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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story of Magoksa Temple'''
 
'''History of Magoksa Temp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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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oksa Temple is the headquarters of the Jogye Order’s sixth district, which includes around 100 temples in the Chungcheongnam-do, Daejeon, and Sejong areas. It is also one of the seven temples designated as a UNESCO World Heritage under the name “Sansa, Buddhist Mountain Monasteries in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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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 is said that Magoksa Temple was founded either by Jajang (590-658) or Chejing (804-880), both eminent monks of the Silla period (57 BCE-935 CE). The name Magoksa, meaning “temple of the hemp valley,” is said to come from the fact that so many people gathered here during Buddhist ceremonies that they appeared to look like a field of hem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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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temple is said to have been rebuilt by Jinul (1158-1210) in 1199 on a royal order of the Goryeo dynasty (918-1392). At this time, it was a massive temple with around 30 worship halls. King Sejo (r. 1455-1468) of the Joseon dynasty (1392-1910) visited Magoksa Temple and bestowed a personally calligraphed name plaque for Yeongsanjeon Hall. The palanquin that the king was riding in at that time was left at Magoksa Temple, and it currently remains designated as Chungcheongnam-do Folklore Cultural Heritage No.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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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temple was destroyed during the Japanese invasions of 1592-1598 and the Manchu invasion of 1637. Reconstruction began in 1650. It is said that at that time, the monks of Magoksa Temple earned a living through the production of paper and roof tiles. In 1782, most of the buildings in the complex burned down in a fire. In 1785, the main worship hall Daegwangbojeon was rebuilt, after which the temple began to regain its former size. In 1790, when King Jeongjo (r. 1776-1800)’s second son (later King Sunjo, r. 1800-1834) was born, the monks here prayed for 1,000 days for the baby's health and good fortune. Thanks to this, the temple received extensive support from the royal court and was designated as the head temple of the Chungcheong area. Since then, Magoksa Temple was visited by many prominent figures in Korean history. In 1898, the politician and independence activist Kim Gu (1876-1949) briefly became a monk and stayed he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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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rea where Magoksa Temple is located has long been considered auspicious because of the mountains and waterways winding in the shape of a ''taegeuk'', symbolizing the harmony of ''yin'' and ''yang''. It has been known as a safe place even during wars and famine, with scenery that is particularly beautiful in spring. There are 19 buildings in the temple’s complex and 14 hermitages in the vicinity. The layout of the temple is unique, as it is divided into southern and northern sections by Magokcheon Stream.
  
 
===영문 해설 내용===
 
===영문 해설 내용===
마곡사는 충남·대전·세종 지역의 100여 개 사찰을 관장하는 조계종 제6교구(district)의 본사(headquarters temple)이며,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산사, 한국의 산지 승원’ 7개 사찰 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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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곡사는 충남, 대전, 세종 지역의 100여 개 사찰을 관장하는 조계종 제6교구의 본사이며,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산사, 한국의 산지 승원’ 7개 사찰 중 하나이다.
  
 
마곡사의 창건과 관련해서는 신라의 승려 자장(590-658)이 지었다고도 하고, 체징(804-880)에 의해 창건됐다는 설도 있다. 이곳에서 법회가 열렸을 때 모여든 사람들이 너무 많아 마치 ‘삼밭’처럼 보였다고 하여, “삼골짜기 사찰”이라는 뜻의 마곡사라는 이름이 지어졌다고 한다.
 
마곡사의 창건과 관련해서는 신라의 승려 자장(590-658)이 지었다고도 하고, 체징(804-880)에 의해 창건됐다는 설도 있다. 이곳에서 법회가 열렸을 때 모여든 사람들이 너무 많아 마치 ‘삼밭’처럼 보였다고 하여, “삼골짜기 사찰”이라는 뜻의 마곡사라는 이름이 지어졌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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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으며 폐허가 되었던 마곡사는 1650년부터 다시 중창되기 시작하였다. 당시 마곡사의 승려들은 종이를 만들거나 기와를 구워서 살림을 꾸려나갔다고 한다. 1782년 큰불이 나서 경내의 건물 대부분이 불에 탔지만, 1785년부터 법당인 대광보전을 중수하는 등 예전의 규모를 되찾기 시작하였다. 특히 1790년 정조(재위 1776-1800)의 둘째 왕자(후의 순조, 재위 1800-1834)가 태어났을 때, 마곡사 스님들의 천일기도 덕분이라 하여 조선 왕실의 전폭적인 후원을 얻게 되었고 충청도 지역의 우두머리 사찰로 지정되었다. 이후 마곡사는 한국 역사상 이름 있는 수많은 인물들이 찾는 곳이었다. 독립운동가이자 정치인이었던 김구(1876-1949)가 1898년 잠시 출가하여 이곳에 머무르기도 하였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으며 폐허가 되었던 마곡사는 1650년부터 다시 중창되기 시작하였다. 당시 마곡사의 승려들은 종이를 만들거나 기와를 구워서 살림을 꾸려나갔다고 한다. 1782년 큰불이 나서 경내의 건물 대부분이 불에 탔지만, 1785년부터 법당인 대광보전을 중수하는 등 예전의 규모를 되찾기 시작하였다. 특히 1790년 정조(재위 1776-1800)의 둘째 왕자(후의 순조, 재위 1800-1834)가 태어났을 때, 마곡사 스님들의 천일기도 덕분이라 하여 조선 왕실의 전폭적인 후원을 얻게 되었고 충청도 지역의 우두머리 사찰로 지정되었다. 이후 마곡사는 한국 역사상 이름 있는 수많은 인물들이 찾는 곳이었다. 독립운동가이자 정치인이었던 김구(1876-1949)가 1898년 잠시 출가하여 이곳에 머무르기도 하였다.
  
마곡사가 자리한 곳은 주변의 산과 물길이 태극 모양으로 굽이쳐 흐르는 형상으로, 오랫동안 명당으로 여겨져 왔다. 전쟁과 기근에도 안전한 곳이라 알려져 있으며, 봄의 경관이 특히 아름답다. 마곡사 인근에는 14개의 암자가 있으며, 경내에는 19동의 전각이 있다. 마곡천을 중심으로 남쪽 영역과 북쪽 영역으로 나누어져 있는 독특한 가람 배치를 이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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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곡사가 자리한 곳은 주변의 산과 물길이 태극 모양으로 굽이쳐 흐르는 형상으로, 오랫동안 명당으로 여겨져 왔다. 전쟁과 기근에도 안전한 곳이라 알려져 있으며, 봄의 경관이 특히 아름답다. 마곡사 인근에는 '''14개의 암자'''가 있으며, 경내에는 19동의 전각이 있다. 마곡천을 중심으로 남원과 북원으로 나누어져 있는 독특한 가람 배치를 이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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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원 안내문안에는 마곡사의 암자가 8개로 언급됨. 국문 집필자에게 따로 확인할 예정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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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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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마곡사_가람배치.png|마곡사 가람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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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참고자료'''==

2021년 1월 2일 (토) 16:22 기준 최신판

공주 마곡사(마곡사의 연혁)
History of Magoksa Temple
상무님, 마곡사 전경, 헤이질넛 향, 네이버 블로그.
대표명칭 공주 마곡사(마곡사의 연혁)
영문명칭 History of Magoksa Temple
주소 충남 공주시 사곡면 마곡사로 966, 마곡사 (운암리)



해설문

국문

마곡사는 충남·대전·세종 지역 조계종(曹溪宗) 100여 사찰을 관장하는 대본산이며,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산사, 한국의 산지 승원’ 7개 사찰 중 하나이다.

태화산의 수려한 경관 속에서 봄이 가장 아름답다 하여 “봄은 마곡사, 가을은 갑사”라는 뜻의 '춘마곡 추갑사(春麻谷 秋甲寺)'라는 말이 전해진다. 또한 주변 산과 물의 형태가 ‘쌍태극(雙太極)’ 모양의 명당이어서 전쟁과 기근에도 안전한 곳이라 알려졌고 실제로 여러 번의 전란을 무사히 지나왔다.

마곡사의 건립에 대해서는 백제 의자왕 때 자장율사가 지었다고도 하고 신라의 보조 체징(普照體澄) 선사가 세웠다는 기록도 있다. ‘마곡’이란 말의 유래는 보철화상이 법문을 할때에 계곡에 모여든 사람들이 마치 삼밭 처럼 보였다 하여 ‘삼골’ 즉, 한자로 ‘마곡(麻谷)’이란 설과 신라 고승 무염이 중국 마곡사에서 법을 이어왔기 때문이라는 설 등이 전한다.

고려시대에도 국가적으로 중요한 사찰이었음을 보여주는 유물로 5층 석탑과 대광보전의 본존불이 있다. 조선이 건국된 후 불교는 힘을 잃지만, 마곡사에는 왕실의 관심이 이어졌다. 1465년경 세조 임금이 찾아와 직접 쓴 ‘영산전(靈山殿)’이란 글자를 내리며 타고 왔던 가마인 ‘연’을 남겨주었고, 공주목사와 충청감사는 계속해서 재물을 지원하였다. 임진왜란 때에 의병이 마곡사에 모이기도 했지만 전란에 황폐해지자 1650년에 ‘각순’이란 스님이 다시 중창하면서 제 모습을 찾았는데 이때 승려를 모아 종이를 생산해 나라에 진상하고 기와를 구워 살림을 꾸려갔다.

1782년 대화재로 건물이 모두 불에 탔지만 나라의 지원으로 빠르게 제 모습을 찾았다. 1790년 정조 임금의 아들 순조가 탄생했을 때에는 마곡사에서 천일 기도를 올린 덕분이라 하여 승려들을 힘들게 했던 종이 제작 기능을 없애는 동시에 충청도의 우두머리 사찰[수사찰]로 지정하였다. 그 위상은 일제강점기에도 이어져 전국 31본산 중 하나가 되었다. 역사적으로 이름 있는 수많은 인물이 마곡사를 찾았으며 1898년 23세의 백범 김구가 마곡사에 자취를 남기기도 하였다.

마곡사에는 19동의 전각과 14개의 암자(작은 절)가 있다. 물 길을 사이에 두고 남쪽은 영산전(靈山殿)을 중심으로 한 수행의 공간이고 북쪽은 대광보전(大光寶殿)을 중심으로 한 교화의 영역이다.

영문

History of Magoksa Temple

Magoksa Temple is the headquarters of the Jogye Order’s sixth district, which includes around 100 temples in the Chungcheongnam-do, Daejeon, and Sejong areas. It is also one of the seven temples designated as a UNESCO World Heritage under the name “Sansa, Buddhist Mountain Monasteries in Korea.”

It is said that Magoksa Temple was founded either by Jajang (590-658) or Chejing (804-880), both eminent monks of the Silla period (57 BCE-935 CE). The name Magoksa, meaning “temple of the hemp valley,” is said to come from the fact that so many people gathered here during Buddhist ceremonies that they appeared to look like a field of hemp.

The temple is said to have been rebuilt by Jinul (1158-1210) in 1199 on a royal order of the Goryeo dynasty (918-1392). At this time, it was a massive temple with around 30 worship halls. King Sejo (r. 1455-1468) of the Joseon dynasty (1392-1910) visited Magoksa Temple and bestowed a personally calligraphed name plaque for Yeongsanjeon Hall. The palanquin that the king was riding in at that time was left at Magoksa Temple, and it currently remains designated as Chungcheongnam-do Folklore Cultural Heritage No. 14.

The temple was destroyed during the Japanese invasions of 1592-1598 and the Manchu invasion of 1637. Reconstruction began in 1650. It is said that at that time, the monks of Magoksa Temple earned a living through the production of paper and roof tiles. In 1782, most of the buildings in the complex burned down in a fire. In 1785, the main worship hall Daegwangbojeon was rebuilt, after which the temple began to regain its former size. In 1790, when King Jeongjo (r. 1776-1800)’s second son (later King Sunjo, r. 1800-1834) was born, the monks here prayed for 1,000 days for the baby's health and good fortune. Thanks to this, the temple received extensive support from the royal court and was designated as the head temple of the Chungcheong area. Since then, Magoksa Temple was visited by many prominent figures in Korean history. In 1898, the politician and independence activist Kim Gu (1876-1949) briefly became a monk and stayed here.

The area where Magoksa Temple is located has long been considered auspicious because of the mountains and waterways winding in the shape of a taegeuk, symbolizing the harmony of yin and yang. It has been known as a safe place even during wars and famine, with scenery that is particularly beautiful in spring. There are 19 buildings in the temple’s complex and 14 hermitages in the vicinity. The layout of the temple is unique, as it is divided into southern and northern sections by Magokcheon Stream.

영문 해설 내용

마곡사는 충남, 대전, 세종 지역의 100여 개 사찰을 관장하는 조계종 제6교구의 본사이며,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산사, 한국의 산지 승원’ 7개 사찰 중 하나이다.

마곡사의 창건과 관련해서는 신라의 승려 자장(590-658)이 지었다고도 하고, 체징(804-880)에 의해 창건됐다는 설도 있다. 이곳에서 법회가 열렸을 때 모여든 사람들이 너무 많아 마치 ‘삼밭’처럼 보였다고 하여, “삼골짜기 사찰”이라는 뜻의 마곡사라는 이름이 지어졌다고 한다.

고려시대인 1199년 지눌(1158-1210)이 왕명에 의해 중수했다고 하며 전각이 30여 채에 이르는 큰 규모의 사찰이었다고 한다. 조선시대에는 세조(재위 1455-1468)가 마곡사에 왔다가 영산전에 친필 현판을 내려주었다. 당시 왕이 타고 왔던 가마를 마곡사에 두고 돌아갔는데, 그 가마가 현재까지 남아 있으며 충청남도 민속문화재 제14호로 지정되어 있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으며 폐허가 되었던 마곡사는 1650년부터 다시 중창되기 시작하였다. 당시 마곡사의 승려들은 종이를 만들거나 기와를 구워서 살림을 꾸려나갔다고 한다. 1782년 큰불이 나서 경내의 건물 대부분이 불에 탔지만, 1785년부터 법당인 대광보전을 중수하는 등 예전의 규모를 되찾기 시작하였다. 특히 1790년 정조(재위 1776-1800)의 둘째 왕자(후의 순조, 재위 1800-1834)가 태어났을 때, 마곡사 스님들의 천일기도 덕분이라 하여 조선 왕실의 전폭적인 후원을 얻게 되었고 충청도 지역의 우두머리 사찰로 지정되었다. 이후 마곡사는 한국 역사상 이름 있는 수많은 인물들이 찾는 곳이었다. 독립운동가이자 정치인이었던 김구(1876-1949)가 1898년 잠시 출가하여 이곳에 머무르기도 하였다.

마곡사가 자리한 곳은 주변의 산과 물길이 태극 모양으로 굽이쳐 흐르는 형상으로, 오랫동안 명당으로 여겨져 왔다. 전쟁과 기근에도 안전한 곳이라 알려져 있으며, 봄의 경관이 특히 아름답다. 마곡사 인근에는 14개의 암자가 있으며, 경내에는 19동의 전각이 있다. 마곡천을 중심으로 남원과 북원으로 나누어져 있는 독특한 가람 배치를 이루고 있다.

  • 북원 안내문안에는 마곡사의 암자가 8개로 언급됨. 국문 집필자에게 따로 확인할 예정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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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