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녕 관산서당
창녕 관산서당 Gwansanseodang Village Study Hall, Changnyeon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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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창녕 관산서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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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명칭 | Gwansanseodang Village Study Hall, Changnyeong |
한자 | 昌寧 冠山書堂 |
주소 | 경상남도 창녕군 고암면 월미상월길 115 (우천리) |
지정(등록) 종목 | 문화재자료 제335호 |
지정(등록)일 | 2003년 10월 30일 |
분류 | 유적건조물/교육문화/교육기관/서당 |
수량/면적 | 1,063㎡ |
웹사이트 | 창녕 관산서당,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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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문
국문
창녕 관산서당은 창녕 지역에서 유일하게 임금이 이름을 지어 내린 사액서원이다. 서당은 현재의 초·중등학교 수준의 사설 교육기관이다.
관산서당은 세워진 시기를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약 1900년 전후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관산서당은 앞면 4칸, 옆면 1.5칸 규모로 지어졌으며 앞쪽의 반 칸은 툇간으로 만들었다. 장식이 소박하고 간결하며 보존 상태가 좋은 편이다. 툇간을 만든 방식이나 간결한 가구 및 장식 기법 등으로 보아 조선 후기 건축 양식과 기법을 보여주는 건물로 학술적 가치가 높다.
영문
Gwansanseodang Village Study Hall, Changnyeong
Village study halls, called seodang in Korean, were local private education institutions established to teach classical Chinese and elementary Confucian classics.
This was originally the site of Gwansanseowon Confucian Academy, built in 1620 to honor Jeong Gu (1543-1620), a scholar of the mid-Joseon period.
Jeong Gu had a profound knowledge of Confucian classics, and was also knowledgeable about diverse fields of study, including medicine, history, astronomy, and feng shui. Yet, he did not pursue a political career and instead devoted himself to teaching the young generation of students.
In 1711, a commemorative wooden name plaque was bestowed by the royal court to Gwansanseowon. It was the only Confucian academy in Changnyeong to receive such an honor. Gwansanseowon was eventually demolished in 1871, following an 1864 nationwide decree to shut down shrines and Confucian academies and bury any spirit tablets that were enshrined there.
In 1899, a group of local Confucian scholars built the Gwansanseodang Village Study Hall on the spot where the Gwansanseowon Confucian Academy previously stood.
In 2009, the buried spirit tablet of Jeong Gu was discovered on the study hall grounds. This is the first discovery of a spirit tablet buried at the time of the 1864 nationwide decree.
영문 해설 내용
서당은 마을 단위로 설립한 초등 단계의 사설교육기관으로, 주로 유학에 바탕을 두고 한문을 가르쳤다.
원래 이곳에는 1620년에 조선 중기의 대학자인 정구(1543-1620)를 기리기 위한 서원이 창건되었다.
정구는 성리학뿐만 아니라 의약, 역사, 천문, 풍수 등 다양한 분야에 박학하였으며, 관직에 연연하지 않고 학문에 전념하면서 후학을 양성하는 일에 힘썼다.
관산서원은 1711년 창녕 지역에서 유일하게 사액을 받았으나, 1871년 서원철폐령으로 철거되었다. 현재의 서당은 1899년 지역 유림들이 옛 서원터에 세운 것이다.
2009년에는 관산서원의 사당터에서 정구의 신주가 발견되었다. 서원철폐령을 내릴 당시, 실제로 신주를 묻은 역사적 사실이 처음으로 확인된 것이다.
참고
- "대원군 서원철폐령의 실체 최초 확인", 문화재청 보도자료, 2009.07.21.
- "흥선대원군 서원철폐령 실체 첫 확인", 연합뉴스, 2009.07.21.
- "한강 정구선생의 八齊또는 八書堂(상)", 비사벌뉴스, 2019.09.11.