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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5월 23일 (토) 20:46 판


예숙공 최석 재상 삼봉분
Tombs of Choe Seok and His Two Wives
대표명칭 예숙공 최석 재상 삼봉분
영문명칭 Tombs of Choe Seok and His Two Wives
한자 譽肅公 崔奭 宰相 三封墳
주소 강원도 철원군 동송읍 관우리 323
지정번호 철원군 향토문화유산 4호



해설문

국문

예숙공 최석 재상 삼봉분은 고려의 문관 최석과 그의 두 부인이 묻힌 무덤 3기를 말한다. 이들 세 사람의 무덤은 5걸음씩 떨어진 채로 삼봉분 형태를 이루고 있다. 그 형태가 독특하고 역사가 오래되었으므로 보호하고 있다.

최석은 고려 문종 5년(1051)에 장원급제한 이후 많은 벼슬을 지낸 끝에 재상에 이르렀다. 선종 대에는 왕세자의 스승인 수태보에 오르는 등 당대를 대표하는 문인이다. 최석은 첫째 부인이 후손 없이 세상을 떠나자 재혼을 하였다. 최석이 96세로 세상을 떠날 때 첫째 부인의 무덤 앞쪽에 묻혔다. 이후 최석의 둘째 부인이 세상을 떠나자 첫째 부인의 무덤 뒤쪽에 묻혀 지금과 같은 삼봉분 형태를 갖추었다.

묘 앞에 세워진 비석의 글씨는 조선 영조 때 좌의정을 지낸 서예가 서명균이 적은 것이다. 해마다 동주최씨 후손들이 이곳에 모여 제를 올린다.

영문

Tombs of Choe Seok and His Two Wives


영문 해설 내용

고려시대의 문신 최석과 그의 두 부인이 묻힌 무덤 3기이다. 앞에서부터 최석, 첫째 부인, 둘째 부인의 묘이다. 남편과 두 부인이 3기의 봉분으로 각각 안치되는 것은 매우 드문 사례이다.

최석은 1051년 과거에 장원으로 급제한 후 여러 벼슬을 지냈다. 왕세자의 스승이기도 했으며, 당대를 대표하는 문인이었다. 최석이 63세 때 첫째 부인이 후손 없이 세상을 떠나자 현재의 위치에 묘를 조성했다. 최석은 6년 뒤 둘째 부인과 재혼하였고, 96세로 세상을 떠나 첫째 부인의 무덤 앞쪽에 묻혔다. 이후 둘째 부인이 세상을 떠난 후에는 첫째 부인의 무덤 뒤쪽에 묻혔다.

묘 앞에 세워진 비석의 글씨는 조선시대의 서예가인 서명균(1680-1745)이 쓴 것이다. 현재도 후손들이 이곳에서 제사를 지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