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안동 임천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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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국문집필
기존 국문
없음.
수정 국문
초고
서원은 조선시대에 세워진 사립 교육기관으로, 선현 제향과 교육의 기능을 수행하였다.
임천서원은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학자인 학봉 김성일(鶴峯 金誠一, 1538~1593)을 기리기 위해 세운 서원이다.
김성일은 퇴계 이황(退溪 李滉, 1501~1570)의 수제자로 경상도 지역 유림의 중추 역할을 하였다. 선조 23년(1590) 사신으로 일본에 다녀온 후 일본이 침입하지 않을 것이라고 보고하여 임진왜란 초에 파직되기도 하였으나 곧 사면되고 다시 경상도 초유사*에 임명되었다. 경상도 지역에서 의병을 모으고 군량미 확보에 힘썼으며, 곽재우 등 의병들을 적극적으로 지원하여 진주대첩 승리의 기반을 만들었다. 그러나 선조 26년(1593) 진주성에서 계속 항전 중에 병사했다.
선조 40년(1607) 임하현 서쪽 옛 서당에 사당을 세우고 김성일의 위패를 모셨으며, 광해군 10년(1618) 임천서원으로 사액을 받았다. 헌종 13년(1847)에는 석문정사 서편 엄곡촌으로 옮겼다가, 고종 5년(1868)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고, 이후 순종 2년(1908) 지금의 위치에 다시 세웠다.
경내에는 정문, 기숙사인 동·서재, 강당인 홍교당(弘敎堂), 내삼문, 사당인 숭정사(崇正祠), 전사청 등이 있다. 매년 음력 3월과 9월에 제사를 지낸다.
- 초유사(招諭使) : 난리가 일어났을 때, 백성을 타일러 경계하는 일을 맡아 하던 임시 벼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