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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 마곡사 대광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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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 마곡사 대광보전
Daegwangbojeon Hall of Magoksa Temple, Gongju
공주 마곡사 대광보전,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공주 마곡사 대광보전
영문명칭 Daegwangbojeon Hall of Magoksa Temple, Gongju
한자 公州 麻谷寺 大光寶殿
주소 충남 공주시 사곡면 마곡사로 966, 마곡사 (운암리)
지정번호 보물 제802호
지정일 1984년 11월 30일
분류 유적건조물/종교신앙/불교/불전
시대 백제
수량/면적 1동
웹사이트 공주 마곡사 대광보전,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마곡사 대광보전은 대웅보전과 함께 마곡사의 중심건물이다. 현재 대광보전 내부에는 진리를 상징하는 비로자나불이 모셔져 있으며, 현판에 쓰여진‘大光寶殿’글씨는 조선후기 문인화가인 강세황의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대광보전의 건립 연대는 17세기 후반 만들었을 것으로 추정되며, 「충청우도 공주판지 서령 태화산 마곡사 대광보전 중창기」에 1782년 대화재로 불타 없어진 후 1785년에 다시 만들었다고 전한다.

대광보전은 불상의 위치와 나무를 다듬는 방법이 특이하다. 남향하여 자리한 건물내부의 비로자나 부처님은 건물 서쪽에서 동쪽을 바라보도록 특이하게 모셔져 있다. 불상 뒤로는 석가모니가 제자들에게 설법한 모임을 묘사한 그림인 ‘공주 마곡사 영산회상도’(公州 麻谷寺 靈山會上圖,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91호)와 어려움에 처한 중생을 구제하여 안락함과 기쁨을 준다는 ‘수월백의관음보살도’가 걸려있다.

기둥은 자연목을 다듬지 않고 그대로 사용하였으나, 화려한 조각 장식이 곳곳에 다양하게 설치되어 있다. 나무를 다듬지 않는 방식은 조선 후기의 건축기법이다.

대광보전의 건물 바닥에는 참나무 삿자리가 깔려 있었다. 전설에 따르면 이름을 알 수 없는 앉은뱅이가 비로자나부처님께 100일 동안 정성껏 기도를 드리며 참나무 삿자리를 짰는데, 기도가 끝난 후 부처님의 자비로 자신도 모르게 일어서서 법당 문을 걸어 나갔다고 한다. 현재는 부분이 훼손되어 보존하기 위해 양탄자로 가리워져 있다.

영문

영문 해설 내용

대광보전은 불교의 진리 그 자체인 비로자나불을 모시는 곳으로, 보통 ‘대적광전’이라고 한다. ‘대적광전’은 모든 번뇌를 소멸한 상태에서 나타나는 청정한 지혜의 부처님의 광명이 세상 어디에나 두루 비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마곡사 대광보전은 각순 대사의 주도로 임진왜란 때 사라진 전각들을 다시 세우면서 절의 중창이 이루어졌던 17세기 후반에 처음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지금의 건물은 1782년 마곡사에 큰 불이 났을 때 전소된 것을 제봉 선사의 주도 하에 1785년부터 3년에 걸쳐 다시 만들었다고 한다.

건물은 남향으로 지어졌지만 내부의 불단은 동쪽을 향하고 있으며, 주불인 비로자나불도 동쪽을 바라보도록 모셔져 있다.

불상 뒤에는 석가모니가 제자들에게 설법한 모임을 묘사한 그림인 ‘공주 마곡사 영산회상도’(公州 麻谷寺 靈山會上圖,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91호)와 어려움에 처한 중생을 구제하여 안락함과 기쁨을 준다는 ‘수월백의관음보살도’가 걸려있다.

이 전각에는 100일 동안 기도를 하며 참나무로 돗자리를 짠 앉은뱅이가 기도가 끝난 후에는 걸어서 나갔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현판의 글씨는 조선 후기 문인화가 강세황(1712~1791)이 쓴 것이다.


  • 건물 세워진 시기 -> 실측보고서 및 기존 문안 기준 1785년으로 작성 (마곡사 홈페이지에는 1788년으로 되어 있음 - 단청까지 완료하는데 3년 걸렸다고 함)

(문화재청 : 이 건물은 마곡사의 중심 법당으로 해탈문·천왕문과 일직선으로 놓여 있다. 진리를 상징하는 비로자나불을 모신 건물로 처음 지은 시기는 알 수 없으나 불에 타버렸던 것을 조선 순조 13년(1813)에 다시 지은 것이다. : 근거 알 수 없음.)

참고 자료

  • 공주 마곡사 대웅보전·대광보전 정밀실측조사보고서 상, 문화재청 2012.

-> 주불이 동향으로 배치된 것은 내부 공간을 넓게 활용하기 위해서로 추측된다. / 많은 판재를 사용해야 하는 ‘주장첨자’라는 부재가 사용된 가장 이른 시기의 건물이다.

-> 관련 전설 언급 / 후불탱화 정보 (대광보전의 후불탱화는 영산회상도로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영축산에서 설법하는 장면을 그림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1788년 조성된 이 영산회상도는 석가모니 부처님을 중심으로 6대보살, 10대 제자, 용왕과 용녀, 사천왕으로 구성되어 있지요. 비로자나 부처님 뒷벽에는 18세기 후반 조선회화의 특징을 그대로 살린 백의수월관음도가 봉안되어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