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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 마곡사 북쪽 권역(북원)"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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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상무님, [https://blog.naver.com/lim8243, 마곡사 전경], 헤이질넛 향, 네이버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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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공주 마곡사 성보박물관 권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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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공주 마곡사 북쪽 권역(북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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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 해설 내용===
 
===영문 해설 내용===
마곡사는 마곡천을 사이에 두고 남원과 북원의 두 공간으로 나뉜다. 이 중 북원 영역은 주요 불전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교화’의 영역으로 구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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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26,500㎡ 면적에 자리한 마곡사는 총 19동의 전각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경내를 동서로 가로지르는 마곡천을 중심으로 남쪽 영역과 북쪽 영역으로 나뉜다. 두 영역 모두 불전, 요사, 누각 등 사찰이 갖추어야 할 기본적인 건물들을 각각 갖추고 있기 때문에, 마치 독립적인 사찰이 2개인 것처럼 보인다.  
  
북원은 임진왜란 이후 절이 중창되었던 1650년에 조성되었다고 하며, 1782년 화재로 소실되었던 건물들이 1785년 제봉 선사에 의해 다시 세워지면서 지금과 같은 배치의 초기 단계가 완성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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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쪽 영역에는 비로자나불을 모신 대광보전, 석가모니불을 모신 대웅보전, 승려들의 생활공간인 심검당, 석가모니불과 나한들을 모신 응진전 등이 있다.  
  
북원의 중심축에는 5층 석탑 북쪽에 주불전인 대광보전이 있고, 축대 위에 석가모니불을 모신 대웅보전이 일자로 배치되어 있다. 그 외에도 북원 영역에서 가장 먼저 보이는 범종각과 승려들의 생활공간인 심검당 및 고방, 응진전 등의 전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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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가람 배치가 언제부터 이루어졌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며, 북쪽 영역은 전란으로 소실된 절을 중창하던 1650년에 완성되었다고 한다. 이후 승려가 천여 명에 이를 정도로 사찰이 번성하였지만, 1782년과 1783년에 일어난 화재로 대웅보전을 제외한 건물들이 모두 소실되었다. 1785년 대광보전을 다시 세웠고, 1791년 응진전, 1797년에는 심검당을 지었다. 이후 수차례 중수 과정을 거치면서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북원의 서편 마곡천 가까이에는 2006년 새로 지어진 조사전이 있다. 또 이곳에서 출가해 잠시 승려 생활을 했던 김구 선생을 기리기 위해 2004년 복원한 백범당 그가 1946년 마곡사를 방문해 심었다고 하는 향나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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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광보전 왼쪽에 위치한 백범당은 마곡사에서 출가해 잠시 승려 생활을 했던 김구(1876-1949, 호: 백범)를 기리기 위해 2004년에 지은 기념관이다. 백범당 오른쪽에는 김구가 1946년 마곡사를 방문해 심었다고 하는 향나무가 있다. 백범당 뒤에는 2006년에 지은 조사전이 있으며, 마곡사에 중요한 업적을 남긴 네 스님의 영정을 모시고 있다.  
 
 
마곡사는 2018년 6월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산사, 한국의 산지 승원’ 7개 사찰 중 하나이다. 640년에 신라의 승려 자장이 선덕여왕의 후원을 받아 지었고, 1199년 지눌이 중수했다고 전한다. 전각이 30여채에 달하는 큰 규모의 가람이었다고 하나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등의 전란과 1782년의 큰 화재로 피해를 입었고, 이후 지속적으로 건물들을 보수하고 중창하면서 지금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참고자료'''==
 
=='''참고자료'''==

2020년 8월 2일 (일) 12:31 판


공주 마곡사 북쪽 권역(북원)
상무님, 마곡사 전경, 헤이질넛 향, 네이버 블로그.
대표명칭 공주 마곡사 북쪽 권역(북원)
주소 충남 공주시 사곡면 마곡사로 966, 마곡사 (운암리)



해설문

국문

마곡사에는 19동의 전각과 8개의 암자가 있다. 마곡사가 위치한 자리는 태화산의 산골짜기이지만 넓은 평지에 여러 건물이 두 개의 영역으로 구분되어 배치된 형태를 갖추고 있다. 가람은 약 8000여 평의 면적에 경내를 동서로 가로지르는 마곡천 계곡을 사이에 두고 남북으로 나뉘어 조영되어 있어 마치 두 개의 사찰이 자리한 듯 보이기도 한다. 이 중 북쪽 권역(북원)은 주불전인 대광보전(大光寶殿)과 오층석탑을 중심으로 한 교화의 공간이다. 그밖에 대웅보전 대향각 응진전 범종각이 있고, 승려들이 생활하는 심검당 고방 요사 및 백범 김구의 자취가 남은 백범당과 향나무 등이 있다.

마곡사의 가람 배치가 언제부터 지금과 같은 형태였는지 알 수 없지만, 임진왜란 이후의 기록을 보면, 1650년 각순 스님이 공주목사 이태연의 도움으로 폐허된 절을 중창하며 북쪽 구역을 완성하였다. 이 무렵 예산 안곡사에서 범종을 보내왔고, 1741년(영조 17)에도 법당의 중종을 만들었다. 오층석탑의 북쪽에 대광보전, 또 다시 축대 위에 대웅보전이 자리한 ‘일탑쌍금당(一塔雙金堂)’식 배치는 아주 희귀한 사례이다.

승려가 천명에 이를 정도로 번성하였지만 1782년 화재로 대법당을 비롯한 천여칸의 건물이 불 타 버리는 사건이 있었다. 그 다음 해에도 연달아 화재가 일어나 대광보전도 소실된 채 탑과 불상, 대웅보전만 남게 되었다. 곧 제봉당 체규 스님이 중심이 되고 충청도관찰사 심풍지(沈豊之)의 적극적 지원에 힘입어 1785년 대광보전을 다시 세우고 1788년 표암 강세황이 쓴 ‘대광보전’ 현판을 걸었다. 대웅보전은 대장경을 보관하는 ‘대장전(大藏殿)’이었는데 이 시기에 부처를 모신 대웅보전으로 바뀌었다. 1791년 응진전, 1797년에는 심검당도 지었다. 그 후 수차례의 중수 과정을 거쳐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영문

영문 해설 내용

약 26,500㎡ 면적에 자리한 마곡사는 총 19동의 전각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경내를 동서로 가로지르는 마곡천을 중심으로 남쪽 영역과 북쪽 영역으로 나뉜다. 두 영역 모두 불전, 요사, 누각 등 사찰이 갖추어야 할 기본적인 건물들을 각각 갖추고 있기 때문에, 마치 독립적인 사찰이 2개인 것처럼 보인다.

북쪽 영역에는 비로자나불을 모신 대광보전, 석가모니불을 모신 대웅보전, 승려들의 생활공간인 심검당, 석가모니불과 나한들을 모신 응진전 등이 있다.

이러한 가람 배치가 언제부터 이루어졌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며, 북쪽 영역은 전란으로 소실된 절을 중창하던 1650년에 완성되었다고 한다. 이후 승려가 천여 명에 이를 정도로 사찰이 번성하였지만, 1782년과 1783년에 일어난 화재로 대웅보전을 제외한 건물들이 모두 소실되었다. 1785년 대광보전을 다시 세웠고, 1791년 응진전, 1797년에는 심검당을 지었다. 이후 수차례 중수 과정을 거치면서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대광보전 왼쪽에 위치한 백범당은 마곡사에서 출가해 잠시 승려 생활을 했던 김구(1876-1949, 호: 백범)를 기리기 위해 2004년에 지은 기념관이다. 백범당 오른쪽에는 김구가 1946년 마곡사를 방문해 심었다고 하는 향나무가 있다. 백범당 뒤에는 2006년에 지은 조사전이 있으며, 마곡사에 중요한 업적을 남긴 네 스님의 영정을 모시고 있다.

참고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