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평사지
청평사지 Cheongpyeongsa Temple Sit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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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청평사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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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명칭 | Cheongpyeongsa Temple Site |
한자 | 淸平寺址 |
주소 | 강원도 춘천시 북산면 청평리 669번지 외 2필지 |
지정(등록) 종목 | 시도기념물 제55호 |
지정(등록)일 | 1984년 12월 28일 |
분류 | 유적건조물/종교신앙/불교/사찰 |
수량/면적 | 일원(43,098㎡) |
웹사이트 | 청평사지,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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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문
국문
청평사는 973년(고려 광종 24)에 당나라 승려 영현선사(永玄禪師)가 창건하여 ‘백암선원’이라 부르던 사찰이다. 한 때 폐사 되었다가 1068년(고려 문종 22)에 이의가 중건하고 보현원이라 하였으며, 1089년(고려 선종 6) 이의의 아들인 이자현이 벼슬을 버리고 이 곳에 은거하여 수행하며 절 이름을 문수원으로 고쳤다. 이후 조선 명종 때 보우선사(普雨禪師) 절을 크게 중건하고 이름을 청평사로 변경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절 주변의 자연 지형을 이용해 고려시대의 독특한 정원 양식을 만들어냈다. 영지(影池), 기암괴석, 폭포 등이 어우러진 경승지로 이제현, 김시습, 이황 등 많은 시인 묵객들이 찾아 머물며 글을 남기기도 했다.
국보 극락전과 고려 최고의 명필가인 탄연의 글씨체로 유명한 문수원기비가 한국전쟁으로 인해 소실되었으나 1975년과 2008년에 각각 복원되었다. 그 외 남아 있는 유물로는 회전문(보물 제164호), 삼층석탑, 진락공 부도, 환숙당 부도 등이 있다.
- 사찰이 다시 지어졌기 때문에 청평사지라는 명칭이 맞지 않음.
- 극락전은 국보로 지정된 적이 없는 것으로 보임.
영문
Cheongpyeongsa Temple Site
This is the site of Cheongpyeongsa Temple. The temple was founded in 973 during the Goryeo period (918-1392) under the name Baegamseonwon Temple. However, it fell into ruin, and in 1068, a civil official named Yi Ui repaired the temple. Yi Ui’s son, Yi Ja-hyeon (1061-1125), eventually gave up his civil official career and lived out his days here. In the mid-16th century during the Joseon period (1392-1910), the temple was expanded by Monk Bou, who renamed it Cheongpyeongsa Temple.
Near the temple complex, there is a Goryeo-period garden (Scenic Site No. 70) built by Yi Ja-hyeon. The garden, which features a pond, interesting rocks, and a waterfall, is a place of scenic beauty, visited and written about by many poets and calligraphers.
Among the buildings added to the complex during the 16th-century renovation, only Hoejeonmun Gate (Treasure No. 164) has remained intact. The other buildings, such as Geungnakjeon Hall, were destroyed during the Korean War (1950-1953). Some of the structures were rebuilt in the 1970s and 1980s. In the premises, there is also a three-story stone pagoda (Cultural Heritage Material No. 8), which is presumed to date back to the Goryeo period, and two stupas, presumably from the Joseon period.
영문 해설 내용
이곳은 고려시대인 973년에 백암선원이라는 이름의 사찰이 창건되었던 곳이다. 그 뒤 폐사되었다가 1068년 고려의 문신이었던 이의가 중건하였고, 1089년에는 이의의 아들이자 고려 중기의 학자였던 이자현(1061-1125)이 관직을 버리고 이곳에 은거하며 수행하였다. 이후 조선시대인 16세기 중반에 보우선사가 절을 크게 중건하고 이름을 청평사라 하였다.
청평사 인근에는 이자현이 조성한 고려시대 양식의 정원(명승 제70호)이 있다. 연못, 기암괴석, 폭포 등이 어우러진 경승지로, 많은 시인과 묵객들이 찾아와 글을 남기기도 하였다.
16세기 중건 당시에 지어진 건물은 회전문(보물 제164호)이 유일하게 남아있다. 극락전을 비롯한 다른 전각들은 한국전쟁 때 소실되었고, 1970년대부터 1980년대에 이르기까지 여러 전각들이 다시 지어졌다. 그 외에 고려시대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는 삼층석탑(문화재자료 제8호)과 조선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승탑 2기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