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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 마곡사 대웅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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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 마곡사 대웅보전
Daeungbojeon Hall of Magoksa Temple, Gongju
공주 마곡사 대웅보전,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공주 마곡사 대웅보전
영문명칭 Daeungbojeon Hall of Magoksa Temple, Gongju
한자 公州 麻谷寺 大雄寶殿
주소 충남 공주시 사곡면 마곡사로 966, 마곡사 (운암리)
지정번호 보물 제801호
지정일 1984년 11월 30일
분류 유적건조물/종교신앙/불교/불전
시대 백제
수량/면적 1동
웹사이트 공주 마곡사 대웅보전,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사찰의 현판이름은 보통 건물 내부에 모신 부처님에 따라 결정된다. 대웅보전은 석가모니 부처님을 모신 건물이란 뜻이다. 현재 대웅보전에는 석가모니 부처님을 중심으로 양옆에 약사여래부처님과 아미타부처님을 나무로 조각한 ‘공주 마곡사 대웅보전 목조삼세불상’(公州 麻谷寺 大雄寶殿 木造三世佛像,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85호)이 모셔져 있다. 석가모니를 모신 대웅보전은 마곡사에서 가장 중요한 건물로 대광보전과 해탈문과 천왕문과 일직선으로 위치해 있다.

대웅보전은 처음 만들어진 시기는 모르지만, 임진왜란 때 소실된 후 1651년 각순대사와 당시 공주목사가 협력하여 중건하였다고 한다. 처음에는 대장경을 보관하는 ‘대장전(大藏殿)’으로 만들어졌는데 1782년의 큰 화재 이후 사찰 재건 과정에서 대웅보전으로 바뀌었다.

1985년 수리 당시 발견된 기와에는 ‘康熙二年癸丑五月(1663년)’, ‘康熙三十四年乙亥(1695년)’, ‘乾隆十七年壬午(1752년)’ 등의 글자가 새겨져 있어 당시 건물의 역사적 흔적을 보여준다.

대웅보전은 밖에서 보면 2층 건물처럼 보이지만, 내부는 하나의 공간이다. 대웅보전의 남쪽에 대광보전이 있고, 바로 뒤에 구릉이 있는데, 대광보전 앞에서 보면 건물들이 높아 보이는 느낌을 받는다. 현재 남아 있는 2층 건물이 흔치 않아 대웅보전은 건축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의의를 지니고 있다. 현재 보물 제801호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다.

대웅보전 내부 앞쪽에 싸리나무 기둥이 네 개가 있는데 여기에도 재미있는 설화가 전해 내려오고 있다. 사람이 죽어 저승의 염라대왕 앞에 가면 “그대는 마곡사 싸리나무 기둥을 몇 번이나 돌았느냐?”라고 묻는다고 한다. 그 이유는 많이 돌수록 극락길이 가깝지만 아예 돌지 않았다고 하면 지옥에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들이 없는 사람이 마곡사의 싸리나무 기둥을 안고 돌면 아들을 낳는다고 전해진다. 이런 재미난 전설로 인해 지금도 이 싸리나무 기둥은 윤기가 반질반질 나있고 손때가 묻어있다.

영문

영문 해설 내용

대웅보전은 석가모니불을 모시는 법당이자 사찰의 중심 건물이다.

마곡사의 대웅보전은 대적광전과 함께 북원 영역의 중심을 이루는 건물로,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던 것을 1651년 각순대사가 절을 중창하면서 지은 것이라고 한다.

당시 공주 목사였던 이태연(1615-1669)의 시주를 받아 대장경을 보관하기 위한 ‘대장전’으로 지어졌다고 하며, 1782년 마곡사에 큰 불이 난 후 1785년 제봉선사가 사찰을 재건하는 과정에서 불전으로 바뀐 것으로 보인다. ‘대웅보전’이라는 이름은 1879년 이후의 기록에서 확인된다.

이 건물은 협소한 경사지에 자리하고 있어서 대지를 평평하게 하기 위해 전면에 쌓은 높은 기단 위에 세워졌으며, 앞마당도 매우 좁다. 외관은 2층으로 되어 있지만 내부는 하나의 공간으로 트여 있고, 불단 위에 석가모니 부처님을 중심으로 양옆에 약사여래불과 아미타불이 모셔져 있다.

건물 안에 싸리나무 기둥 네 개가 있는데, 여기에는 몇 가지 이야기가 전한다. 하나는 사람이 죽어 저승의 염라대왕 앞에 갔을 때 이 기둥을 몇 번이나 돌았는지를 묻고 많이 돌수록 극락에 가깝다고 여긴다는 것이다. 또 아들이 없는 사람이 이 기둥을 안고 돌면 아들을 낳게 된다고도 한다.

내용 삽입 여부 고민 필요

  • 상층의 벽이 판재로 되어 있는 점이나 내부의 고주나 포벽에 시주자 명단 등 많은 묵서가 적혀 있는 것은 불전에서는 흔하지 않은 것으로, 이 건물이 원래 불전이 아니었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 대웅전은 ‘세상을 밝히는 위대한 영웅을 모시는 전각’이라는 뜻이며, 현판에 쓰인 ‘대웅보전’은 대웅전의 격을 더 높여 부르는 이름이다.
  • 각 층의 지붕 모서리에는 처마 무게를 받치기 위한 기둥을 세웠다.
  • 일제강점기에도 중수된 이력이 있다. (실측보고서 참고 가능)


참고 자료

  • 마곡사 홈페이지 http://www.magoksa.or.kr/bbs/content.php?co_id=1040 -> 전설 이야기
  • 산사, 한국의 산지 승원 http://www.koreansansa.net/ktp/sansa/sansa_020404.do -> 대장전으로 명명한 건물이 2층이었다는 기록이 있고, 내부 고주에 시주자의 명단이 기록되어 있는 등 고주를 비롯한 포벽 등 곳곳에 많은 묵서가 적혀 있는 것은 불전에서는 흔하지 않은 것으로 이 건물이 원래 불전이 아니었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으로 생각된다. 대웅보전이 위치한 터가 매우 협소하며, 상층의 벽이 판벽으로 구성된 점 역시 이러한 사실을 뒷받침한다.

마곡사는 1782년 대화재로 법당을 비롯한 1,050여 간의 건물이 소실되어 1785~1788년에 걸쳐 법당, 즉 현재의 대광보전이 중건된다. 이러한 사실로 미루어 보아 대장전은 1650년 각순에 의한 중창 불사로 조영된 후 1782년의 화재 때 대장전은 소실되지 않았고 임시로 법당으로 사용하였을 가능성을 추정해볼 수 있다. 1985년 해체 공사 중에 ‘康熙二年 癸丑 五月’(1663년), ‘康熙三十四年 乙亥’((1695년), ‘乾隆二十七年 壬午’(1762년) 등의 명문이 적힌 기와가 확인된 점 역시 이 건물이 1782년 대화재에 소실되지 않고 유지되었을 가능성을 준다. 언제부터 대웅보전으로 고쳐 부르기 시작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1879년의 「충청우도공주태화산마곡사대웅전현판」에 따르면 적어도 이때부터는 대웅보전으로 불렸던 것으로 보인다.

  • 공주 마곡사 대웅보전·대광보전 정밀실측조사보고서 상, 문화재청 2012.

-> 1663년에 건립되었으며. 1905년, 1923년 대웅전이 중수되었다.

-> 좁은 경사지에 자리잡은 대웅보전은 대지를 평평하게 하기 위해 전면에 높은 기단을 쌓았고, 마당 역시 좁기 때문에 건물 좌우를 통해서도 진입이 가능하도록 계단은 세 곳에 조성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