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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엄태규 기자, [http://www.ibulgyo.com/news/articleView.html?idxno=167954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 ③ 공주 마곡사], 불교신문, 2018.07.24.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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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상무님, [https://blog.naver.com/lim8243, 마곡사 전경], 헤이질넛 향, 네이버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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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8월 1일 (토) 14:47 판


공주 마곡사(마곡사의 연혁)
상무님, 마곡사 전경, 헤이질넛 향, 네이버 블로그.
대표명칭 공주 마곡사(마곡사의 연혁)
주소 충남 공주시 사곡면 마곡사로 966, 마곡사 (운암리)



해설문

국문

마곡사는 충남·대전·세종 지역 조계종(曹溪宗) 100여 사찰을 관장하는 대본산이며,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산사, 한국의 산지 승원’ 7개 사찰 중 하나이다.

태화산의 수려한 경관 속에서 봄이 가장 아름답다 하여 “봄은 마곡사, 가을은 갑사”라는 뜻의 '춘마곡 추갑사(春麻谷 秋甲寺)'라는 말이 전해진다. 또한 주변 산과 물의 형태가 ‘쌍태극(雙太極)’ 모양의 명당이어서 전쟁과 기근에도 안전한 곳이라 알려졌고 실제로 여러 번의 전란을 무사히 지나왔다.

마곡사의 건립에 대해서는 백제 의자왕 때 자장율사가 지었다고도 하고 신라의 보조 체징(普照體澄) 선사가 세웠다는 기록도 있다. ‘마곡’이란 말의 유래는 보철화상이 법문을 할때에 계곡에 모여든 사람들이 마치 삼밭 처럼 보였다 하여 ‘삼골’ 즉, 한자로 ‘마곡(麻谷)’이란 설과 신라 고승 무염이 중국 마곡사에서 법을 이어왔기 때문이라는 설 등이 전한다.

고려시대에도 국가적으로 중요한 사찰이었음을 보여주는 유물로 5층 석탑과 대광보전의 본존불이 있다. 조선이 건국된 후 불교는 힘을 잃지만, 마곡사에는 왕실의 관심이 이어졌다. 1465년경 세조 임금이 찾아와 직접 쓴 ‘영산전(靈山殿)’이란 글자를 내리며 타고 왔던 가마인 ‘연’을 남겨주었고, 공주목사와 충청감사는 계속해서 재물을 지원하였다. 임진왜란 때에 의병이 마곡사에 모이기도 했지만 전란에 황폐해지자 1650년에 ‘각순’이란 스님이 다시 중창하면서 제 모습을 찾았는데 이때 승려를 모아 종이를 생산해 나라에 진상하고 기와를 구워 살림을 꾸려갔다.

1782년 대화재로 건물이 모두 불에 탔지만 나라의 지원으로 빠르게 제 모습을 찾았다. 1790년 정조 임금의 아들 순조가 탄생했을 때에는 마곡사에서 천일 기도를 올린 덕분이라 하여 승려들을 힘들게 했던 종이 제작 기능을 없애는 동시에 충청도의 우두머리 사찰[수사찰]로 지정하였다. 그 위상은 일제강점기에도 이어져 전국 31본산 중 하나가 되었다. 역사적으로 이름 있는 수많은 인물이 마곡사를 찾았으며 1898년 23세의 백범 김구가 마곡사에 자취를 남기기도 하였다.

마곡사에는 19동의 전각과 14개의 암자(작은 절)가 있다. 물 길을 사이에 두고 남쪽은 영산전(靈山殿)을 중심으로 한 수행의 공간이고 북쪽은 대광보전(大光寶殿)을 중심으로 한 교화의 영역이다.

영문

영문 해설 내용

마곡사는 640년에 신라의 승려 자장이 선덕여왕의 후원을 받아 지었다는 설과, 9세기 무렵 체칭에 의해 창건됐다는 설이 있다. 마곡사라는 이름은 이곳에서 열린 법회 때 모여든 사람들이 너무 많아 ‘삼밭’처럼 보인 데서 유래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창건 이후 1199년 지눌이 왕명에 의해 마곡사를 중수했다고 하며, 12세기 말부터 15세기 후반 사이에 건립되었던 전각이 30여 채에 이르는 큰 규모였다고 한다.

조선 세조(世祖)가 김시습을 만나기 위해 마곡사에 왔다가 이곳의 지세에 감탄하면서 영산전의 편액과 잡역의 부담을 면해주는 수패(手牌)를 내렸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으며 폐허가 되었던 마곡사는 1650년부터 각순 스님의 주도 하에 당시 공주 현감의 시주를 받아 중창되었다. 1782년에는 큰 불이 나 경내의 대부분의 건물이 불에 탔지만 1785년부터 체규를 중심으로 법당인 대광보전을 중수하는 등 중창이 시작되었다. 특히 1790년에 순조의 탄생을 기념하여 조선왕실의 후원을 얻게 되었으며, 이후 지속적인 중창을 통해 지금과 같은 사찰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마곡사는 2018년 6월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산사, 한국의 산지 승원’ 7개 사찰 중 하나로, 마곡천을 기준으로 수행의 공간인 ‘남원’과 교화 영역에 속하는 ‘북원’이 나누어져 있는 독특한 가람 배치를 이루고 있다.

마곡사가 자리한 곳은 주변의 산과 물길이 태극 모양으로 굽이쳐 흐르는 명당으로 전쟁과 기근에도 안전한 곳이라 알려져 있으며, 봄이 특히 아름답다 하여 “봄은 마곡사, 가을은 갑사”라는 뜻의 '춘마곡 추갑사(春麻谷 秋甲寺)'라는 말이 전해진다.

  • 1898년 잠시 출가해 승려가 되었던 백범 김구의 자취가 남아 있는 사찰이다.
  • 템플스테이 프로그램을 통해 방문객들이 한국 전통 문화를 배우고 불교의 가르침을 실천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 한국의 산사는 7-9세기에 창건된 후 수행과 신앙, 생활의 기능을 유지한 종합 승원이라는 점에서 세계유산 필수조건인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인정받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 (‘산사’ 등재 이유)

참고 문헌

-> 마곡사 연혁, 역사 설명

-> 세계문화유산 등재 결정 관련 보도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