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송정
2022년 국문집필
기존 국문
이 건물은 표은(瓢隱) 김시온(金是榲, 1598~1669)을 추모하기 위해 적암(適庵) 김태중(金台重, 1649~1711)이 앞장서서 조선 숙종(肅宗) 5년(1679)에 건립한 것이다. 표은공은 병자호란(丙子胡亂) 뒤에 벼슬에 나갈 것을 단념하고 와룡산(臥龍山) 아래에 있는 도연폭포 근처에 와룡초당(臥龍草堂)을 짓고 40여 년 동안 절의를 지키고 후진양성에 전력하였다. 이 건물은 1949년에 화재로 일부 소실되었던 것을 1959년에 중건한 것이다. 원래는 정면 2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인 와룡초당이 별도로 한 구역을 이루고 있었으나 지금은 송정과 비각만 남아 있다.
막돌로 2자 정도 높게 기단을 설치한 위에 정면 3칸, 측면 2칸의 건물을 세웠으며 겹처마 팔작지붕이다. 도연폭포와 그 주위의 비경과 더불어 잘 조화되게 건축된 것이 특징이었다. 1988년 임하댐 건설로 인하여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
수정 국문
초고
송정은 병자호란(丙子胡亂, 1636) 이후 와룡산(臥龍山)에서 은거했던 선비 김시온(金是榲, 1598~1669)을 추모하기 위해 그의 손자 김태중(金泰重, 1749~1711)의 주도로 숙종 5년(1679)에 지어졌다.
김시온은 전쟁이 일어나자 의병을 모집해 한양으로 향했는데, 도중에 인조(仁祖, 재위 1623~1649)의 항복 소식을 듣고는 통곡하며 귀향하였다. 이후 그는 와룡산의 도연(陶淵) 폭포 근처에 초당을 짓고, 스스로를 명나라에 대한 절의를 지키는 ‘숭정처사(崇禎處士)’라 칭하면서 후학을 양성하였다.
정자는 마루방으로 꾸민 대청과 온돌방으로 이루어져 있다. 지금의 건물은 1949년 화재로 일부가 소실된 것을 1959년 다시 지은 것이다.
본래 김시온이 은거하던 도연 폭포 근처에 있었는데, 임하댐 건설로 인해 1988년 지금의 위치에 옮겨 세웠다.
- 김시온의 장남 김방렬의 아들이 김태중이다. 김성탁은 김태중의 장남이며, 영조 10년(1734)에 경연에서 김성탁이 뽑힌 후 조정에서 김시온의 절의를 기리며 벼슬을 내렸다.
- 건물 이건 시기는 지자체 제공 문안에 따라 작성함.
- 대청의 측면과 배면에는 판문을 달았고, 전면에는 창호를 달아 마루방으로 꾸몄다.
- 좌측에 김시온의 행적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숭정처사 유허비(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61호)’ 비각이 있다.
1차 수정
송정은 안동 출신의 학자 김시온(金是榲, 1598~1669)을 추모하기 위해 손자 김태중(金台重, 1649~1711)이 숙종 5년(1679)에 지은 정자이다.
김시온은 의성김씨 중 안동에 처음으로 정착한 김만근(金萬謹, 1446~1550)의 5대손이다. 어려서부터 재주가 뛰어나 이름이 높았으나 벼슬에는 뜻을 두지 않고 학문에만 힘썼다. 병자호란 이후에는 와룡산 도연폭포 근처에 초당을 짓고 은거하며 후학을 양성하였다. 송정은 원래 도연폭포에서 200여 m 떨어진 곳에 있었는데 임하댐이 건설되면서 1988년 지금의 위치로 옮겼다.
지금의 건물은 1949년 화재로 일부 소실된 것을 1959년에 다시 지은 것이다. 왼쪽의 마루방과 오른쪽의 온돌방으로 이루어져 있다.
정자 왼쪽에는 김시온을 기리기 위해 세운 숭정처사 유허비(경상북도 문화재자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