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안 목애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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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 목애당
Mogaedang Hall, Taean
태안 목애당,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태안 목애당
영문명칭 Mogaedang Hall, Taean
한자 泰安 牧愛堂
주소 충청남도 태안군 백화로 54 (태안읍)
지정(등록) 종목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38호
지정(등록)일 1992년 8월 17일
분류 유적건조물/정치국방/궁궐·관아/관아
수량/면적 1동
웹사이트 태안 목애당,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목애당은 조선 시대 태안현 관아의 동헌 건물로 고을의 수령이 일반 행정업무와 재판 등 공적인 일을 하던 곳이다. 목애당과 함께 오늘날 남아 있는 관아 건물은 근민당(近民堂)과 경이정(憬夷亭)이 있다.

기존 동헌 건물은 1894년 동학농민혁명 때 농민군에 의해 화재로 사라졌으나 1901년에 안흥진성(安興鎭城)과 소근진성(所斤鎭城)의 목재를 가져다 새로 지었다. 동헌 건물은 전해오는 이름이 없었으나 1904년에 “백성을 잘 다스리고 사랑한다”라는 뜻으로 ‘목애당’이라 하였다.

일제강점기인 1914년부터 태안면사무소, 태안군청 민원실 등으로 사용하면서 건물이 덧붙여지고 내부가 변형되었으나 1997년에 복원하여 옛 모습을 되찾았다.

2단의 기단* 위에 주춧돌을 놓고 네모난 기둥을 세운 앞면 6칸, 옆면 3칸의 건물로 조선 시대 관아 건축 양식을 살펴볼 수 있는 자료로서 가치가 있다.

  • 기단: 건축물의 터를 반듯하게 다듬은 다음에 터보다 한 층 높게 쌓은 단.

영문

Mogaedang Hall, Taean

Mogaedang Hall, built in 1901, was the magistrate’s office of the local government of Taean during the Joseon period (1392-1910).

It is unknown when the magistrate’s office of Taean was first built, but it was destroyed by peasant armies during the Donghak Peasant Revolution of 1894. In 1901, the magistrate’s office was rebuilt with wood taken from Anheungjinseong Fortress (Historic Site No. 560) and Sogeunjinseong Fortress (Chungcheongnam-do Monument No. 93). In 1904, it was named Mogaedang, meaning “Hall of Governance and Love,” reflecting the duties of a wise magistrate to the local people. From 1914 to 1970, the building was used as a government building, including as the office of Taean-myeon Township and the civil affairs office of Taean County Hall. As a result, an extension had been added in the back, and the interior layout had been modified. In 1997, the building was renovated to reflect its original appearance.

The building is representative of the typical architectural style of government offices of the Joseon period, with its two-tier foundation made of well-hewn stones and its square pillars and pillar base stones.

영문 해설 내용

목애당은 조선시대 태안현의 동헌 건물로 1901년에 지어졌다.

태안현의 동헌이 언제 처음 지어졌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고, 1894년 동학농민혁명 때 농민군에 의해 소실되었다. 1901년 안흥진성(사적 제560호)과 소근진성(충청남도 기념물 제93호)의 목재를 가져다 동헌 건물을 새로 지었으며, 1904년 ‘백성을 잘 다스리고 사랑하는 곳’이라는 뜻으로 ‘목애당’이라 이름 지었다. 일제강점기인 1914년부터 1970년대까지 태안면사무소, 태안군청 민원실 등 관공서 건물로 이용되었다. 그 과정에서 뒤편에 건물을 덧붙여짓고 내부 구조가 변경되었으나, 1997년 옛 구조를 살려 복원하였다.

2단의 기단 위에 주춧돌을 놓고 네모난 기둥을 세운 건물로 조선시대 관아 건축 양식을 살펴볼 수 있는 자료로서 가치가 있다.

참고자료

  • 태안 목애당,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http://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ccbaCpno=2113401380000&pageNo=1_1_1_1 -> 백성을 잘 다스리고 사랑한다는 뜻의 ‘목애당’은 조선조 태안현의 동헌으로 광무 8년(1904)에 오병선 군수가 서문을 썼다.
  • [기획시리즈 '충청의 문화유산'] (9) 반성의 마음 담은 ‘태안 목애당’, 금강일보, 019.4.17. http://www.ggilbo.com/news/articleView.html?idxno=645770 -> 1441년에 지어진 목애당(牧愛堂)을 비롯해(건립시기 관련 근거 없음) 83개 건물이 불타 파괴된다. / 이 후 새로 부임한 태안출신 군수 이기석은 목애당 소실을 안타까워했고, 인근 안흥성과 소근진성의 목재를 재활용해 1901년 4월 목애당을 중건한다. 그 과정은 그가 남긴 '근민당중건기'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그는 또한 ‘백성을 더 가까이 하겠다’라는 의미로 근민당 현판을 목애당 현판과 함께 달았다. 뒤편에는 근민당중건기편액을 달아 과거에 대한 누와 반성을 후세에 알리려 했다. / 목애당의 면적은 165㎡으로 앞면 6칸, 옆면 1칸에 팔작지붕을 올렸다. 건물 가운데 2칸은 수령이 업무수행을 위한 대청마루가 있고 양쪽으로 집무실로 사용된 온돌방이 좌 3칸, 우 1칸으로 있다. 뒤편에는 일제 강점기 때 읍사무소 건물로 쓰던 석조건물이 있다.
  • 태안 가볼만한 곳, 태안 목애당, 산들애길 문화여행, 네이버 블로그 https://blog.naver.com/sockjung/221530903560 -> 사진 참고.
  • 태안의 문화재 목애당_170508, 겨울섬, 개인 블로그 https://gotn.tistory.com/364 -> 근대 건물 2동, 비석군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