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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룡사지 발굴조사(경주 황룡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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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황룡사지(황룡사지 발굴조사) ,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신라 호국사찰로서 통일의 염원이 담겨 있는 황룡사지를 조사하여 가람배치의 전모를 밝히고, 발견된 자료를 토대로 절터를 정비·보존하여 역사 교육의 장으로 활용한다는 목적으로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가 1976년부터 1983년까지 8년간 발굴조사하였다.

조사를 통해 확인된 절터의 규모는 동서 288m, 남북 281m, 넓이 80,928㎡이다. 창건 후 3번에 걸쳐 큰 변화가 있었다. 마지막 단계의 황룡사는 주요 건물인 남문, 중문, 목탑, 중금당, 강당이 남북으로 일직선상에 놓이고, 중금당의 좌우에 동·서금당을, 목탑 앞 좌우에 종루와 경루를 대칭되게 배치한 형태이다. 동서남쪽의 회랑은 서로 연결되지 않고 독립된 형태로 설치되었다. 조사 과정에서 금동불상, 치미(鴟尾)*를 비롯한 4만여 점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 치미(鴟尾) : 고대의 목조건축에서 용마루의 양 끝에 높게 부착하던 장식기와.

영문

영문 해설 내용

신라 최대의 사찰이었던 황룡사지는 1971년 수립된 <경주관광종합개발계획>에 따른 정비화사업을 계기로 절터 전역에 대한 발굴조사가 이루어졌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가 1983년까지 총 8년간 발굴 조사를 실시하였다.

창건 후 3번에 걸쳐 큰 변화가 있었던 것으로 파악되었으며, 마지막 단계의 황룡사는 주요 건물인 남문, 중문, 목탑, 중금당, 강당이 남북으로 일직선상에 놓이고, 중금당의 좌우에 동·서금당을, 목탑 앞 좌우에 종루와 경루를 대칭되게 배치한 형태이다.

동서남쪽의 회랑은 서로 연결되지 않고 독립된 형태로 설치되었으며, 가람 영역을 구획하는 외곽담장이 확인되었다.

황룡사터에서는 금동불상, 대형 치미(鴟尾)를 비롯한 4만여 점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조사를 통해 확인된 절터의 규모는 동서 288m, 남북 281m, 넓이 80,928㎡이다.

참고 자료

  • 2016년 발굴조사 40주년을 기념하는 국제학술대회가 개최되었다.
  • 최근까지도 복원을 위한 복원조사가 계속 이루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