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행중

"경주 남산 용장사곡 석조여래좌상"의 두 판 사이의 차이

HeritageWiki
이동: 둘러보기, 검색
(새 문서: {{진행중}} {{문화유산정보 |사진=경주남산용장사곡석조여래좌상.jpg |사진출처=[http://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ccbaCpno=1123701870000...)
 
30번째 줄: 30번째 줄:
  
 
===영문===
 
===영문===
 
+
'''Stone Seated Buddha in Yongjangsagok Valley of Namsan Mountain, Gyeongju'''
  
 
===영문 해설 내용===
 
===영문 해설 내용===
이 불상은 통일신라시대인 8세기 중엽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
이 불상은 통일신라시대인 8세기 중엽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비록 머리는 사라졌지만 우수한 조각 기법을 보이는 작품이며, 자연 암반 위에 원반 모양의 돌을 층층이 쌓아 대좌로 사용한 형태는 한국 석불에서는 보기 드문 사례이다. 왼쪽 어깨 위에는 옷을 고정하는 끈과 매듭이 새겨져 있고, 무릎 아래로 흘러내린 옷자락에는 주름이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불상의 머리는 사라졌지만 손과 몸의 일부가 남아있고, 불상이 앉아있는 받침의 형태가 독특하다.
 
 
 
손 모양은 왼손은 손바닥을 아래로 하여 왼쪽 무릎 위에, 오른손은 손바닥을 위로 향하게 하여 다리 위에 두어 일반적인 손 위치와는 반대로 되어 있다.
 
 
 
왼쪽 어깨 위에 옷을 고정하는 끈과 매듭이 새겨져 있고, 무릎 아래로 흘러내리는 옷주름을 사실적으로 표현하였다.
 
 
 
불상의 받침은 자연 암반 위에 원반 모양의 돌을 3층으로 쌓아 올린 형태이며, 윗단에 연꽃무늬를 새겼다.
 
  
용장사터를 내려다보는 곳에 위치하고 있는 이 석불 주변에서는 1920년 '용장사'라는 글자가 새겨진 기와가 발견되었다.  
+
이 불상은 당시 신라에서도 손꼽히는 큰 사찰이었던 용장사의 옛터를 내려다보는 곳에 위치해 있다. 이 석불 주변에서도 1920년 '용장사'라는 글자가 새겨진 기와가 발견되어, 이 석불도 사찰 영역에 포함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용장사는 『삼국유사』에 등장하는 승려 대현(大賢)이 머물렀다고 하는 절로, 대현이 주위를 돌면 그를 따라 얼굴을 돌리는 미륵장육상이 있었다고 전한다.
+
『삼국유사』에 따르면, 경덕왕(재위 742-765) 때 승려 대현이 용장사에 살았으며, 용장사에는 돌로 만든 약 4.8m 높이의 석불이 있었다고 한다.
  
  
53번째 줄: 45번째 줄:
 
[[분류:보물]]
 
[[분류:보물]]
 
[[분류:불상]]
 
[[분류:불상]]
 +
[[분류:2020 영문집필]]

2020년 7월 4일 (토) 02:26 판


경주 남산 용장사곡 석조여래좌상
Stone Seated Buddha in Yongjangsagok Valley of Namsan Mountain, Gyeongju
경주 남산 용장사곡 석조여래좌상,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경주 남산 용장사곡 석조여래좌상
영문명칭 Stone Seated Buddha in Yongjangsagok Valley of Namsan Mountain, Gyeongju
한자 慶州 南山 茸長寺谷 石造如來坐像
주소 경북 경주시 내남면 용장리 산1-1번지
지정번호 보물 제187호
지정일 1963년 1월 21일
분류 유물/불교조각/석조/불상
시대 통일신라
수량/면적 1구
웹사이트 경주 남산 용장사곡 석조여래좌상,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이 석불은 조각도 우수하지만 불상의 받침(臺座)이 특이한 석불이다.

자연 암반 위에 원반 모양의 돌을 층층이 쌓아 올린 형태로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드문 예이다. 그 위에 앉은 불상은 머리를 잃었지만, 왼쪽 어깨 위에 가사(袈裟), 부처의 옷를 고정하는 끈과 매듭이 새겨져 있다. 옷자락이 무릎 아래로 흘러 대좌를 덮고 있다. 손 모양은 일반적인 손 위치와는 반대로 왼손은 손바닥을 아래로 하여 왼 무릎 위에, 오른손은 손바닥을 위로 향하게 하여 다리 위에 두었다.

1920년 용장사라 새긴 기와가 발견되었다. 『삼국유사』에 “경덕왕(742~765) 재위 시기의 승려 대현(大賢 혹은 太賢)이 용장사에 살았다. 절에는 돌로 만든 미륵장육상(彌勒丈六像), 1장(丈) 6척(尺) 크기의 상, 약 4.8m이 있었다. 대현이 항상 이 장육상을 돌면 장육상도 역시 대현을 따라 얼굴을 돌렸다”는 기록이 있다.

영문

Stone Seated Buddha in Yongjangsagok Valley of Namsan Mountain, Gyeongju

영문 해설 내용

이 불상은 통일신라시대인 8세기 중엽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비록 머리는 사라졌지만 우수한 조각 기법을 보이는 작품이며, 자연 암반 위에 원반 모양의 돌을 층층이 쌓아 대좌로 사용한 형태는 한국 석불에서는 보기 드문 사례이다. 왼쪽 어깨 위에는 옷을 고정하는 끈과 매듭이 새겨져 있고, 무릎 아래로 흘러내린 옷자락에는 주름이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이 불상은 당시 신라에서도 손꼽히는 큰 사찰이었던 용장사의 옛터를 내려다보는 곳에 위치해 있다. 이 석불 주변에서도 1920년 '용장사'라는 글자가 새겨진 기와가 발견되어, 이 석불도 사찰 영역에 포함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경덕왕(재위 742-765) 때 승려 대현이 용장사에 살았으며, 용장사에는 돌로 만든 약 4.8m 높이의 석불이 있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