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 모충사
청주 모충사 Mochungsa Shrine, Cheongju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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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청주 모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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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명칭 | Mochungsa Shrine, Cheongju |
한자 | 淸原 慕忠祠 |
주소 | 충청북도 청주시 서원구 모충동 산13-6 |
지정(등록) 종목 | 충청북도 문화재자료 제8호 |
지정(등록)일 | 1989년 9월 30일 |
분류 | 유적건조물/인물사건/인물기념/사우 |
수량/면적 | 1동 |
웹사이트 | 청주 모충사,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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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문
국문
2015
이곳은 강성군(江城君) 봉석주(1418~1465) 선생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다. 강성사(江城祠) 또는 하음사(河陰祠)라고도 하며, 편액은 「모충사(慕忠祠)」라고 하였다. 정면 3칸, 측면 1칸 반의 맞배지붕집으로 1694년(숙종20)에 처음 세웠다. 그리고 1926년과 1970년에 중수하여 지금의 모습을 갖추었다. 「모충사우기(慕忠祠宇記)」와 「중수기(重修記)」가 있다. 봉석주는 조선 초기의 공신이다. 자는 군보(君輔), 호는 서관(墅觀)이며 본관은 하음이다. 수양대군세조을수양대군(세조)을 도와 계유정난(癸酉靖難)에 공을 세워 2등 공신에 책록 되었고, 강성군에 봉해졌다. 전라도 수군절도사를 역임하였고. 1465년(세조11)에 역모에 몰려 주살되었으나, 연산군 때에 신원(伸寃)되었다.
2021
모충사는 조선 세조 때 무신 봉석주(奉石柱, ?~1465)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다. 봉석주는 단종 1년(1453) 계유정난(癸酉靖難) 때 수양대군을 왕으로 세우는 데 공헌한 인물이다. 그는 공을 인정받아 2등 공신이 되었으며, 이후 강성군(江城君)으로 책봉되었다. 본관은 하음河陰 자는 군보(君輔), 호는 서관(墅觀)이며, 궁술과 격구에 능했고 전라수사 등의 관직을 역임하였다. 세조 11년(1465)에 역모로 처형되었으나 연산군 1년(1495)에 자손들의 상소로 신분을 회복하였다.
청주 모충사는 숙종 20년(1694)에 처음 세웠으며 1926년에 고쳐 지었다. 이후 1970년과 2013년에 보수하여 지금의 모습을 갖추었다. 사당 바깥쪽에는 「모충사(慕忠祠)」라고 쓴 현판이 있고, 안쪽에는 「모충사우기(慕忠祠宇記)」와 「중수기(重修記)」가 남아 있다.
영문
- Mochungsa Shrine, Cheongju
2015
This shrine, built in 1694, is dedicated to Bong Seok-ju (1418-1465), a meritorious subject of the early period of the Joseon Dynasty (1392-1910). Bong helped King Sejo (r. 1455-1468) gain power and was bestowed with the title of meritorious subject, but was later killed as a suspect in a failed attempt against the king. His honor was restored in the 16th century. This shrine was repaired in 1926 and 1970.
2021
Mochungsa Shrine was founded in 1694 for the veneration of Bong Seok-ju (?-1465), a civil official of the Joseon period (1392-1910).
Bong Seok-ju was skilled in archery and polo and served various official posts. In 1453, he assisted Prince Suyang (1417-1468) in a coup against the prince's young nephew King Danjong (r. 1453-1455), which led to the prince taking the throne as King Sejo (r. 1455-1468). For his contributions, Bong Seok-ju was bestowed with the title of meritorious subject. However, in 1465, he was accused of treason and executed. In 1495, his honor was posthumously restored upon the petition of his descendants.
The shrine underwent major renovations in 1926 and 1970. The shrine is surrounded by an enclosure wall and features a gable roof.
영문 해설 내용
2021
모충사는 조선시대의 문신 봉석주(?-1465)의 위패를 모신 사당으로 1694년에 창건되었다.
봉석주는 1453년 수양대군(후의 세조, 재위 1455-1468)이 왕위에 오를 때 공을 세워 공신으로 책봉되었다. 궁술과 격구에 능했고,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다. 1465년 역모에 연루되어 처형되었다가, 1495년 자손들의 상소로 신원되었다.
사당은 1926년과 1970년에 보수되어 지금의 모습을 갖추었다. 맞배지붕을 올린 사당은 주변에 담장이 둘러 있다.
참고자료
- 청주 모충사, 국가문화유산포털 http://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ccbaCpno=3413300080000&pageNo__=5_1_1_0&pageNo=1_1_2_0 -> 봉석주(1418∼1465)의 위패를 모신 사당으로 일명 강성사 또는 하음사라고 한다. / 앞면 3칸·옆면 1칸 반 규모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을 한 맞배지붕이다. 사당 밖에는 ‘모충사’라고 쓴 현판이 달려 있고 안에는 1926년 승정원 우승지를 지낸 이상각이 짓고 안방준이 쓴 ‘모충사우기(慕忠祠宇記)’와 12대손인 봉만균이 쓴 중수기가 있다. 마당 앞에는 일각문을 세우고 담장을 돌렸다.
- 봉석주,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23918 -> 1464년 간통죄로 의금부에 투옥된 여인의 재물과 미모를 탐하여 첩으로 삼으려 했던 일로 사헌부의 탄핵을 받고 고신(告身)을 추탈당했다가 얼마 후 돌려받았다. 이듬해 김처의(金處義)·최윤(崔潤) 등의 역모를 고변했으나, 오히려 그 일에 연루되어 함께 주살되었으며 훈작과 관직도 모두 삭탈당하였다.
- 문의면 봉석주 부조묘, 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다음 블로그 https://m.blog.daum.net/king6113/903 -> (2011년 작성) 내부 및 전체 구조 사진 확인 가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