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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정혜사지 십삼층석탑"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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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 해설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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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탑은 통일신라시대인 9세기 무렵에 세워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신라시대에 세워진 탑 중 유일하게 남아 있는 13층탑이다.  
 
이 탑은 통일신라시대인 9세기 무렵에 세워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신라시대에 세워진 탑 중 유일하게 남아 있는 13층탑이다.  
  
흙으로 쌓은 1단의 기단, 13층의 몸돌 및 지붕돌, 머리장식 일부로 구성되어 있다. 1층 몸돌이 크고 높은데 비해, 2층부터는 급격히 작아지는 형태이다. 1층 몸돌 네 모서리에는 사각형의 돌기둥을 세우고, 면마다 문을 만들어 놓았다. 2층 이상은 모두 같은 모양으로, 지붕돌과 윗층 몸돌을 하나의 돌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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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으로 쌓은 1단의 기단, 13층의 몸돌 및 지붕돌, 머리장식 일부로 구성되어 있다. 1층 몸돌이 크고 높은데 비해, 2층부터는 급격히 작아지는 형태이다. 1층 몸돌 네 모서리에는 사각형의 돌기둥을 세우고, 부처의 사리를 안치한 공간이 있다는 의미로 각 면마다 문을 만들어 놓았다. 2층 이상은 모두 같은 모양으로, 지붕돌과 윗층 몸돌을 하나의 돌로 만들었다.
  
  

2020년 6월 13일 (토) 19:11 판


경주 정혜사지 십삼층석탑
Thirteen-story Stone Pagoda at Jeonghyesa Temple Site, Gyeongju
경주 정혜사지 십삼층석탑,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경주 정혜사지 십삼층석탑
영문명칭 Thirteen-story Stone Pagoda at Jeonghyesa Temple Site, Gyeongju
한자 慶州 淨惠寺址 十三層石塔
주소 경상북도 경주시 안강읍 옥산리 1654
지정번호 국보 제40호
지정일 1962년 12월 20일
분류 유적건조물/종교신앙/불교/탑
시대 통일신라
수량/면적 1기
웹사이트 경주 정혜사지 십삼층석탑,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정혜사는 신라 선덕왕(宣德王) 원년(780)에 중국 당나라 사람인 백우경(白宇經)이 망명와서 이곳에 집을 짓고 살다가 후에 절로 고친 것이라 한다.

탑은 1층이 크고 높은데 비해 2층부터 급격히 작아지는 특이한 형태이다. 1층은 장방형으로 다듬은 돌로 네 모서리에 기둥을 세우고 면마다 장방형으로 문 모양을 만들었다. 1층 지붕돌은 넓고 얇은데, 받침부분은 4개, 위쪽은 8개의 돌을 짜 맞추었고 윗면 모서리에는 내림마루(隅棟)*를 새겼다. 2층 이상은 모두 같은 모양으로 크기가 조금씩 다를 뿐이다. 지붕돌과 윗층 몸돌을 한 개의 돌로 만들어 지붕만 겹겹이 쌓인 것처럼 보인다. 꼭대기에는 머리장식 받침돌(露盤)이 남아 있다.

신라 석탑으로서는 유일한 13층탑이며, 장방형 돌을 조립한 1층이나 지붕돌과 몸돌을 한 돌로 만들어 올린 방식 등 일반적인 석탑의 형식에서 벗어난 독특한 예로 희소성을 지닌 귀중한 자료이다.


  • 내림마루(隅棟): 목조 건축에서 지붕의 모서리 부분에 기와를 몇 겹으로 높이 쌓아 솟아 있는 부분.

영문

Thirteen-story Stone Pagoda at Jeonghyesa Temple Site, Gyeongju

영문 해설 내용

불탑은 부처의 유골을 모신 상징적인 조형물이다. 모든 탑이 진신사리를 모신 것은 아니지만, 부처를 모신 신성한 곳으로 여겨 신앙의 대상이 된다.

이 탑은 통일신라시대인 9세기 무렵에 세워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신라시대에 세워진 탑 중 유일하게 남아 있는 13층탑이다.

흙으로 쌓은 1단의 기단, 13층의 몸돌 및 지붕돌, 머리장식 일부로 구성되어 있다. 1층 몸돌이 크고 높은데 비해, 2층부터는 급격히 작아지는 형태이다. 1층 몸돌 네 모서리에는 사각형의 돌기둥을 세우고, 부처의 사리를 안치한 공간이 있다는 의미로 각 면마다 문을 만들어 놓았다. 2층 이상은 모두 같은 모양으로, 지붕돌과 윗층 몸돌을 하나의 돌로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