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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릉잡고 및 수구집 귀봉집 책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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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릉잡고 책판 및 수구집 귀봉집 책판
대표명칭 무릉잡고 책판 및 수구집 귀봉집 책판
한자 武陵雜橋 冊板 및 守口集 龜蜂集 冊板
주소 경상남도 함안군
지정번호 시도유형문화재 제173호
지정일 1979년 12월 29일
분류 기록유산/서각류/목판각류/판목류
시대 조선시대
수량/면적 352매
웹사이트 무릉잡고 및 수구집 귀봉집 책판,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조선시대 중기의 대학자이며 서원의 창시자인 주세붕(周世鵬, 1495~1554)의 시문집인 『무릉잡고』, 그의 아들 주박(周博, 1524~?)의 문집인 『귀봉집』, 손자 주맹헌(周孟獻)의 시문집인 『수구집』을 간행하기 위해 새긴 책판이다. 책판은 모두 1908년에 새긴 것이다.

『무릉잡고』에서 ‘무릉(武陵)’은 칠원의 옛 이름이다. 이 문집에서 주목을 끄는 것은 한글가사인데, 「도동곡(道東曲)」·「육현가(六賢歌)」·「엄연곡(儼然曲)」·「태평곡(太平曲)」 등이 모두 경기체가 형식으로 쓰여져 있어, 당시의 가곡을 연구하는 데 좋은 자료이다.

주세붕과 그의 아들, 손자 삼대에 걸친 문집의 목판이 남아 있다는 것은 흔하지 않은 사례이므로 그 의미가 크다. 특히 주세붕은 유학의 보급에 힘썼던 대학자이며, 우리나라 최초로 서원을 세운 인물이다. 그의 문집은 당시의 정치·사회 등을 연구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특히 이들은 함안지역에서 나고 자랐기 때문에 문집의 내용은 함안지역의 역사와 지리를 연구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무산사 장판각에 소장되어 있다.

영문

영문 해설 내용

조선 중기의 대학자이며 서원의 창시자인 주세붕과 주박, 주맹헌의 문집을 간행하기 위해 1908년에 새긴 352매의 책판이다.

주세붕(1495~1554)은 유학의 보급에 힘썼던 대학자이며, 우리나라 최초 서원인 백운동서원을 세운 인물이다. 그의 문집 『무릉잡고』에서 ‘무릉’은 함안지역의 옛 이름으로 그의 호로 삼기도 했다. 원집 8권, 별집 8권, 부록 4권으로 총 20권 11책이다.

주박(1524~?)은 주세붕의 아들로, 조선 중기의 저명한 학자인 이황(1501~1570)의 제자이다. 특히 문장이 뛰어났으며, 과거에 급제한 뒤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다. 구봉은 그의 호이며, 문집 『귀봉집』은 2권 1책이다.

주맹헌(1617~1703)은 주세붕의 5대손으로 학문에 힘써 ‘덕연서원’을 고쳐지어 왕으로부터 현판을 하사받았다. 그의 호는 수구재이며, 그의 시문집인 『수구집』은 4권 2책이다.

여러 대에 걸친 가문의 문집의 목판이 남아 있다는 것은 흔하지 않은 사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