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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무장사지 삼층석탑"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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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 해설 내용)
(영문 해설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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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은 2층으로 된 기단, 3층의 몸돌과 지붕돌, 머리장식 일부로 구성되어 있다.
 
탑은 2층으로 된 기단, 3층의 몸돌과 지붕돌, 머리장식 일부로 구성되어 있다.
  
아래층 기단의 각 면에는 모서리 기둥과 2개의 안기둥을 새겼고, 위층 기단의 각 면에는 안상 2개씩을 조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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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층 기단의 각 면에는 안상 2개씩을 조각하였다. 각 층 몸돌에는 모서리 기둥을 새겼고, 지붕돌 밑면에는 5단의 받침을 두었다.
 
 
각 층 몸돌에는 모서리 기둥을 새겼고, 지붕돌 밑면에는 5단의 받침을 두었다.
 
  
 
머리 장식은 남아있지 않았는데, 1963년 복원하면서 일부를 보충해 현재의 모습이 되었다.
 
머리 장식은 남아있지 않았는데, 1963년 복원하면서 일부를 보충해 현재의 모습이 되었다.

2020년 6월 5일 (금) 10:40 판


경주 무장사지 삼층석탑
Three-story Stone Pagoda at Mujangsa Temple Site, Gyeongju
경주 무장사지 삼층석탑,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경주 무장사지 삼층석탑
영문명칭 Three-story Stone Pagoda at Mujangsa Temple Site, Gyeongju
한자 慶州 鍪藏寺址 三層石塔
주소 경북 경주시 암곡동 산1-7번지
지정번호 보물 제126호
지정일 1963년 1월 21일
분류 유적건조물/종교신앙/불교/탑
시대 통일신라
수량/면적 1기
웹사이트 경주 무장사지 삼층석탑,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태종 무열왕이 삼국을 통일한 후 무기와 투구를 이 골짜기에 감추었기 때문에 무장사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석탑은 2단 바닥돌과 3층의 몸돌로 구성된 신라시대 일반적인 형태이다. 위층 바닥돌은 기둥모양 대신 면 마다 2개씩 안상(眼象)*을 새겨 넣었다. 몸돌과 지붕돌은 각각 하나의 돌로 되어 있으며, 2층부터 높이가 급격하게 낮아진다. 머리 장식부는 모두 없어졌던 것을 1963년 복원하면서 머리장식 받침돌(露盤)과 보주(寶珠)를 보충해 넣었다.

『삼국유사』에는 원성왕의 아버지 효양이 그의 숙부를 추모하기 위해 무장사를 세웠으며, 소성왕의 왕비인 계화왕후(桂花王后)가 먼저 승하한 남편의 명복을 빌기 위해 아미타전을 세웠다고 한다. 이 탑도 절을 지었던 9세기 초반경에 건립되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 안상(眼象) : 코끼리 눈을 형상화하여 석탑이나 석등 등에 장식으로 새긴 문양이라고 하나 사실은 네면에 기둥을 새긴 것을 말한다.

영문

영문 해설 내용

불탑은 부처의 유골을 모신 조형물이다. 실제 유골이 없는 경우가 많지만, 상징적으로 부처를 모신 신성한 곳으로 여겨진다.

이 삼층석탑은 9세기 초반 이곳에 무장사라는 절을 세울 때 함께 조성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탑은 2층으로 된 기단, 3층의 몸돌과 지붕돌, 머리장식 일부로 구성되어 있다.

위층 기단의 각 면에는 안상 2개씩을 조각하였다. 각 층 몸돌에는 모서리 기둥을 새겼고, 지붕돌 밑면에는 5단의 받침을 두었다.

머리 장식은 남아있지 않았는데, 1963년 복원하면서 일부를 보충해 현재의 모습이 되었다.

무장사는 통일신라 원성왕의 아버지 효양이 그의 숙부를 추모하기 위해 세운 절이라고 전한다. 문무왕이 삼국을 통일한 후 무기와 투구를 이 골짜기에 감추었기 때문에 붙인 이름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