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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6월 4일 (목) 01:30 판


경주 감은사지 동·서 삼층석탑
East and West Three-story Stone Pagodas at Gameunsa Temple Site, Gyeongju
경주 감은사지 동·서 삼층석탑,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경주 감은사지 동·서 삼층석탑
영문명칭 East and West Three-story Stone Pagodas at Gameunsa Temple Site, Gyeongju
한자 慶州 感恩寺址 東·西 三層石塔
주소 경상북도 경주시 양북면 용당리 55-8
지정번호 국보 제112호
지정일 1962년 12월 20일
분류 유적건조물/종교신앙/불교/탑
시대 통일신라
수량/면적 2기
웹사이트 경주 감은사지 동·서 삼층석탑,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감은사터 금당지 앞에 있는 쌍탑이다. 신문왕 2년(682)에 세워진 감은사는 삼국통일 후 나타나는 신라 쌍탑 가람배치의 첫 사례로, 두 탑은 이후 조성되는 신라석탑에 양식적 토대를 제공하여 한국 석탑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다.

두 탑은 조립한 방식이나 사용된 석재의 수는 같지만, 동탑이 서탑에 비해 부재들이 조금씩 크다. 3층만 한 돌로 되어 있고 나머지는 여러 돌을 짜 맞춘 방식이다. 돌과 돌을 고정하기 위해 쇠로 만든 은장*을 곳곳에 사용하였다. 탑 꼭대기에는 머리장식을 받치던 네모난 받침돌과 함께 쇠기둥(擦柱)이 남아 있다.

1959년과 1996년에 서탑과 동탑을 각각 해체·수리하였다. 이때 두 탑 모두 3층 몸돌 윗부분에서 사리장엄구(舍利莊嚴具)*가 발견되었다. 외함과 내함으로 이루어진 사리장치는 신라의 정교한 금속공예술을 보여주는 작품으로 평가된다.


  • 은장(隱장): 석재를 연결했던 금속 고리
  • 사리장엄구(舍利莊嚴具): 사리를 불탑에 안치할 때 사용하는 용기나 함께 봉안되는 공양물을 통틀어서 가리키는 말(서탑 사리장엄구 보물 제366호, 동탑 사리장엄구 보물 제1359호)

영문

영문 해설 내용

불탑은 부처의 유골을 모신 조형물이다. 실제 유골이 없는 경우가 많지만, 상징적으로 부처를 모신 신성한 곳으로 여겨진다.

이곳에 서 있는 두 개의 탑은 감은사가 창건되었던 682년에 함께 조성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두 탑은 모두 2단의 기단, 3층의 탑신과 지붕돌, 머리장식 일부로 구성되어 있다.

윗층 기단에는 모서리 기둥과 2개의 안기둥이, 각 층의 몸돌에는 모서리 기둥이 새겨져 있다. 두 탑 모두 3층을 제외한 다른 부분들이 여러 개의 석재들을 연결하여 조립한 방식으로 만들어졌고, 돌과 돌을 고정하기 위해 쇠로 만든 금속 고리를 사용하였다. 사용된 석재의 수는 같지만, 동탑의 부재들이 조금씩 크다.

1959년에 서탑을, 1996년 동탑을 각각 해체하여 보수하였으며, 보수 과정에서 각 탑의 3층 몸돌 윗부분에서 외함과 내함으로 이루어진 사리장엄구(舍利莊嚴具)가 발견되었다.

이 탑들은 신라의 삼국통일 후 나타나는 신라 쌍탑 가람배치의 첫 사례라 할 수 있으며, 이후 조성되는 신라석탑에 양식적 토대를 제공하는 대표적인 석탑들이다. 경주에 있는 삼층석탑 중 가장 거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