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화산리 회유토기 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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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화산리 회유토기 요지 Ash-glazed Pottery Kiln Site in Hwasan-ri, Gyeongju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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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경주 화산리 회유토기 요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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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명칭 | Ash-glazed Pottery Kiln Site in Hwasan-ri, Gyeongju |
한자 | 慶州 花山里 灰釉土器 窯址 |
주소 | 경북 경주시 천북면 화산리 942-1번지 |
지정번호 | 사적 제241호 |
지정일 | 1974년 12월 14일 |
분류 | 유적건조물/산업생산/요업/토기가마 |
시대 | 통일신라 |
수량/면적 | 10,800㎡ |
웹사이트 | 경주 화산리 회유토기 요지,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
해설문
국문
요지는 자기나 토기, 기와 등을 굽던 가마터를 말한다. 이곳 가마터 주변에는 버려진 토기 파편들이 많이 흩어져 있고, 재가 쌓여 흑색으로 변한 토층과 붉게 탄 적색토층이 군데군데 확인된다.
발견되는 토기들은 다양한 꽃무늬를 도장처럼 찍어 만든 인화문(印花文) 토기로, 20% 정도가 회색유약을 바른 토기들이다. 토기의 모양은 술잔, 사발, 병 등 여러 종류가 있으며, 대형 항아리와 넓적하고 작은 뚜껑달린 그릇 조각들도 발견된다. 기와·벽돌 조각도 있어서 같이 생산한 듯 하지만, 그 수량은 적은 편이다.
이곳 가마의 사용 시기는 7세기 말부터 9세기 중반 경까지로 보인다. 통일신라 전기에 경주지역에 사용된 토기들이 주로 이 지역에서 만들어졌음을 알 수 있다. 토기의 종류나 형태가 다양하고 화려해서 이때가 인화문 토기의 전성기로 볼 수 있다.
특히 회색유약을 바른 토기들은 발전된 단계의 것으로 우수한 토기제작술을 보여준다. 회색유약 기법이 바탕이 되어 청자(靑瓷)가 만들어지기 때문에 회유토기는 우리나라 도자기 제작기술 발전의 중요한 단계를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