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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남산 국사곡 제4사지 삼층석탑"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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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 해설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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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삼층석탑은 9세기 중반 이후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 삼층석탑은 9세기 중반 이후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에서 탑이 자리한 절터를 발굴조사하면서 주변에 흩어져있던 부재를 수습하였고, 이를 바탕으로 2002년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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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에서 탑이 자리한 절터를 발굴조사하면서 주변에 흩어져있던 부재를 수습하였고, 2002년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하였다.  
  
 
단층의 기단과 3층의 몸돌 및 지붕돌, 머리장식 일부로 구성되어 있다.
 
단층의 기단과 3층의 몸돌 및 지붕돌, 머리장식 일부로 구성되어 있다.

2020년 6월 6일 (토) 00:58 판


경주남산 국사곡 제4사지 삼층석탑
경주 남산 국사곡 제4사지 삼층석탑,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경주남산 국사곡 제4사지 삼층석탑
한자 慶州南山 國師谷 第4寺址 三層石塔
주소 경상북도 경주시 남산동 산 37-1
지정번호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447호
지정일 2012년 10월 22일
분류 유적건조물/종교신앙/불교/탑
수량/면적 1기
웹사이트 경주 남산 국사곡 제4사지 삼층석탑,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경주 남산 국사곡 제4사지 삼층석탑

이 탑은 금오산 고깔바위 아래 해발 약 230m 지점의 능선에 있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가 절터를 발굴조사한 후 2001년 말에 현재와 같은 모습으로 복원하였다. 삼층석탑이 절터의 가장 높은 곳이다.

탑 주변으로 탑구(塔區)*가 마련되어 있다. 바닥돌은 모서리 기둥과 면마다 1개씩 안기둥이 있는데, 안기둥은 다른 돌을 다듬어 끼워 넣은 독특한 방식이다. 몸돌과 지붕돌이 각각 한 돌로 되어있고, 몸돌은 모두 모서리에 기둥모양을 새겼다. 지붕돌은 3층 모두 아래 받침이 4단이고 지붕 경사는 완만한데 처마 모서리를 치켜 올렸다. 머리장식부는 받침돌(露盤)을 새로 복원해 올렸다.

바닥돌과 1층 몸돌 받침 등 복원한 부분이 있으나 전체적인 형태를 유지하고 있고, 경주 남산에 유행했던 단층기단 석탑의 작품으로 귀중한 예에 속한다.


  • 탑구 : 탑과 주변의 경계돌.


경주 남산 국사곡 제4사지 삼층석탑 주변 석조유물

2002년 삼층석탑을 복원하면서 석탑 주변에 흩어져 있던 석조물 5점을 모아 놓았다. 통일신라시대의 각각 다른 양식으로 조성된 2기의 불상대좌와 건물의 초석으로 추정된다. 유물의 망실과 훼손을 방지하고 보존하기 위하여 2013년 4월 현 위치에 받침대를 설치하고 정리하여 놓았다.

영문

영문 해설 내용

경주 남산 국사곡 제4사지 삼층석탑

불탑은 부처의 유골을 모신 조형물이다. 실제 유골이 없는 경우가 많지만, 상징적으로 부처를 모신 신성한 곳으로 여겨진다.

이 삼층석탑은 9세기 중반 이후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에서 탑이 자리한 절터를 발굴조사하면서 주변에 흩어져있던 부재를 수습하였고, 2002년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하였다.

단층의 기단과 3층의 몸돌 및 지붕돌, 머리장식 일부로 구성되어 있다.

기단에는 모서리 기둥을 새겼고, 각 면에 다른 소재의 돌을 다듬어 끼워 넣는 독특한 방식으로 설치된 안기둥 1개씩을 두었다.

몸돌 각 층에도 모서리 기둥을 새겼으며, 3층 몸돌에 사리함을 봉안하기 위한 사리공이 있었던 것으로 확인되었다. 아래에 4단의 받침을 둔 지붕돌 처마에는 풍경을 달기 위한 구멍이 남아있다. 머리장식 일부는 복원하면서 새로 만들어 올린 것이다.

이 탑은 5개소의 건물지가 확인된 이곳 절터의 가장 높은 곳인 금오산 고깔바위 아래 해발 약 230m 지점의 능선에 자리하고 있다.


경주 남산 국사곡 제4사지 삼층석탑 주변 석조유물

2002년 삼층석탑 복원 당시 주변에 흩어져 있던 석조물들이다.

먼저 불상의 받침돌인 대좌였던 것으로 보이는 석조물들이 있다. 팔각대좌는 두 조각으로 파손되어 있고, 연화대좌는 절반 정도만 남아있다. 양식은 다르지만 모두 통일신라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나머지 석조물들은 건물의 초석으로 추정하나, 조성 시기 및 용도는 확실히 알 수 없다.

유물의 훼손을 방지하기 위하여 2013년에 현 위치에 받침대를 설치하고 정리하여 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