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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원원사지 동·서 삼층석탑"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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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6월 5일 (금) 11:24 판


경주 원원사지 동·서 삼층석탑
East and West Three-story Stone Pagodas at Wonwonsa Temple Site, Gyeongju
경주 원원사지 동·서 삼층석탑,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경주 원원사지 동·서 삼층석탑
영문명칭 East and West Three-story Stone Pagodas at Wonwonsa Temple Site, Gyeongju
한자 慶州 遠願寺址 東·西 三層石塔
주소 경북 경주시 외동읍 모화리 산12-3번지
지정번호 보물 제1429호
지정일 2005년 4월 7일
분류 유적건조물/종교신앙/불교/탑
시대 통일신라
수량/면적 2기
웹사이트 경주 원원사지 동·서 삼층석탑,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원원사는 밀교의 한 종파인 신인종(神印宗)을 신라에 들여온 명랑(明朗)의 후계자인 안혜(安惠), 낭융(朗融) 등 승려들과 김유신, 김의원(金義元), 김술종(金述宗) 등 당시 주요 인물들이 힘을 모아 나라를 지키기 위해 세운 호국사찰(護國寺刹)*이다.

두 석탑은 금당 터 앞에 무너져 있던 것을 1931년 가을 경주고적보존회가 복원한 것이다. 복원에 따른 차이가 있지만 같은 형식의 탑이다. 두 탑 모두 2층 바닥돌 네 면에 십이지신상(十二支神像)을, 1층 몸돌 네 면에 사천왕상(四天王像)을 새겼다. 십이지신상은 연꽃 위에 앉아 평복을 입고 손을 모은 자세로, 북면 중앙의 쥐(子)부터 시계방향으로 한 면에 3구씩 새겼다. 사천왕상은 동탑의 남방의 증장천왕이 하체 일부만 남았고, 서탑의 남방의 증장천왕은 없어졌다.

신라의 일반적인 양식의 석탑 가운데 부조상을 새긴 가장 이른 시기의 예로 알려져 있다.


  • 호국사찰(護國寺刹) : 부처의 공덕으로 나라의 안녕과 발전을 기원하고자 건립한 사찰. 또는 그런 역할을 하는 사찰.

영문

영문 해설 내용

불탑은 부처의 유골을 모신 조형물이다. 실제 유골이 없는 경우가 많지만, 상징적으로 부처를 모신 신성한 곳으로 여겨진다.

두 석탑은 8세기 중엽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금당 터 앞에 무너져 있던 것을 1931년 가을 경주고적보존회가 복원하였다.

두 탑 모두 2층의 기단, 3층의 몸돌과 지붕돌, 머리장식 일부로 이루어져 있으며, 동일한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윗층 기단의 각 면에 새겨진 기둥 사이에는 십이지신상이 조각되어 있다. 북쪽 중앙의 쥐(子)부터 시계방향으로 한 면에 3구씩 배치된 십이지신상은 머리는 짐승이지만 몸은 사람의 모습으로, 옷을 입고 손을 모은 자세로 연꽃 위에 앉아있다.

1층 몸돌 각 면에는 사천왕상을 각각 새겼는데, 동탑 남쪽은 하체 일부만 남아있고 서탑 남쪽의 조각은 사라졌다.

두 탑은 기단에 부조상을 새긴 가장 이른 시기의 예로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