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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룡사지 발굴조사(경주 황룡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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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혜원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20년 6월 20일 (토) 01:04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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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룡사지 발굴조사
Goto.png 종합안내판: 경주 황룡사지



해설문

국문

신라 호국사찰로서 통일의 염원이 담겨 있는 황룡사지를 조사하여 가람배치의 전모를 밝히고, 발견된 자료를 토대로 절터를 정비·보존하여 역사 교육의 장으로 활용한다는 목적으로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가 1976년부터 1983년까지 8년간 발굴조사하였다.

조사를 통해 확인된 절터의 규모는 동서 288m, 남북 281m, 넓이 80,928㎡이다. 창건 후 3번에 걸쳐 큰 변화가 있었다. 마지막 단계의 황룡사는 주요 건물인 남문, 중문, 목탑, 중금당, 강당이 남북으로 일직선상에 놓이고, 중금당의 좌우에 동·서금당을, 목탑 앞 좌우에 종루와 경루를 대칭되게 배치한 형태이다. 동서남쪽의 회랑은 서로 연결되지 않고 독립된 형태로 설치되었다. 조사 과정에서 금동불상, 치미(鴟尾)*를 비롯한 4만여 점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 치미(鴟尾) : 고대의 목조건축에서 용마루의 양 끝에 높게 부착하던 장식기와.

영문

영문 해설 내용

황룡사지에 대한 발굴조사는 1976년부터 1983년까지 총 8년간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에 의해 수행되었다. 발굴조사를 통해, 신라 최대의 사찰이었던 황룡사의 가람 배치를 밝히고, 절터를 정비 및 보존할 방안을 마련하고자 하였다.

조사를 통해 확인된 절터의 규모는 동서 길이 288m, 남북 길이 281m, 넓이 80,928㎡이다. 창건 후 3번에 걸쳐 중창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최종적으로 완성된 가람은 주요 건물인 남문, 중문, 목탑, 금당, 강당이 남북으로 일직선상에 놓이고, 금당의 좌우에 작은 금당을, 목탑 앞 좌우에 각각 종과 경전을 보관하기 위한 누각을 배치한 형태가 되었다. 가람 전체 영역을 둘러싼 담장도 확인되었다.

출토된 유물은 기와와 벽돌, 토기, 자기를 비롯하여 금동불상과 대형 치미 등 4만여 점에 이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