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함양 심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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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 국문
조선 명·선조때 거제부사 돈암 정지영이 관직에서 물어난 후 고향에 돌아와 이 곳에 초가집을 짓고 소영자적 하였으나, 임진왜란 때 소실되어 1770년에 후손들이 중수하였으나 풍수해로 훼철되고 1845년 7대손 정복운 등이 재건하였으며, 1948년 중수를 거쳐 현재에 이르고 있다.
심원정은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이며 단동으로 세워진 중층 누각건물로서 내부는 모두 틔워 경관을 즐길 수 있게 하였다.
심원정은 옛 안의 3동중의 하나인 심진동 하천변의 자연암반 위에 건립된 정자로서 주변 경관과 조화를 잘 이루고 있다, 건물자체도 사용부재나 결구방식 등이 무난하며 전체적으로 볼 때 안정된 균형감을 보이고 있어 조선후기 정자건축물에 대한 학술적 가치가 충분한 건축물이다.
수정 국문
초고
이곳은 조선시대 수려한 자연경관으로 이름난 안음(安陰)의 3동(靑溪, 尋眞, 花林) 중의 하나인 심진동에 지어진 정자이다. 본디 심원정은 16세기 거제현령을 역임하던 정지영이 귀거래사(歸去來辭)를 부르며 낙향하고 지은 정자로 원래 위치는 지금보다 상류인 덕추(德湫) 폭포에 있었다. 그러나 여러 차례 무너져 1845년 정지영의 7대손인 정복운 등이 현재 위치인 용추계곡 가에 재건하였으며, 1948년 중수를 거쳐 현재에 이르고 있다.
다만 1832년에 편찬된 안의현읍지(安義縣邑誌)에 기재된 누정(樓亭) 12곳뿐만 아니라 1899년에 편찬된 안의읍지(安義邑誌)의 13곳에도 심원정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심원정과 심원정을 품고 있는 심진동의 수려한 자연경관은 1872년 7월 지현(知縣) 윤수동(尹秀東)이 쓴 「심원정기(尋源亭記)」 뿐만 아니라, 민재남(閔在南, 1802~1873), 송병선(宋秉璿, 1836~1905), 정재규(鄭載圭, 1843~1911), 이건창(李建昌, 1852~1898) 등 다양한 문인들이 읊은 시(詩)를 통해서도 확인되고 있다.
이를 통해 볼 때 심원정은 비록 지역을 대표하는 누정으로 공인되지는 못하였지만 그 경관미를 바탕으로 19세기 지식인들이 자주 찾는 명소로 활용된 정자로 보인다.
1차 수정
심원정은 거제현령을 역임하던 정지영(鄭芝榮)이 명종 13년(1558)에 지은 정자이다. 원래 지금보다 상류인 덕추폭포에 있었다. 그러나 여러 차례 무너져 1845년 정지영의 7세손인 정복운 등이 1845년 지금 위치로 옮겨 다시 지었고, 1948년에 중수하였다. 현재 심원정이 자리하고 있는 심진동 용추계곡은 원학동, 화림동과 함께 빼어난 풍광을 자랑하는 함양의 3대 경관으로 손꼽힌다.
심원정은 중층 형태의 누각 건물이며, 내부는 모두 개방된 형태로 주변 경관을 즐길 수 있게 하였다. 사면에 모두 난간을 둘렀고 바닥에는 우물마루를 깔았다. 뒷면 쪽에 시멘트로 계단을 만들었고, 모퉁이의 난간 일부를 틔워 누각 위로 오를 수 있게 하였다.
자문의견
- 분야별 자문위원 1
- 심원정은 중층 형태의 누각 건물이며, 사방면 모두 개방된 형태로 내부에서 주변 경관을 즐길 수 있게 하였다. 사면에 모두 난간을 둘렀고 바닥에는 우물마루를 깔았다.
뒷면 쪽에 시멘트로 계단을 만들었고, 모퉁이의 난간 일부를 틔워 누각 위로 오를 수 있게 하였다.(삭제요망)
- 심원정은 중층 형태의 누각 건물이며, 사방면 모두 개방된 형태로 내부에서 주변 경관을 즐길 수 있게 하였다. 사면에 모두 난간을 둘렀고 바닥에는 우물마루를 깔았다.
- 분야별 자문위원 2
- 읽기 쉬운 문안 자문위원
- 일반인들에게 좀 더 정보가 필요해 보입니다. 원래는 초가였다는 점, 그후 몇차례 다시 지어져서 원래 위치와 현재 위치가 달라졌다는 점, 그리고 문화재 자료로 지정된 나름의 가치가 추가 되면 좋겠습니다.
- 용추계곡이 함양의 3대 절경이라는 정보는 굳이 필요할까 싶습니다. 오히려 심원정의 건축학적 특성을 살리는 게 좋겠습니다. 시멘트로 계단을 만들고...같은 내용은 심원정의 원래 모습이 아니니 이 부분은 빼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 대략적으로 내용을 바꾼다면, 아래 글을 참고 바랍니다.
- 심원정은 1558년 돈암 정지영이 벼슬을 버리고 낙향해 현 위치보다 상류인 덕추폭포 부근에 초가로 지은 정자였다. 그러나 임진왜란 때 소실된 후 1770년 후손들이 다시 지었으나 풍수해로 훼손되고 철거되었다. 그후 1845년 7세손 정복운 등이 지금의 자리에 다시 지었으며 1948년 중수 되었다.
지우천 계곡 거북바위 위에 세워진 심원정은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중층 누각으로 사방이 트여 있어서 용추계곡의 빼어난 풍광을 즐길 수 있다. 평탄한 천연 암반위에 지어진 정자 기둥은 원목을 자연 그대로 대강 다듬어 사용하였다. 우물마루를 깔고 팔작지붕에 단청을 올린 심원정은 조선후기 정자 건축의 전형을 보여준다.
2차 수정
심원정은 거제현령을 지내던 정지영(鄭芝榮)이 명종 13년(1558)에 지은 정자이다. 원래는 현재 위치보다 상류인 덕추폭포 부근에 초가로 지은 정자였으나, 임진왜란과 풍수해 등으로 여러 차례 무너지고 훼손되었다. 1845년 정지영의 7세손인 정복운 등이 지금 위치로 옮겨 다시 지었고, 1948년에 중수하였다. 현재 심원정이 자리하고 있는 심진동 용추계곡은 원학동, 화림동과 함께 빼어난 풍광을 자랑하는 함양의 3대 경관으로 손꼽힌다.
심원정은 중층 형태의 누각 건물이며, 사방이 트여 있어서 용추계곡의 빼어난 풍광을 즐길 수 있다. 기둥은 원목을 자연 그대로 대강 다듬어 사용하였고, 정자 사면에 모두 난간을 둘렀으며, 바닥에는 우물마루를 깔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