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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삼층석탑은 통일신라시기인 8세기 중엽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 삼층석탑은 통일신라시기인 8세기 중엽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2단의 기단, 3층의 몸돌 및 지붕돌, 머리장식 일부로 구성되어 있다. 기단에는 모서리와 가운데에 기둥 모양을 새겼다. 몸돌과 지붕돌은 각각 하나의 돌로 만들어졌다. 각 층 몸돌에는 모서리 기둥을 새겼고, 지붕돌은 밑면에 5단 받침을 두었다. 지붕돌 처마 끝에는 풍경을 달았던 구멍이 남아 있다. 머리장식이 모두 없어진 상태였으나, 2005년 인근의 한 초등학교에서 일부가 발견되어 원래의 위치에 올려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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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단의 기단, 3층의 몸돌 및 지붕돌, 머리장식 일부로 구성되어 있다. 기단에는 모서리와 가운데에 기둥 모양을 새겼다. 몸돌과 지붕돌은 각각 하나의 돌로 만들어졌다. 각 층 몸돌에는 모서리에 기둥 모양을 새겼고, 지붕돌은 밑면에 5단 받침을 두었다. 지붕돌 처마 끝에는 풍경을 달았던 구멍이 남아 있다. 머리장식이 모두 없어진 상태였으나, 2005년 인근의 한 초등학교에서 일부가 발견되어 원래의 위치에 올려놓았다.  
  
 
1943년 해체, 수리할 때 몸돌 안에서 청동불상 1구가 발견되었다.
 
1943년 해체, 수리할 때 몸돌 안에서 청동불상 1구가 발견되었다.

2020년 6월 14일 (일) 03:52 판


경주 용명리 삼층석탑
Three-story Stone Pagoda in Yongmyeong-ri, Gyeongju
경주 용명리 삼층석탑,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경주 용명리 삼층석탑
영문명칭 Three-story Stone Pagoda in Yongmyeong-ri, Gyeongju
한자 慶州 龍明里 三層石塔
주소 경상북도 경주시 건천읍 용명리 856-7
지정번호 보물 제908호
지정일 1987년 3월 9일
분류 유적건조물/종교신앙/불교/탑
시대 통일신라
수량/면적 1기
웹사이트 경주 용명리 삼층석탑,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탑 주변은 일찍이 민가가 들어서 절의 흔적은 찾을 수 없다. 마을의 옛 이름이 명장리(明莊里)였기 때문에 ‘명장리 삼층석탑’으로 불려 왔다.

탑은 2층으로 된 바닥돌에 3층으로 몸돌을 올린 일반적인 신라석탑 형식이다. 바닥돌은 아래, 위층 모두 모서리 기둥과 2개의 안기둥을 새겼다. 몸돌과 지붕돌을 각각 한 돌로 만들었다. 지붕돌은 아래 받침이 모두 5단이고 처마 모서리를 가볍게 치켜 올렸고 풍경(風磬)*을 달았던 구멍이 남아 있다. 머리장식은 없어진 상태였으나 2005년 건천초등학교에 있던 받침돌(露盤)을 옮겨와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하였다.

1943년 해체, 수리할 때 청동불상 1구가 발견되었다고 한다. 탑 외형은 단순하지만 8세기 신라석탑의 반듯함을 보여주는 우수한 작품이다.


  • 풍경(風磬): 처마 끝에 다는 작은 종. 속에 쇳조각을 달아놓아 바람이 부는 대로 흔들리면서 소리가 난다.

영문

Three-story Stone Pagoda in Yongmyeong-ri, Gyeongju

영문 해설 내용

불탑은 부처의 유골을 모신 상징적인 조형물이다. 모든 탑이 진신사리를 모신 것은 아니지만, 부처를 모신 신성한 곳으로 여겨 신앙의 대상이 된다.

이 삼층석탑은 통일신라시기인 8세기 중엽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2단의 기단, 3층의 몸돌 및 지붕돌, 머리장식 일부로 구성되어 있다. 기단에는 모서리와 가운데에 기둥 모양을 새겼다. 몸돌과 지붕돌은 각각 하나의 돌로 만들어졌다. 각 층 몸돌에는 모서리에 기둥 모양을 새겼고, 지붕돌은 밑면에 5단 받침을 두었다. 지붕돌 처마 끝에는 풍경을 달았던 구멍이 남아 있다. 머리장식이 모두 없어진 상태였으나, 2005년 인근의 한 초등학교에서 일부가 발견되어 원래의 위치에 올려놓았다.

1943년 해체, 수리할 때 몸돌 안에서 청동불상 1구가 발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