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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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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월성
Wolseong Palace Site, Gyeongju
경주 월성,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경주 월성
영문명칭 Wolseong Palace Site, Gyeongju
한자 慶州 月城
주소 경북 경주시 인왕동 387-1번지
지정번호 사적 제16호
지정일 1963년 1월 21일
분류 유적건조물/정치국방/성/성곽
시대 신라
수량/면적 201,116㎡
웹사이트 경주 월성,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신라시대 궁궐이 있던 도성으로 성의 모양이 반달 같다고 하여 반월성(半月城) 또는 신월성(新月城)이라고도 하고, 왕이 살고 있다는 뜻에서 재성(在城)이라고도 한다.

성은 바깥 둘레가 2,340m, 넓이는 198,345㎡에 이른다. 동·서·북쪽의 3면과 서남쪽에는 흙과 돌을 함께 다져 성벽을 쌓았고, 문천(蚊川)이 흐르는 남쪽편은 자연 절벽을 성벽으로 이용하였다. 성의 바깥쪽 동·서·북편에는 물이 흐르도록 인공적으로 마련한 방어시설인 해자(垓子)가 있었다. 동쪽으로 동궁과 월지(사적 제18호)와 연결된다. 성 안에 많은 건물지들이 남아있고, 1741년에 월성 서쪽에서 이곳으로 옮겨온 석빙고가 있다.

기록에는 파사니사금 22년(101) 에 성을 쌓고 금성에서 이곳으로 옮겼다고 한다. 성을 쌓기 전에 호공(瓠公)이라는 사람이 이곳에 살았는데 탈해니사금이 어렸을 때 꾀를 내어 이곳을 차지했다고 한다. 남해차차웅이 그 이야기를 듣고 탈해를 사위로 삼았으며, 신라 제4대 왕이 되었다는 전설이 있다.

월성 주변에는 주거지와 고분, 산성 등 많은 유적이 넓게 분포하고 있다. 월성을 중심에 두고 주거구역과 분묘구역이 배치되며 주변에 명활성 같은 대피성*이 설치되었음은 기본적인 도성으로서의 골격이 갖추어졌음을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다.


  • 대피성(待避城) : 평상시에는 성내에 거주하지 않고, 유사시에 입성(入城)하여 항쟁하려고 준비하여 둔 성


영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