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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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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배반동의 장골 사자사師子寺 터에 무너진 채로 있던 것을 1936년 경주역을 지금의 위치로 이전하면서 그 기념으로 옮겨와 복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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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배반동의 장골 사자사(師子寺) 터에 무너진 채로 있던 것을 1936년 경주역을 지금의 위치로 이전하면서 그 기념으로 옮겨와 복원하였다.  
  
 
2층 바닥돌에 3층으로 몸돌을 올린 신라의 일반적인 석탑 형태이다. 바닥돌 위에 몸돌받침 없이 곧바로 몸돌을 올렸다. 1층 몸돌은 폭에 비해 높이가 높고, 2·3층 몸돌은 폭은 거의 줄지 않은 채 높이만 급격히 줄어 전체적으로 날렵한 형태를 띠고 있다. 꼭대기에는 머리장식 받침돌 위에 그릇모양의 타원형 장식(覆鉢)*을 만들어 올렸다.  
 
2층 바닥돌에 3층으로 몸돌을 올린 신라의 일반적인 석탑 형태이다. 바닥돌 위에 몸돌받침 없이 곧바로 몸돌을 올렸다. 1층 몸돌은 폭에 비해 높이가 높고, 2·3층 몸돌은 폭은 거의 줄지 않은 채 높이만 급격히 줄어 전체적으로 날렵한 형태를 띠고 있다. 꼭대기에는 머리장식 받침돌 위에 그릇모양의 타원형 장식(覆鉢)*을 만들어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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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신라에서 고려로 넘어가는 석탑양식의 변화를 보여주는 탑으로 평가된다.
 
통일신라에서 고려로 넘어가는 석탑양식의 변화를 보여주는 탑으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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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발(覆鉢): 탑의 머리 장식 받침돌露盤 위에 그릇을 엎어 놓은 것처럼 만들어 올린 장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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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발(覆鉢): 탑의 머리 장식 받침돌(露盤) 위에 그릇을 엎어 놓은 것처럼 만들어 올린 장식  
  
 
===영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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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ree-story Stone Pagoda in Hwango-dong, Gyeongju'''
  
 
===영문 해설 내용===
 
===영문 해설 내용===
불탑은 부처의 유골을 모신 조형물이다. 실제 유골이 없는 경우가 많지만, 상징적으로 부처를 모신 신성한 곳으로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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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탑은 부처의 유골을 모신 상징적인 조형물이다. 모든 탑이 진신사리를 모신 것은 아니지만, 부처를 모신 신성한 곳으로 여겨 신앙의 대상이 된다.
 
 
이 삼층석탑은 언제 조성되었는지 알 수 없다.
 
 
 
이 탑은 본래 효공왕릉(孝恭王陵) 부근에 있는 사자사터에 무너진 채로 있었다. 경주역을 지금 위치로 이전하는 것을 기념하여 1936년 광장 한쪽에 옮겨와 복원한 것이다.
 
 
 
기단과 3층의 몸돌과 지붕돌, 머리장식 일부로 이루어져 있다.
 
  
바닥에 2단으로 자리를 만들고 그 위에 4개의 돌을 이용해 조성한 기단을 올렸다. 기단과 몸돌 사이에는 별도의 부재가 없는데, 원래부터 없었던 것인지는 알 수 없다. 기단과 각 층 몸돌에는 모서리 기둥을 새겼고, 지붕돌 아래에는 4단의 받침을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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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삼층석탑은 언제 조성되었는지 알 수 없다. 원래 효공왕릉 부근에 있는 사자사터에 무너진 채로 있었다. 1936년 경주역을 지금 위치로 이전하는 것을 기념하여, 탑의 부재들을 경주역 광장으로 옮겨와 다시 세웠다.
  
탑은 통일신라의 석탑 양식에서 고려 석탑양식으로 변화하는 과도기적 양식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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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은 2층의 기단, 3층의 몸돌과 지붕돌, 머리장식 일부로 이루어져 있다. 1층 몸돌의 높이에 비해 2층부터는 급격히 높이가 낮아져, 전체적으로 날렵한 형태를 띠고 있다. 기단과 몸돌의 모서리에는 기둥 모양을 새겼고, 지붕돌 아래에는 4단의 받침을 두었다.
  
  

2020년 6월 14일 (일) 02:52 판


경주황오동삼층석탑
Three-story Stone Pagoda in Hwango-dong, Gyeongju
경주 황오동 삼층석탑,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경주황오동삼층석탑
영문명칭 Three-story Stone Pagoda in Hwango-dong, Gyeongju
한자 慶州皇吾洞三層石塔
주소 경상북도 경주시 성동동 41-1
지정번호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8호
지정일 1985년 8월 5일
분류 유적건조물/종교신앙/불교/탑
수량/면적 1기
웹사이트 경주 황오동 삼층석탑,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원래 배반동의 장골 사자사(師子寺) 터에 무너진 채로 있던 것을 1936년 경주역을 지금의 위치로 이전하면서 그 기념으로 옮겨와 복원하였다.

2층 바닥돌에 3층으로 몸돌을 올린 신라의 일반적인 석탑 형태이다. 바닥돌 위에 몸돌받침 없이 곧바로 몸돌을 올렸다. 1층 몸돌은 폭에 비해 높이가 높고, 2·3층 몸돌은 폭은 거의 줄지 않은 채 높이만 급격히 줄어 전체적으로 날렵한 형태를 띠고 있다. 꼭대기에는 머리장식 받침돌 위에 그릇모양의 타원형 장식(覆鉢)*을 만들어 올렸다.

통일신라에서 고려로 넘어가는 석탑양식의 변화를 보여주는 탑으로 평가된다.


  • 복발(覆鉢): 탑의 머리 장식 받침돌(露盤) 위에 그릇을 엎어 놓은 것처럼 만들어 올린 장식

영문

Three-story Stone Pagoda in Hwango-dong, Gyeongju

영문 해설 내용

불탑은 부처의 유골을 모신 상징적인 조형물이다. 모든 탑이 진신사리를 모신 것은 아니지만, 부처를 모신 신성한 곳으로 여겨 신앙의 대상이 된다.

이 삼층석탑은 언제 조성되었는지 알 수 없다. 원래 효공왕릉 부근에 있는 사자사터에 무너진 채로 있었다. 1936년 경주역을 지금 위치로 이전하는 것을 기념하여, 탑의 부재들을 경주역 광장으로 옮겨와 다시 세웠다.

탑은 2층의 기단, 3층의 몸돌과 지붕돌, 머리장식 일부로 이루어져 있다. 1층 몸돌의 높이에 비해 2층부터는 급격히 높이가 낮아져, 전체적으로 날렵한 형태를 띠고 있다. 기단과 몸돌의 모서리에는 기둥 모양을 새겼고, 지붕돌 아래에는 4단의 받침을 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