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남해 난곡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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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 국문

성리학을 본격적으로 연구하고 체계를 세운 고려시대의 유학자 이재 백이정(1247~1323)과 제자인 이제현, 박충좌, 이희급의 위패를 봉안하고 있는 사당이다.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성리학을 들여온 사람은 안향이지만 성리학을 본격적으로 연구하고 체계를 세운 사람은 백이정이라 할 수 있다.

이 사당은 이재 백이정선생이 어릴 때 글을 읽던 군자정 옛터가 빈터로 남아 있는 것을 안타깝게 여긴 남해군 유림들이 경상남도 유림회와 협동으로 1925년에 준공한 건물이다.

난곡사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규모이며 팔작지중의 목조기와집이다. 사당 안에는 정면에 백이정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 해마다 남해 유림들이 음력 3월 10일에 제례를 지낸다.

수정 국문

초고

이 건물은 고려 말의 대학자인 백이정(白頤正, 1247~1323)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다. 그의 위패뿐 아니라 그의 제자인 이제현(李齊賢, 1287~1367), 박충좌(朴忠佐, 1287~1349), 그리고 남해 유림으로 정유재란 당시 의병으로 참전했던 이희급(李希伋, 1583~?)의 위패도 봉안하고 있다.

이 사당은 기존에 이희급의 위패를 봉안하던 난계사(蘭溪祠)를 1925년에 난곡사라 칭하고 중건한 것이다.

백이정은 안향(安珦, 1243~1306)의 문하에서 수학하였고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으며 많은 문인들을 배출하였다. 1298년 충선왕이 세자 시절일 때 부터 원나라에 가서 시종하며 성리학을 연구하였고, 10년 후에 고려로 돌아와 성리학이 전파되는데 크게 공헌하였다.

사당 내부의 정면에는 백이정의 위패가 있고, 우측 상단에는 이제현, 하단에는 박충좌, 왼쪽에는 이희급의 위패가 각각 봉안되어 있다. 해마다 남해 유림들이 음력 3월 10일에 제례를 지낸다.

1차 수정

이 건물은 고려 말의 대학자인 백이정(白頤正, 1247~1323)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다.

백이정은 우리나라에 성리학을 처음 들여온 학자인 안향(安珦, 1243~1306)의 문하에서 수학하였고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으며 많은 문인들을 배출하였다. 1298년 충선왕이 세자 시절일 때부터 원나라에 가서 시종하며 성리학을 연구하였고, 10년 후에 고려로 돌아와 성리학이 전파되는 데 크게 공헌하였다.

현재의 사당은 1925년에 지었다. 사당이 자리한 곳은 백이정이 군자정(君子亭)이라는 정자를 짓고 시를 지으며 지내던 곳이라고 한다. 사당 내부에는 백이정의 위패뿐 아니라 그의 제자인 이제현(李齊賢, 1287~1367), 박충좌(朴忠佐, 1287~1349), 그리고 남해 유림으로 정유재란 당시 의병으로 참전했던 이희급(李希伋, 1583~?)의 위패도 봉안하고 있다. 해마다 남해 유림들이 음력 3월 10일에 제례를 지낸다.

자문의견

  1. 사적, 매장 위원1
    • 이 건물은 → 난곡사는
    • 10년 후에 고려로 돌아와 성리학이 전파되는 데 크게 공헌하였다. →10년 후에 고려로 돌아와 성리학을 체계적으로 연구하고 확산시키는데 크게 공헌하였다.(내용을 좀더 구체적으로 서술)
  2. 사적, 매장 위원2
    • 대학자인”→“학자”/ “3월 10일에 제례를 지낸다.” → “3월 10일에 제향(祭享)을 거행한다.”

2차 수정

난곡사는 고려 말의 학자인 백이정(白頤正, 1247~1323)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다.

백이정은 우리나라에 성리학을 처음 들여온 학자인 안향(安珦, 1243~1306)의 문하에서 수학하였고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으며 많은 문인들을 배출하였다. 1298년 충선왕이 세자 시절일 때부터 원나라에 가서 시종하며 성리학을 연구하였고, 10년 후에 고려로 돌아와 성리학을 체계적으로 연구하고 확산시키는 데 크게 공헌하였다.

현재의 사당은 1925년에 지었다. 사당이 자리한 곳은 백이정이 군자정(君子亭)이라는 정자를 짓고 시를 지으며 지내던 곳이라고 한다. 사당 내부에는 백이정의 위패뿐 아니라 그의 제자인 이제현(李齊賢, 1287~1367), 박충좌(朴忠佐, 1287~1349), 그리고 남해 유림으로 정유재란 당시 의병으로 참전했던 이희급(李希伋, 1583~?)의 위패도 모시고 있다. 해마다 남해 유림들이 음력 3월 10일에 제사를 지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