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복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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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사지
Gyeongboksa Temple Site
완주 경복사지, 종파 성격 최초 확인”, 투데이안, 2017.12.14.
대표명칭 경복사지
영문명칭 Gyeongboksa Temple Site
한자 景福寺址
주소 전라북도 완주군 구이면 평촌리 1번지 외
지정번호 시도기념물 제108호
지정일 2000년 11월 17일
분류 유적건조물/종교신앙/불교/사찰
수량/면적 일원
웹사이트 경복사지,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경복사는 고구려 승려 보덕(普德)이 반룡사(盤龍寺)에서 옮겨와 지은 사찰로 현재는 터만 남아 있어 경복사지라고 부른다. 『삼국유사』에 “고구려 보장왕이 도교를 받들어 보덕이 암자를 옮겼다.”라는 기록과 출토 된 기와 조각의 명문이 발견되어 경복사 자리임을 뒷받침 해준다.

사찰을 옮길 때 보덕이 도력으로 방장*을 공중으로 날려 남쪽 완산주 고대산으로 옮겼다고 하여 비래방장(飛來方丈)라 불리기도 한다. 발굴조사결과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에 해당하는 건물의 흔적과 유물이 확인되었다. 특히 출토된 명문와(銘文瓦)*를 통해 한국불교 종파의 시대적 변화를 이해하는데 학술적 가치를 인정받아 전라북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 [불교] 화상(和尙), 국사(國師) 등의 고승(高僧)이 거처하는 처소
  • 명문와 : 글이 기록된 기와

영문

Gyeongboksa Temple Site

This is the former site of Gyeongboksa Temple founded in 650 by Bodeok, a renowned Buddhist monk from the Goguryeo kingdom (37 BCE–668 CE).

According to Memorabilia of the Three Kingdoms (Samguk yusa), Bodeok was residing at Ballyongsa Temple located in today’s Pyeongannam-do Province of North Korea. As the last king of Goguryeo, King Bojang (r. 642-668) started following Daoism instead of Buddhism. Worried about the country’s future, Bodeok tried to warn the king on several occasions. However, when the king did not accept his advice, Bodeok used his supernatural power to move his temple all the way to the Baekje kingdom just in one day and founded a new temple under the name Gyeongboksa.

Records show the temple was still in use until the late 18th century, but it is unknown what happened to the temple after this time. Through a series of excavations carried out since 2016, the sites of several buildings, remains of a well, as well as different artifacts, including roof tile shards bearing an inscription with the name of the temple were discovered.

영문 해설 내용

이곳은 고구려의 승려 보덕이 650년에 창건한 경복사의 옛터이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보덕은 오늘날의 평안남도 지역에 있던 사찰인 반룡사에 있었다. 고구려의 마지막 왕인 보장왕(재위 642-668)이 도교를 숭상하고 불교를 따르지 않자, 보덕은 국운이 위태롭게 될 것을 걱정하여 여러 차례 왕에게 간언하였다. 그러나 왕이 이를 듣지 않자 보덕은 신통력을 발휘하여 하룻밤 사이에 절을 백제 지역으로 옮기고 경복사를 창건하였다고 한다.

기록에 따르면 이 사찰은 18세기 말까지도 존속하였지만, 언제 폐사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2016년부터 실시된 발굴조사를 통해 건물지와 우물지 등의 유구가 확인되었고, ‘경복사’라는 글자가 새겨진 기와 조각을 비롯하여 다양한 유물이 출토되었다.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