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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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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량성이 위치한 곳은 고려시대 거제도와 육지를 연결하는 역으로 대개 30리마다 두었음)이 있었던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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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량성이 위치한 곳은 고려시대 거제도와 육지를 연결하는 역(대개 30리마다 두었음)이 있었던 곳이다.
  
 
이 역은 고려 말에 폐지되고 고성의 송도역에 합해졌다가 조선 세종 7년(1425)에 다시 설치되었다. 조선시대 연산군 6년(1500)에는 역을 왜적으로부터 보호하고자 작은 규모의 성인 보(堡)를 석축으로 쌓은 것이 오늘날의 오양성이다. 규모는 둘레 1,150m, 성벽 너비 4.5m, 잔존 높이 4m정도이다. 동·서·남·북 사방에 성문을 두었으며, 네모진 성벽의 모퉁이와 성문 주변에는 성벽에 붙은 적을 공격하기 위하여 성벽을 사각형으로 돌출되게 쌓은 치성(雉城)이 8곳에 설치되었다. 성벽은 아래에 받침돌을 놓고 안쪽으로 약간 들여서 큰 돌을 세워쌓은 후, 그 위로 작은 돌을 눕혀쌓는 조선 전기 읍성의 형태로 쌓았다. 성 밖에는 하천을 이용하거나 도랑을 파 적이 쉽게 접근하지 못하게 하는 해자〔海子〕를 설치하였다.
 
이 역은 고려 말에 폐지되고 고성의 송도역에 합해졌다가 조선 세종 7년(1425)에 다시 설치되었다. 조선시대 연산군 6년(1500)에는 역을 왜적으로부터 보호하고자 작은 규모의 성인 보(堡)를 석축으로 쌓은 것이 오늘날의 오양성이다. 규모는 둘레 1,150m, 성벽 너비 4.5m, 잔존 높이 4m정도이다. 동·서·남·북 사방에 성문을 두었으며, 네모진 성벽의 모퉁이와 성문 주변에는 성벽에 붙은 적을 공격하기 위하여 성벽을 사각형으로 돌출되게 쌓은 치성(雉城)이 8곳에 설치되었다. 성벽은 아래에 받침돌을 놓고 안쪽으로 약간 들여서 큰 돌을 세워쌓은 후, 그 위로 작은 돌을 눕혀쌓는 조선 전기 읍성의 형태로 쌓았다. 성 밖에는 하천을 이용하거나 도랑을 파 적이 쉽게 접근하지 못하게 하는 해자〔海子〕를 설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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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驛) : 중앙관아의 공문을 지방관아에 전달하며 외국사신의 왕래, 벼슬아치의 여행과 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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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驛) : 중앙관아의 공문을 지방관아에 전달하며 외국사신의 왕래, 벼슬아치의 여행과 부임 때 말을 공급하던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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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는 원래 고려시대에 거제도와 육지를 연결하는 역이 설치되어 있었다. 이 역은 고려 말에 폐지되었다가 1425년에 다시 설치되었고, 역을 왜적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오량성을 쌓았다.  
 
이곳에는 원래 고려시대에 거제도와 육지를 연결하는 역이 설치되어 있었다. 이 역은 고려 말에 폐지되었다가 1425년에 다시 설치되었고, 역을 왜적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오량성을 쌓았다.  
  
사방에 성문을 두었으며 성벽 모퉁이와 성문 주변 8곳에는 치성을 설치해서 적을 옆에서 공격할 수 있도록 했다. 성 밖에는 해자를 설치하여 적이 쉽게 접근하지 못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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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방에 성문을 두었으며 성벽 모퉁이와 성문 주변 8곳에는 치성을 설치해서 성벽을 측면에서 방어할 수 있도록 했다. 성 밖에는 해자를 설치하여 적이 쉽게 접근하지 못하게 했다.  
  
 
규모는 둘레 1.1km, 성벽 너비 4.5m, 잔존 높이 4m정도이다.
 
규모는 둘레 1.1km, 성벽 너비 4.5m, 잔존 높이 4m정도이다.

2019년 8월 16일 (금) 02:14 기준 최신판

거제 오량성
Oryangseong Fortress, Geoje
"거제 오량성",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거제 오량성
영문명칭 Oryangseong Fortress, Geoje
한자 巨濟 烏良城
주소 경상남도 거제시 사등면 오량리 1300-6
지정번호 경상남도 기념물 제109호
지정일 1991.12.23
분류 유적건조물 / 정치국방 / 성 / 성곽
관리자 거제시
수량/면적 45,632㎡
웹사이트 "거제 오량성",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오량성이 위치한 곳은 고려시대 거제도와 육지를 연결하는 역(대개 30리마다 두었음)이 있었던 곳이다.

이 역은 고려 말에 폐지되고 고성의 송도역에 합해졌다가 조선 세종 7년(1425)에 다시 설치되었다. 조선시대 연산군 6년(1500)에는 역을 왜적으로부터 보호하고자 작은 규모의 성인 보(堡)를 석축으로 쌓은 것이 오늘날의 오양성이다. 규모는 둘레 1,150m, 성벽 너비 4.5m, 잔존 높이 4m정도이다. 동·서·남·북 사방에 성문을 두었으며, 네모진 성벽의 모퉁이와 성문 주변에는 성벽에 붙은 적을 공격하기 위하여 성벽을 사각형으로 돌출되게 쌓은 치성(雉城)이 8곳에 설치되었다. 성벽은 아래에 받침돌을 놓고 안쪽으로 약간 들여서 큰 돌을 세워쌓은 후, 그 위로 작은 돌을 눕혀쌓는 조선 전기 읍성의 형태로 쌓았다. 성 밖에는 하천을 이용하거나 도랑을 파 적이 쉽게 접근하지 못하게 하는 해자〔海子〕를 설치하였다.


  • 역(驛) : 중앙관아의 공문을 지방관아에 전달하며 외국사신의 왕래, 벼슬아치의 여행과 부임 때 말을 공급하던 곳

영문

Oryangseong is a stone fortress constructed in 1500 during the Joseon period (1392-1910).

During the Goryeo period (918-1392), a post station was installed in this area to relay Geojedo Island and the mainland. The post station was shut down at the end of the Goryeo period and was reinstalled in 1425. This fortress was constructed afterwards to protect the post station against Japanese invaders.

The fortress had four main gates at each direction. A total of eight bastions were built at each corner of fortress and near the main gates to facilitate defense from the side. The entire fortress was encircled with a moat to prevent enemy access.

The fortress walls measure about 1.1 km in perimeter, 4.5 m in width, and 4 m in height.

영문 해설 내용

오량성은 조선시대인 1500년에 돌로 쌓아 만든 성이다.

이곳에는 원래 고려시대에 거제도와 육지를 연결하는 역이 설치되어 있었다. 이 역은 고려 말에 폐지되었다가 1425년에 다시 설치되었고, 역을 왜적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오량성을 쌓았다.

사방에 성문을 두었으며 성벽 모퉁이와 성문 주변 8곳에는 치성을 설치해서 성벽을 측면에서 방어할 수 있도록 했다. 성 밖에는 해자를 설치하여 적이 쉽게 접근하지 못하게 했다.

규모는 둘레 1.1km, 성벽 너비 4.5m, 잔존 높이 4m정도이다.

갤러리

주석

  1. "거제도 길목을 지켰던 오량성_01", 팬저의 국방여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