 합격한 뒤 여러 관직을 지냈다. 특히 여러 지방의 수령을 지내고 1534년에는 전라도 관찰사가 되었으며, 청렴하고 강직한 관리로 명성이 높았다. 101세까지 장수한 노모를 극진히 봉양한 효자이기도 하다.

말년에 관직에서 물러난 뒤에는 고향으로 돌아와 이곳 용암천 옆에 관수정을 짓고, 주변의 경치를 즐기며 제자, 친구들과 함께 시를 짓곤 하였다. 지금도 정자 안에는 당시에 지은 시들을 적은 현판이 여럿 걸려있다.

관수정은 1786년 송흠의 후손이 고쳐 지었으나, 한국전쟁으로 불에 타 1955년에 다시 지었다. 용암천 건너편에는 1543년 왕명으로 송흠을 위해 지어진 기영정이라는 정자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