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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구 선생 삭발바위(공주 마곡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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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 마곡사 (김구 선생 삭발바위)
박부영, [ http://www.ibulgyo.com/news/articleView.html?idxno=201936 (사찰에서 만나는 우리 역사) <32> 공주 마곡사], 불교신문, 2019.09.26. 기사.
대표명칭 공주 마곡사 (김구 선생 삭발바위)
주소 충남 공주시 사곡면 마곡사로 966, 마곡사 (운암리)



해설문

국문

삭발바위는 백범당 뒤쪽 백범명상길을 거닐다 보면 만나게 되는 바위이다. 또한 백범교라는 나무다리를 건너 전망대에 서면 보이는 바위이다. 이름 그대로 김구선생이 삭발을 했던 바위라서 붙여진 이름이다. 백범 김구는 1893년 동학에 입도하였고, 황해도에서 선봉장이 되어 동학농민혁명에 참여하였다. 이후 의병활동에 가담하였으며, 1896년 3월 명성황후를 시해한 원수를 갚기 위해 일본군 중위 스치다를 처단하여 투옥되었다. 그러나 1898년 3월 탈옥하였고, 충청도와 전라도지역을 다니면서 은신하다가 그 해 가을 충남 공주 마곡사에서 출가하여 승려가 되었다. 이듬해 봄 마곡사를 떠났지만, 평안남도 대동군에서 약 1년여 동안 승려생활을 하는 등 이후 독립운동가로서 활동하였다.

김구선생과 마곡사의 인연은 1898년 늦가을 경 공주 갑사에서 ‘이(李)서방’이라는 공주 사람을 만났고, 그 인연을 통해 마곡사에서 반년 남짓한 기간 동안 승려생활을 했던 것이다. 마곡사는 김구선생이 승려생활을 했던 장소라는 점, 승려가 되기 위해 삭발했던 바위가 있다는 점 등으로 의미를 갖는 곳이다.

영문

영문 해설 내용

이 바위는 독립운동가 김구 선생이 출가하기 위해 머리를 깎았다고 하는 곳이다.

김구는 1896년 명성황후 시해에 대한 분노로 황해도에서 일본군 중위 스치다를 죽여 인천천형무소에 투옥되어 사형 선고를 받았다가 1898년 탈옥하였다. 도피 생활 중 공주 갑사에서 만난 사람을 통해 그 해 가을 마곡사에서 원종(圓宗)이라는 법명의 승려가 되었다.

그는 이곳에서 6개월 동안 수행하였고, 이듬해 봄에 마곡사를 떠나 평양 영천암에서도 1년여 간 머물렀으나, 이후 환속해 독립운동가로 활동하였다.

김구 선생은 해방 후인 1946년 마곡사를 방문하여 자신의 좌우명을 적은 친필 휘호를 남기고 기념으로 무궁화와 향나무를 심었다고 한다. 백범당 앞에 심은 향나무는 지금도 남아 자라고 있다.

이 바위와 마곡천을 잇는 나무다리인 ‘백범교’가 있고, 군왕대로 이어지는 ‘백범 솔바람 명상 길’을 걸어도 만날 수 있다.

참고 자료

  • (사찰에서 만나는 우리 역사) <32> 공주 마곡사, 작성자 박부영, 불교신문, 2019.09.26. http://www.ibulgyo.com/news/articleView.html?idxno=201936 -> 이미지 출처 / 백범 선생이 출가했던 장소로 알려진 백범당은 원래 건물이 없었으나 역사 고증을 거쳐 2004년에 복원하여 조성했다. 선생의 진영(眞影)과 당시 마을 사람들과 함께 찍은 사진 등이 마곡사를 찾는 사람들의 발과 눈을 사로잡는다. / 마곡사는 선생이 서거하자 49재를 지냈으며 지금도 그의 서거일에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추모다례재를 봉행한다.
  • 마곡사 홈페이지 http://www.magoksa.or.kr/bbs/content.php?co_id=1040 -> 향나무 언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